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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창업뉴스 [성공사례]

외딴바닷가에 식당창업해 연 16억 매출 올리며 성공한 청년 사장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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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5,791 등록일등록일: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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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주인공인 기택은 대왕 카스테라 장사를 했다. 카스테라 사업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난후 그의 가족은 중산층에서 몰락했다. 반지하 주택에 살면서 온 가족이 거짓말로 부잣집에 들어가 일을 하다가 기택은 살인자가 되어 지하실에서 숙주의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 같은 삶을 사는 처지로 전락했다. 

 

힘든 가정에서 태어나 무작정 사업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있었다. 중학교때부터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며 현장을 배웠고 군제대 후 장사에 도전했다. 하지만 카스테라 사업 실패로 스물여섯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거제도에서 소문난 맛집을 운영하는 김시운 사장(33) 이야기다. 김 사장은 첫 사업에 실패한 후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서 카스테라 매장을 차렸다가 하루 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영화 기생충의 기택과 다른 길을 걸었다. 노력을 통해 지금은 줄서는 맛집 ‘성포끝집’ 을 운영하면서 연매출 16억원을 올리는 사장이 되었다.

 

성포끝집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8월에 외딴 바닷가에 문을 열었다. 석 달만에 월 매출 1억원을 올리는 성공 매장이 됐고 거제도에 줄서는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26살에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 사장이 어떻게 힘든 터널을 빠져나와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 절망에 빠져 재기하지 못할 때 청년 사장이 파산 경험을 딛고 일어선 데는 분명 남다른 노력과 비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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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부터 꿈꾸던 사업가   

거제가 고향인 김시운 씨는 중학교때부터 사업가를 꿈꿨다. 드라마를 봐도 기업가가 나오는 이야기가 좋았다. 가정 형편상 일찌감치 대학은 포기하고 장사를 꿈꾸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까스, 피자, 치킨, 주점 등 웬만한 업종은 두루 섭렵했다.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어린 나이에도 아르바이트를 단순한 일로 보지 않고 사업을 배우는 학교라고 생각했다.


고3 겨울에 해병대를 지원해서 졸업 직 후 입대했다. 군 제대후 친구와 각각 100만원씩 투자해 동업으로 옛날 도너스와 만두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매장은 부산 홈플러스 해운대점에 숍인숍으로 얻었다. 투자비가 부족했지만 사업을 제안했던 사람이 한 달치 비용을 대준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장사는 웬만큼 됐지만 수수료가 비싸 남는 게 없었다. 고향을 떠나 장사를 하는데 손에 쥐는 돈이 없으니 지인의 집과 여관방을 전전하며 생활해야 했다. 버는 게 없으니 동업도 틀어져 결국 사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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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이 학교다   

사업을 접은 후 간판제작 시공 회사에 들어갔다. 고층 건물 간판 작업을 위해 스카이 크레인을 타고 8층 높이에 8미터가 넘는 간판을 다는 작업을 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었다. 일을 해야 저축을 하고 저축을 해야 사업자금을 만들 수 있기에 힘든 일도 다 참았다.

 

3D 업종이었지만 힘들지만은 않았던 건 배울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일찍 공부에 미련을 버린 김시운 사장에게는 언제나 삶의 현장이 가장 좋은 학교였다.

 

식당의 메뉴판을 만들어주면서 어떻게 메뉴판을 만들면 장사가 잘될까를 배웠다. 간판을 만들고 달아주면서 간판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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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받아 창업한 주점 사업에서 실패하다    

어느 정도 저축을 한 후 거제도로 가서 동네에서 가장 큰 요리 주점을 창업했다. 25살때였다. 투자는 1억8천만원선. 총투자비의 80%가 빌린 돈이었다. 저축한 돈에 주류회사 대출을 보탰다.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서 지인들을 찾아다녔는데 삼촌이 ‘너는 뭘해도 성공하겠다’며 3천만원을 빌려줬다.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도 보탰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거제도는 조선경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 경기가 침체되고 회사 내부에 외부 회식 금지령까지 떨어지면서 매출은 급 곤두박질 쳤다. 도시가 슬럼화되자 장사 잘되는 가게가 문을 닫는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하루 수십차례 빚독촉장이 날아들었다. 집에는 내용증명 우편이 쌓였다. 결국 사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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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00만원 벌던 매출이 20만원으로 떨어진 카스테라 사업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다시 3D 일을 해야 했다. 스카이크레인을 타고 간판을 다는 위험한 작업에 뛰어들었다.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26살에 지인이 다시 제안을 한다. 카스테라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카스테라 사업은 돈을 긁어 모으고 있었다. 대왕카스테라가 히트하면서 부산의 두 유명 백화점에서 하루 매출이 800만원까지 오르던 시절이었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장사를 하면 초기 비용이 적게 드니 딱 6개월만 장사를 해서 목돈을 만들어 빚을 갚자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다시 힘들게 돈을 빌려서 백화점에 카스테라 매장을 차렸다. 그런데 얼마후 <먹거리X파일>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카스테라 제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루 400만원씩 팔던 매출이 20만원대로 떨어졌다. 3개월만에 백화점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매장을 철수하게 됐다.

