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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창업뉴스 [성공사례]

포장마차 알바 대학생이 매출170억 회사 키운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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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548 등록일등록일: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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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있다. 사람의 영향력일 수도 있고 종교나 책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운동선수가 꿈이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작은 체구 때문에 꿈이 좌절되고 어렵게 공부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소년은 한 친구를 만나면서 공부에 취미를 붙인다. 그리고 그때 공부하면서 읽은 ‘기업가’들의 스토리가 계기가 돼 사업가의 꿈을 가슴에 품게 된다.


소년의 이름은 오몽석. 요즘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명우식품의 창업자다. 사업가를 꿈꾸며 대학시절부터 포장마차 알바를 하면서 밑바닥 장사경험을 쌓았다.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퇴직해 망해가는 식당을 인수해 대박 매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현재 명우식품은 다양한 식품을 제조해 공급하고 있으며 명우식품이 운영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막창전문점 ‘불막열삼’은 현재 전국에 110여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올해 6월 일본에 진출해 3개월만에 추가 매장을 냈고 내년에는 싱가폴 베트남 중국 등에 진출할 계획이다. 올해 5월 ‘아몽즈’라는 커피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공부하기 싫어하고, 대학 다닐 때는 알바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대학생이 장사로 대박 기업을 운영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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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책 한권이 인생을 뒤바꿔놓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오몽석 대표(49)는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초등학생 때 핸드볼을 시작으로 중학생이 되어서 태권도도 하고 육상도 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체육고등학교 입학이 목표였으나 체구가 작아서 진학을 못하고 급하게 공부를 해서 간신히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운동선수의 꿈이 좌절되고 들어간 고등학교는 재미가 없었다. 공부에도 취미가 없어서 맨 뒷자리에 앉아 놀기만 했다. 그러다가 고성에서 전학 온 한 친구와 우연히 함께 자취를 하게 됐다. 그것이 오 대표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 친구는 공부를 제법 잘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함께 지내다보니 자연히 공부를 하게 됐다. 덕분에 어느 순간 전교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성적이 올랐다. 그때 우연히 다양한 기업들의 성장과정을 담은 책을 읽게 됐다.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가슴에 사업가의 꿈을 품게 됐다. 


◆대학다니며 포장마차, 붕어빵, 호떡 노점상 운영 

부산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오 대표는 여전히 사업가를 꿈꾸고 있었다. 뭐든 도전해보고 싶었다. 대학생이던 스무살 때 부산 구포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벌인 일이었다. 조리법은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집에 있는 냄비를 조리도구로 활용했다. 물과 전기를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지 몰라 맨땅에 헤딩하듯 모든 걸 직접했다. 구포시장에서 해산물과 식재료를 사와서 꼼장어볶음과 똥집볶음, 해물탕 같은 것을 만들어 팔았다. 새벽 1시까지 장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제법 잘됐지만 결국 적자가 나서 그만뒀다. 


군대 제대 후에도 장사는 계속됐다. 경험치를 더 쌓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연산로터리에서 붕어빵도 팔고, 양정로터리 지하철역 입구에서 호떡을, 광안리에서는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떼어와 액세서리를 판매했다. 


당시 노점 3개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50~60만원 정도. 꽤 쏠쏠했다. 비록 작은 장사였지만 대학시절의 사업 경험은 훗날 장사의 원리를 터득하는 귀한 자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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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1년 뒤에 대기업 그만두고 사업 선언!

오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창원 LG전자에 입사한다.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소원은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소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사업에 대한 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LG전자에 2년 정도 다닌 후 아내에게 사업에 대한 꿈과 포부를 털어놓았다. 


이미 자녀가 있었던 때라 당연히 아내가 반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흔쾌히 허락해줬다.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는 여전히 심했다. 사업도 모르면서 대기업을 그만두고 안정적 삶을 포기하려 하느냐며 말렸다. 그때 아내가 나서서 양가 부모님들을 설득해줬다. 어쩌면 지금이 있게 한 가장 큰 성공요인은 아내의 적극적인 협조가 아닌가 싶다.


◆첫 장사는 치킨가맹점, 망해가는 매장을 대박매장으로 바꾼 비결은?

