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플랜’으로 성공! IT회사 직장인의 스몰장례사업 창업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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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9,154 등록일등록일: 2021-12-03본문
코로나19는 많은 문제를 낳고 있지만 이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바로 작은 장례식의 확산이다.
사회적거리두기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족장을 하게 된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가장 큰 것은 장례비용이 줄어든 것이고, 가족끼리 좀 더 차분하게 고인을 추모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아이티지오의 김상태 대표(57)는 이렇게 가족이 주체가 되는 작은 장례식에 앞장서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김상태 대표는 국내 유명한 IT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젊은시절, 훗날 자신이 장례 관련 서비스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운명처럼 이끌려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회사에서 작성한 서류 하나가 계기가 됐다.
◆IT회사 다니던 직장인에서 장례사업가로 변신
IT회사에 근무할 당시 김상태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한 회사의 장례관련 복지에 대한 기획서를 작성하게 된다. 평소 장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지만 기획서를 작성하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3일장, 삼베 수의, 유족 완장 등이 모두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제의 잔재가 장례문화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걸 바꾼다면 의미있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기획서는 실행되지 않았지만 김 대표는 그즈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장례쪽에 미련이 남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용인공원묘지 관리이사직에 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고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수락한다.
김 대표는 2005년부터 용인공원묘지에서 7년간 일하며 장례사업을 기획하고 공원묘지 관리운영시스템을 수립한다. 상조회사의 전문경영인으로도 6년간 일했다. 그렇게 장례사업쪽에 경력을 쌓은 후 2019년 5천만원의 창업자금을 들여 ㈜아이티지오를 설립한다.
◆5천만원 투자해 장례서비스업을 창업하다
김 대표는 10년간 장례사업을 해왔지만 직장인과 창업해서 사장이 되는 일은 전혀 다르다. 본인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은 ㈜아이티지오가 처음이다. 걱정도 많았지만 2005년도부터 장례사업에 관여하면서 이 사업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바꿔야할 장례문화가 있어서 꼭 해봐야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김 대표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3가지다. 근조기 및 화환 배송서비스를 하는 ‘지오스테이션’, 후불상조인 ‘무호상조’, 그리고 장례사전설계서비스를 하는 ‘지오엔딩서비스’이다. 이 중에서 김 대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장례사전설계서비스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는 김 대표가 2007년 장례 관련 일을 하면서 도입했다. 국내 최초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장례사업을 하면서 들었던 가장 큰 회의감이 장례비용에 잔뜩 낀 거품이었고, 그 모든 게 장례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장례를 치르는 유족들에게 상조업체들은 여러 가지 상품들을 제시한다. 가장 싼 거를 택하면 고인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무조건 비싼 것을 택하게 된다. 고인 잃은 슬픔을 이용한 업체들의 장삿속에 유족들은 지갑을 열게 되고 이것이 장례비용에 거품이 끼게 된 배경이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는 돌아가신 후에 닥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게 아니라 사전에 장례식장과 장지 등을 미리 결정하고 전체적인 장례비용의 예산을 설계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엔딩플래너라고 부른다.
흔히 엔딩플래너와 장례지도사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장례지도사는 돌아가신 후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고인한테 수의를 입히고 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서 입관식을 하고 가족들이 고인과 이별할 수 있도록 애도의 과정을 함께 한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 비용 30만원, 일본은 전체 장례비용의 2%대 형성
장례사전설계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아직 건강한 부모를 모시는 자식들도 있지만, 주로 아픈 환자들의 가족들이 많다. 최근에는 환자 본인이 상담을 신청해오는 경우도 있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의 비용은 개인의 경우 30만원이고, 지오스테이션으로 계약을 한 기업회원의 경우 상담비용은 받지 않고 있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로 시작해 후불제인 ‘무호상조’까지 이용하는 고객도 있는데 대부분 풀패키지형 상품을 이용한다. 다른 후불제 상조와 다른 점은 옵션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엔딩플랜 시장이 자리잡으려면 제대로된 비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장례사전설계서비스 비용을 전체 장례비용의 2%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작은장례식이 늘고 있다. 그동안 결혼식과 장례식은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행사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장례식장에 모일 수 있는 인원이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가족장을 치르게 됐고, 그로인해 정착된 문화지만 긍정적인 변화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꼭 불러야할 사람만 불러서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게 되고, 서로 안 부르고 안 가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작은 장례식이 자리 잡아갈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조의금만으로 장례비용이 해결 안 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사전에 장례를 준비해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 일반 중산층의 장례비용은 장지까지 2500만원정도 잡는다. 그러나 가족중심의 준비된 작은장례를 할 경우에는 1/3의 비용으로도 의미있는 장례를 치를 수 있다. 김 대표가 장례사전설계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런 이유다 .