 

무너진 소상공인들의 삶의 현장, 지옥을 보다   

인생이 끝났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를 찾아가니 파산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26살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갑자기 백수가 되니까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할 일이 없어서 자신에게 카스테라 사업을 추천했던 사장을 따라다녔다. 부산, 울산 등 전국을 돌았다.

 

김시운 사장은 거기서 지옥을 봤다. 방송 여파로 카스테라 사업이 무너지자 그 장사를 하던 소상공인들에게는 날벼락이 내렸다. 카스테라를 접고 식빵이라도 팔아보겠다며 품목을 바꿔서 장사하는 사람, 미친 것처럼 가맹본사에 항의하고 울부짖는 사람, 욕하는 사람, 실성한 사람처럼 삶의 의욕을 잃고 멍하니 있는 사람.

 

‘유행 사업은 무섭구나’‘매스컴이 순식간에 수많은 사업자를 사지로 내몰고 죽일 수 있구나’ ‘사람이 망하면 저런 절망에 빠지는구나’ 김시운 씨가 실패한 소상공인들 보면서 배운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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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일어선 비결은?   

영화 기생충의 기택처럼 하루 아침에 사업이 무너지고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김시운 사장은 절대로 절망에 빠지지 말고 살아남아야 겠다, 성공해서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비결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게 됐다.

 

김시운 사장이 절망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비결은 첫째 마음가짐이었다. 김시운 사장은 멘탈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다.

 

둘째는 계획이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일자리도 없고 너무 막막했지만 정신을 차린 김 사장은 계획부터 세웠다. ‘내 나이 31살이 되면 신용불량 기록을 지울 수 있다’, ‘현재 빚이 얼마인데 무슨 일을 해서 매년 얼마씩 갚아야 겠다’,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은 트럭 한 대 뿐이니 우선 그 일로 다시 힘들지만 보수가 높은 간판 작업을 하자’,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일을 하면서 인테리어 시공을 제대로 배워서 직접 인테리어 사업을 하자’. 이렇게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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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운 소중한 교훈은?   

김시운 사장은 실패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재수없다고 털어버리기에는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돈은 잃었지만 얻은 게 있었다. 바로 겸손이다.

 

주점창업 초기에는 한 달에 1천만 원씩 벌었다. 계속 장사가 잘됐다면 방만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에 겸손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겸손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고 더 완전하게 더 신중하게 일을 하게 됐다.

 

김시운 사장은 3D 업종인 간판일을 하면서 부산에 있는 건축인테리어 학원에 등록해서 매주 거제에서 부산까지 가서 1년간 공부를 했다.   


학원 등록비가 400만 원이었는데 당시 수중에는 200만 원 밖에 없었다. 강사를 찾아갔다. 200만 원에 등록해 주면 배우면서 나머지 수강료를 내겠다고 사정했다. 1년간 간판 실무를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고 학원에서 실내 건축을 배운 후 인테리어 회사를 창업했다.


계속 배우는 것이 성공의 비결    

인테리어 회사를 하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까지 가서 스타트업 벤처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온라인 강의도 닥치는 대로 들었다. 포토샵은 기본이고 일러스트 디자인 등을 배웠다. 웬만한 건 직접 다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덕분에 인기가 많았다. 김시운 사장에게 일을 맡기면 인테리어는 물론 디자인 문제까지 해결됐기 때문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김시운 사장은 지금도 오로지 일과 배움에만 집중한다. 백종원씨의 골목식당, 음식비법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 등은 수백편을 모두 찾아서 봤다. 인테리어를 하면서도 식당이 망하고 흥하는 비결을 연구했다.

 

김시운 사장은 모든 경험에서 배운다. 식당에 가면 바닥, 천정, 가구 특성, 동선부터 본다. 메뉴판의 컬러, 글씨 폰트, 로고 특징도 살펴본다. 메뉴 구성, 가격 전략도 꼼꼼히 본다. 3년간 하루 3시간씩 자면서 돈을 벌고 빚을 갚고 저축하고 현장에서 배웠다.

 

인테리어 사업은 잘됐지만 김시운 씨는 다시 외식업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신용불량자 기록이 사라지던 31살에 다시 식당 창업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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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속에 창업한 식당, 줄서는 맛집으로 등극   

흙속에서 캐낸 진주처럼 절망을 딛고 죽을 힘을 다해서 일하며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 만든 식당이 성포끝집이다. 7080노래방 자리를 얻어서 새로 공사를 했다. 투자비는 1억5천만 원이 들었다. 매달 1500만 원씩 저축해서 마련한 투자비였다.  