대기업을 그만둔 오 대표가 처음 한 일은 망해가는 치킨가게를 인수한 것이다. 모  프랜차이즈 치킨 가맹점이었다. 당시 자본이 많지 않아 망한 가게라야 인수비가 적게 들었다. 대신 대학시절 맨땅에 헤딩해 노점상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가게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단골손님 잡기 운동’이었다. 손님들이 여럿 오면 한 팀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특히 그 모임을 주도하는 손님을 포착해 집중적으로 눈 인사를 하고 서비스를 푸짐하게 제공했다. 그러자 손님들 사이에서 젊은 친구가 장사 잘한다는 말이 나왔다. 3개월이 지나자 단골손님 잡기 운동이 성공해 매장 테이블이 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또 다른 비결은 ‘틈새시장 공략하기 전략’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가게들이 밤 11시나 12시만 되면 배달 영업을 마쳤다. 그런데 그때는 야간 유흥업소와 오락실이 유행하고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낸 것이 남들이 안하는 밤 11시 이후에 배달 영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게 대박이 났다. 배달 주문이 밀려 차로 가져가야 할 정도가 됐다. 틈새시장 공략 전략이 통한 것이다.


◆조류독감 발생, 매물 쏟아지던 시기에 대박낸 비결은?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매출이 늘어났지만 복병이 등장했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것이다. 한참 장사가 잘 돼서 매출이 좋아 은행에서도 대우가 좋았을 때였는데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 대표 뿐만 아니라 전체 치킨 브랜드들이 힘들었을 시기였다. 장사 잘되던 치킨 매장들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 대표는 동요하지 않았다. 해외사례들을 살펴보며 곧 지나갈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매물로 나온 치킨 매장들을 인수하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다른 묘수도 생각해냈다. 치킨을 안 먹으니까 다른 메뉴를 개발했다. 갈비를 사다가 잘라서 튀김으로 팔기도 하고, 족발, 아구찜, 해물탕 등도 판매했다. 요즘 유행하는 숍인숍 브랜드처럼 운영한 것이다. 장사가 너무 잘 돼 전화기 7대를 놓고 배달을 할 정도로 히트를 했다. 부산에서 세 손가락안에 꼽힐 정도로 매출이 높은 매장으로 소문이 났다. 


2~3개월이 지나자 오 대표의 예상대로 조류독감이 사라졌다. 그러자 가게를 내놨던 사람들이 다시 인수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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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겪었던 가장 큰 위기는?

그렇게 죽어가던 매장도 살리며 장사 수완을 발휘하자 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에서 부산 지사장을 맡아보라는 제안을 한다. 내 브랜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던 오 대표는 이 참에 사업을 배워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승낙했다. 막창전문점 브랜드였다. 


가맹본부에 적지않은 보증금을 내고 사무실을 얻어서 직원들을 채용했다. 지사장을 하며 1~2년 사이에 가맹점을 20개 정도 개설했다. 그런데 갑자기 본사가 물류 배송을 제대로 안 하기 시작하더니 부도를 내고 잠적해 버렸다. 서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직원들은 다 사라지고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가맹본사가 물류 공급을 중단하자 전라도 지역에서조차 오 대표를 찾는 다급한 전화벨이 울렸다. 


물류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 가맹점주들의 불안과 원성이 극에 달했다. 오 대표도 월급 주던 직원까지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액의 지사 보증금이 날아가고, 그동안 했던 투자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고 단기적인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철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부산 지역에서 오 대표를 보고 가맹점을 개설한 매장들이 눈에 밟혔다. 누군가는 그들을 챙겨야 했다. 무책임하게 사업을 접을 수 없었다. 가맹점주와 직원들을 책임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때가 지금까지의 사업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위기에 포기하지 않았던 게 지금 사업을 단단하게 할 수 있는 터전이었다. 유통회사를 만들어서 납품처를 알아보면서 남아있는 가맹점을 위해 물류를 공급했다. 그렇게 가맹본사 부도로 갈 곳 잃은 가맹점들을 케어해주면서 내 사업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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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지만 제조업을 직접 하는 이유는?