◆작고 품격있는 장례식 확산되려면 엔딩플래너들이 많아져야
장례식을 사전에 준비해서 좀 더 품격 있고 저렴한 비용으로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맡아서 하는 사람을 엔딩플래너라고 부른다.
장례사전설계서비스를 진행하는 엔딩플래너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재는 장례업계에서 일했거나 장례지도사로 활동하는 사람들 모두가 할 수 있다. 작은장례식이 확산되고, 준비해서 품격있는 장례를 치르는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이런 엔딩플래너 시장이 커져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시장이 커지면 교육기관과 제휴를 맺어 자격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김 대표의 회사에서 엔딩플래너들로 활동하는 직원들은 김 대표 포함 4명. 그 외 직원들은 모두 장례업계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이고, 현재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일을 하고 있다. 직원들 이외에 전국의 장례 의전팀 8곳과 제휴를 맺어 일을 한다.
현재 김 대표 회사에서는 한달에 5건 정도 장례를 진행하고, 사전설계서비스는 10~20건 정도 하고 있다.
㈜아이티지오는 개인회원보다는 주로 B2B 사업을 한다. 개인회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홍보마케팅에 힘을 실어야 하지만 아직 회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어렵다. 대신 공기관이나 개인단체 등과 제휴를 맺어 일을 많이 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도 영업에 도움이 된다.
◆장례 서비스 바가지는 무지 때문에 생긴다
김 대표가 엔딩플래너를 하며 상담을 해보면 고객들이 장례에 대한 정보를 너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시중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상조업체에서 이것을 표준화해서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미리 공개하면 나중에 부풀려서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정보를 모르기에 결과적으로 70만원 하는 시립 봉안당에서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만원 이천만원짜리를 사야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 있고 비싼데로 할 사람들은 상관없다. 그런데 돈을 절감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몰라서 그곳으로 못하고 만다. 70만원 들 것을 천만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요즘 인기얻는 앤딩플래너, 자격증 보다 강한 멘탈이 중요
김 대표가 장례를 미리 준비해주고 설계해주는 일을 하는 엔딩플래너로서 겪는 가장 큰 애로점은 바로 죽음, 장례에 대한 ‘외면’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장례를 미리 준비한다고 하면 가족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저 놈이 불경하게 아버지 빨리 돌아가시라고 고사를 지내는 구나’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연명치료를 해서 혼수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죽음을 인정하고 내 인생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바뀌다보면 자연스럽게 장례를 사전에 준비하는 문화도 확산될 것이다.
주위에 보면 의외로 장례지도사나 장례사업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다. 장례지도사가 되려면 두달 정도 교육기관을 다니거나 대학에서 장례지도학과를 나와 자격증을 따는 방법이 있다. 교육기관에서는 실습을 포함해서 표준교육과정 300시간을 수료하면 자격증을 준다. 그 후 보조로 시작해서 수년간 현장실습을 통해서 장례지도사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격증보다 중요한 것은 강한 멘탈을 갖는 것이다.
장례사업은 본인과 타인의 ‘인식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장례사업은 시신을 봐야하고, 이장을 하면 유골도 봐야 하는 험한 일이다. 이것을 못해서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또한 주위에서 장례 관련 일을 한다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런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봉사정신이 필요하다.
◆싱글족시대, 내 장례식을 직접 준비하는 고객들
작은장례식과 함께 늘고 있는 것이 나만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김 대표의 고객 중에는 최근에는 환자 본인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죽음을 직접 준비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며 자신의 장례 방식을 미리 결정한다. 그렇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들한테 부담을 주기 싫기 때문이다.
어떤 고객 중에는 수의를 입는 대신 자신이 예전에 입던 옷을 입혀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인데 자신이 입던 연미복을 입혀 달라고 유언을 했다.
이렇게 사전에 장례를 준비하면 자신이 평소 그리던 나만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고 좀더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고 삶의 연장으로 보면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물론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죽음을 직접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김 대표는 엔딩플래너를 시간을 벌어주는, 시간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생각과 과정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김 대표는 “특히 환자와 가족들이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서운한 감정을 다 풀고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가시게 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품격있는 삶의 마무리가 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장례를 준비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