성포끝집이 문을 연 건 2020년 7월 30일이다. 주변에서는 다 말렸다. 코로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점포의 상권에도 부정적이었다.  마을과는 자동차로 10분 이상 거리가 떨어진 바닷가였다. 

 

하지만 김 사장은 그동안의 배움을 통해 그 매장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마을과 거리는 있었지만 주변에 주차 여건이 너무 좋았다. 공판장도 있고, 경치가 좋고, 아스팔트 길도 좋고, 주차도 100대 이상 편하게 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맛만 좋으면 무조건 된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현재 성포끝집을 찾는 고객의 90% 이상이 차량을 타고 온다. 성포끝집은 바닷가에 있다. 3면이 바다다. 그래서 6인용 테이블 4개를 빼고는 바처럼 창가에 앉아서 경치를 보면서 식사를 하도록 내부를 구성한 특이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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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3개월만에 매출 1억 달성, 해물한상차림으로 히트 

성포끝집은 관광지에서 흔하게 보는 횟집 분위기가 아니다. 레스토랑 같다. 메뉴는 전복톳밥 정식과 꼬막정식이 있고 한상차림으로 나가는 프리미엄 해물밥상이 특징이다.

 

전복내장과 톳으로 지은 밥에 간장 새우장, 순두부장, 젓갈, 반찬, 전복버터구이 등이 제공된다. 꼬막정식은 꼬막 비빔밥과 꼬막 비빔면이 나간다. 한상 차림이 3만6000원인데 2~3인이 함께 즐기는 메뉴다. 테이블 단가는 4만3000원대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문을 열다보니 식당이 홍보를 하면 욕먹던 시절이라 홍보도 하지 못했다. 7월 30일에 문을 열었다. 8월에는 1일 80, 90만 원 매출이 오르더니 10월에는 1억2천만 원까지 매출이 올랐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강화된 가운데서 개업 3개월만에 40평 매장에서 1억 원대 매출을 올린 것이다. 성포끝집은 주중에는 200, 300만 원, 주말에는 600만 원 이상 매출이 오른다. 성수기와 비수기 매출이 조금 다르지만 올해도 연간 10억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매장은 점장이 운영, 사업 전략 연구개발에 집중하다

올해 1월에는 선농재라는 식당도 열었다. 선농재는 70평 매장을 얻어서 20평은 사무실로 쓰고 50평만 매장으로 운영한다. 테이블 수는 14개다. 한식과 해산물을 믹스해서 바다를 담은 한식이라는 슬로건으로 만든 음식점이다. 장군님밥과 수꼬막 국수가 대표 메뉴이고 2인분에 2만9000원이다.

 

이 매장을 차리는 데는 2억 1천만 원이 들었다. 투자비 중 점포 보증금은 3천만 원이다. 월세 200만 원이던 매장인데 건물주가 매장이 비어있는 걸 싫어해서 일정 기간 동안 월세 50만 원에 쓰기로 했다. 성수기와 비수기 매출이 다른데 월 5천만 원에서 8천만 원대 매출이 오른다.

 

선농재와 성포끝집은 모두 점장을 두고 운영한다. 김시운 사장은 사무실에서 메뉴개발, 사업 전략 구상, 마케팅을 담당한다. 점장들이 2천만~3천만원 가량 투자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배달은 하지 않고 내점 고객만 받는다. 월 마케팅비는 계절에 따라서 20만~50만 원 정도 쓴다. 지역 인플루언서를 초청하기도 하고, 당근 마케팅을 지역별로 순회하면서 하는 정도다. 


성포끝집이 바닷가에서 성공한 비결은 바닷가 풍경과 남다른 메뉴 차별화, 레스토랑같이 멋진 인테리어, 친근한 고객 서비스 덕분이다.

 

소상공인 실패 막는 방패가 되고 싶다

김시운 사장은 모든 메뉴를 직접 개발한다. 전문 조리사 출신은 아니지면 장사를 위해 방송이나 유튜브 등을 보면서, 그리고 현장을 방문해서 배운다. 배운 내용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한다.

 

1, 2인분용 음식을 먼저 만들어보고 그 레시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면서 더할 것과 뺄 것을 찾는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조리 레시피와 맛을 완성한다.

 

25살에 도전했던 주점 창업은 실패 했지만 거기서 배운 게 많다. 당시 냉동 식재료를 쓰는 게 싫었던 김 사장은 일식 양식 한식 치킨까지 온갖 메뉴를 다 안주로 개발했다. 그게 지금 음식 장사 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일만 하다보니 돈 쓸 일이 없다. 벌면 다시 재투자할 계획이다. 내년에도 매장 2개를 더 오픈할 계획이다.김시운 사장은 영화 기생충 주인공 기택처럼 사업에 실패한 후 불행한 길을 밟는 소상공인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26살에 신용불량자가 된 후 죽을 힘을 다해 재기에 성공한 자신처럼 위기를 겪은 소상공인들이 재기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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