프랜차이즈 사업은 제조공장 없이 사무실만 차리면 할 수 있다. 하지만 불막열삼은 제조 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오대표는 ‘불막열삼’이라는 내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공장을 설립했다. 제조를 하게 되면 조직이 무겁다. 그럼에도 그렇게 한 이유는 가맹점을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공장도 없이 가볍게 사업을 하다가 쉽게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정은 불막열삼이 가맹사업 외에 제조, 연구개발, 구매 등에서 탄탄한 역량을 키우는 바탕이 됐다. 


제조와 물류·유통 등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대한 공부도 더 많이 필요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가맹점과 상생하는 착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명우’라는 회사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가맹점주 입장에서 정직하게 사업을 해보자는 의지가 담겼다. 둘째는 이름이 많이 불리면 오래 산다는 말처럼 부친이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오 대표는 명우식품을 운영하며 고기 양념 소스를 만들고 연육하는 기술을 축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통해 2013년 부산 화명동에 막창전문점 ‘불막열삼’을 오픈하고 2년 후에 가맹사업을 시작한다.


◆B급 상권에서 입소문으로 100개 넘는 가맹점 확장

제조와 유통 시스템을 갖춘 후 탄생한 ‘불막열삼’은 출점전략도 달랐다. 당시 막창집은 번화가로 출점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불막열삼은 B급 상권의 작은 매장에 들어가 입소문으로 매장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 전략은 적중했다. 매장들이 전부 변두리쪽 골목 상권에 입점했지만 맛과 효율적인 운영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부부가 운영해서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사이에 매출의 대부분을 올리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2015년 가맹 1호점을 시작으로 3년만에 60개 매장을 오픈한다. 그리고 현재 110여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오 대표는 매장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매장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말한다. “가맹점은 장사 잘 되는 매장을 만들어 똑같이 복제하는 사업이다. 그 똑같은 매장들이 모두 잘 되기 위해서는 매뉴얼이 필요하고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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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근속 직원들 많은 비결은 ‘아날로그식 교육’

사업성장 과정에서 오 대표가 가장 신경 쓴 것은 교육이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사람’이 중요하다. 대학졸업후 입사했던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에게 6개월 동안 교육만 시켰다. 오 대표도 대기업처럼 직원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직원을 채용할 때는 능력보다 인성을 먼저 본다. 일은 못해도 가르치면 되지만 인성이 안 되면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성이 된 직원을 뽑으면 바닥부터 교육시킨다. 우선 매장에 보내 가맹점의 바닥부터 배우게 한다. 거기서 6개월이고 1년이고 버티고 살아남으면 본사로 데리고 온다. 


본사로 온다고 해서 다 편하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본사에 오면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실전업무를 배워야 한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또 트레이닝 시킨다. 이렇게 혹독하게 교육시키는 이유는 아무나 슈퍼바이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주들을 관리하려면 현장을 알아야 하고 점주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현장 경험을 쌓고 3년 이상 트레이닝을 해야 슈퍼바이저가 될 수 있다. 그것을 못 버티면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버틴 10년 차 된 직원들이 현재 불막열삼을 지키고 있다.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에서도 러브콜

불막열삼은 올해 5월 일본에 진출했다. 도쿄 중심가의 골목 안쪽 잘 안보이는 가게에 1호점이 오픈됐다. 입지가 나빴지만 입안에서 살살 녹는 한국 막창 맛에 반한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대박 매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3개월만에 2호점이 오픈됐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2호점은 대로변 입지가 좋은 곳에 열었다. 3호점도 계획중이다.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에서도 가맹 계약을 진행 중에 있다. 해외진출은 2017년부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실을 올해부터 보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기간에 문을 연 해외 점포가 핫플로 자리잡았다는 점이 더욱 소중하게 여져진다. 


해외진출 외에 올해 5월 커피브랜드 ‘아몽즈’도 론칭했다. 불막열삼에만 안주하지 않고 종합 식음료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다. 아몽즈는 고급커피의 대중화를 기치로 아직 시작 단계지만 고급 아라비카 원두를 가맹점 1천개 이상 가진 브랜드보다 더 저렴하게 공급한다. 내년에는 자체 생산한 쿠키 베이커리를 가맹점에 공급하기 위해서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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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 NO!! 위기를 성공으로 전환하면서 성장한 비결은?

오몽석 대표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위기를 성공으로 전환시키면서 성장해와 왔다. 


대학시절, 아무 것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기로 하고 시작했던 포장마차.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결국 노점상으로 꽤 성공을 거뒀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퇴사한 후 망해가던 치킨 매장을 부산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대박매장으로 변신시켰다. 


첫 조류독감으로 모두가 사업을 접을 때 치킨 대신 아구찜 갈비튀김 등 다양한 메뉴를 숍인숍으로 도입해 전화기 7대를 놓을 정도로 배달사업을 성공시켰다. 


지사를 운영할 당시 가맹본사가 부도나면서 큰 위기를 맞았지만 가맹점에 대한 책임감으로 유통회사를 차려 결국 부산을 대표하는 식품기업인 명우식품으로 성장시켰다. 


이렇게 위기와 고난을 성공으로 전환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도전 정신이다. 아무 경험도 없이 포장마차를 차렸던 것처럼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이 도전정신의 원동력이었다. 


둘째, 현장 경험을 통해 배웠다. 오몽석 대표는 지금도 다양한 교육을 통해 기업가에게 필요한 공부를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힘은 대학 알바부터 시작된 현장 실무와 성공의 경험이다. 현장에서 피부로 체험한 노하우는 DNA에 각인된다. 


셋째, 상대방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다. 망해가는 치킨점을 대박매장으로 전환시킬 때도, 조류독감을 맞았을 때도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것이 위기를 이기고 대박 매장이 된 비결이었다. 


넷째, 인(人)테크다. 오 대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첫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직원이 현재 사업부 본부장으로 성장했고 10년 이상 근속하며 회사에 헌신하는 인재들이 있다. ‘의리’와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질은 학창시절부터 오 대표의 특징이었다. 대학시절  학생들의 지지를 얻어 총학생 회장 선거에도 나갔다.  과대표를 맡았을 때는 학생들을 설득해서 행사 참여율 100%라는 성과를 내 교수님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 자질이 사업에서도 그대로 발휘되고 있다. 


다섯째, 부지런함이다. 한참 장사로 바쁠 때는 4시간 자고 20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 때의 습관이 몸에 베어 지금도 4시간 자면 눈이 번쩍 뜨인다. 부산에는 제조공장과 본사가 있지만 서울에도 사무실이 있다. 아침에 비행기로 서울에 오고 저녁에 마지막 기차로 부산에 내려가는 나날이 계속되지만, 정신력과 체력으로 그런 일정을 버텨낸다. 


여섯째, 책임감과 신뢰다. 불막열삼은 올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착한프랜차이즈로 지정됐다. 가맹점 특성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 지원 등 다양한 가맹점 지원 제도를 실시한 결과다. 지사장으로서 가맹본부가 부도를 내고 도망갔을 때 남아있는 가맹점을 버리지 않고 관리했던 것도 책임감 때문이었다. 제조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역시 마찬가지다. 


일곱째, 명확한 목표의식이다. 청소년기에 ‘사업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게 됐다. 가족이 말리는 데도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한 것, 대학시절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다양한 장사를 경험한 것도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덟째, 추진력이다. 불막열삼은 코로나 기간 중인 올해도 많은 성장을 기록했다. 모두들 코로나라서 안된다고 말할 때 ‘코로나에도 잘되는 곳은 잘된다, 코로나 핑계를 대지 말자’며 조직을 독려해 높은 성과를 냈다. 코로나 중에 아몽즈라는 커피 브랜드도 론칭해 가맹문의가 이어질 정도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홉째, 자기관리다. 오몽석 대표는 술자리든 어디든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운동을 통해 다져진 자기관리와 정신력 덕분이다. 일정이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3~4번 이상 새벽에 등산을 하는 것도 맑은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관리 노력의 일환이다. 


열 번째, 인내심이다. 위기의 상황들을 성공의 발판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될 때까지 한다는 인내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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