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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창업뉴스 [성공사례]

60년 역사의 식당이 매출을 두배로 올린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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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9 등록일등록일: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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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있는 삼송초밥은 6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송초밥은 오난숙 여사(77)와 아들인 주강재 사장(44)이 운영하고 있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명의 힘에 대한 신화가 존재한다.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명은 피할 수 없다,라는 인식은 숙명론적인 세계관의 반영이다.

주강재 사장이 딱 그런 케이스다. 어머니가 60년 된, 대한민국 대표 초밥집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외동아들인 주강재 사장은 한 번도 자신이 식당을 이어받아서 경영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식당 일이 싫어서 도망다니던 외동아들

어머니가 60년 역사를 가진 식당을 운영하거나 말거나 주 사장은 원하는 것이 있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식당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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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초밥은 부산 남포동에 있다. 남포동은 부산의 핵심 상권이었다. 하지만 상권의 축이 신개발지로 옮겨가고 호랑이 같은 기상으로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점점 연로해졌다.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주강재 사장이 합류한 후 위축됐던 식당 매출은 두 배로 껑충 뛰었다.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초밥집이라고 하더라도 남포동 상권이 위축되면서 고객층도 바뀌고 시대 흐름이 변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식당을 운영하지 않으려고 도망다녔던 아들이 정신을 차리면서 60년 된 초밥집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가업승계를 거부하던 주강재 사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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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을 태동시킨 할아버지

주강재 사장의 할아버지는 부산 자갈치 시장을 만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대 생인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것을 보고 해방 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왔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마침 할머니의 외갓집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자갈밭이었던 지금의 자갈치시장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생계를 위해서 외갓집에서 잡은 생선을 가져와서 팔기 시작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해 지금의 자갈치 시장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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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일식초밥집을 인수하다

할아버지가 생선관련 사업을 하다보니 그 영향은 주강재 사장의 부모님에게도 미쳤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주강재 사장의 어머니 오난숙여사는 일식집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다.

삼송 초밥은 오난숙 여사가 창업한 식당은 아니다.

당시 삼송 초밥은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일식당이었다. 조리사들은 일제시대에 회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명성이 있었지만 삼송초밥 창업자인 김현덕 사장에게는 후계자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삼송초밥에 욕심을 냈지만 주사장의 할아버지와 거래 관계가 있던 김현덕 사장은 주사장의 어머니인 오난숙 여사에게만 가게를 넘기고 싶어했다.

오 여사라면 안심하고 가게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운영하던 다른 일식당을 다 정리하고 삼송초밥을 인수해서 운영했다. 그때가 1990년대 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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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어 리더들이 찾는 식당

당시는 남포동이 부산의 핵심 상권이고 부산시청을 비롯해 검찰청 법원 등 주요 관공서가 반경 1km 안에 있다 보니 삼송초밥의 주요 고객에는 부산 지역 고위 공직자들이 많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결혼 상견례를 했고 손님들을 접대하고 모임을 가졌다.

오난숙 여사는 처음에 임대로 매장을 인수했으나 돈을 벌어서 지하 1층 지상 4층 인 삼송초밥의 건물을 매입할 정도로 성공했다. 지금은 2개 층을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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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그렇게 잘나가는 일식당의 사장이었지만 주강재 사장은 도통 식당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무살 때 유럽 여행을 갔던 주사장은 현지에서 일본에 비해 한국의 위상이 낮다고 생각해 제조업을 해서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을 키우고 싶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진학을 했지만 전공이 맞지 않아 미국에 가서 새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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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은 핑계, 미국 유학이 목적

마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삼송초밥과 초밥집 동업을 하고 싶다는 지인이 나타났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식초밥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오난숙 여사는 유학을 원하는 아들이 미국에 가서 초밥집 창업도 하고 그런 다음에 공부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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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유학간다는 꿈에 부풀어 주강재 사장은 매장에서 열심히 조리를 배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프로젝트는 잘 되지 않았다.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던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매장은 오픈도 하지 못했다. 매장 오픈 준비로 현지에서 유학 준비를 하지 못했던 주강재 사장은 시간만 낭비하고 1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식당 운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했다. 주말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가서 강의를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대기업 입사, 그리고 사기

하지만 영어 강사를 하면서도 미국으로 유학가고 싶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인이 미국의 좋은 대학으로 유학을 가려면 대기업 경력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말을 해줬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지원해 합격했다.

서울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식당 술자리에서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된다. 그 사람은 서울 가락시장에서 양파를 판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서로 친해질 무렵 그는 가락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국비를 지원받아 영어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이 매우 유망하다며 주강재 사장을 유혹했다.

눈에 꽁깍지가 낀다는 말이 딱 맞았다. 영어 강사를 했던 주 사장은 유학을 가겠다는 꿈을 잊고 교육 사업에 마음이 끌렸다. 계획도 매우 그럴 듯 했다. 두 사람은 동업을 하기로 하고 주 사장은 회사를 그만뒀다. 그동안 저축한 돈에 대출까지 받아서 그에게 창업 자금을 건넸다. 하지만 돈을 받은 후부터 동업자는 전화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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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부산에 내려오다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이미 회사는 그만뒀고 사기 당한 돈을 찾기 위해 변호사까지 써가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차마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있을 무렵 부산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나이가 들어 식당을 경영하기 힘드니 내려와서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식당 일이 너무 싫어서 도망다니던 그는 서울 생활에도 지칠 대로 지쳐 있어. 부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곁으로 내려간 후에도 여전히 식당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자잘한 수리 수선이 필요할 때가 많았는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월급 120만원씩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도왔다. 대기업 다닐 때 받던 월급보다 서너 배가 더 작은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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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단골들이 마음을 움직이다

그런데 일 년 쯤 지나면서 주강재 사장의 마음 속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랜 노포를 소중한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하게 여기며 찾아온 단골 고객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알게 된 것이었다.

단골 손님들은 주사장이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합류한 것을 보고 마치 잃어버린 자신의 아들을 되찾은 것처럼 반가워하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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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중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많다 보니 자녀들이 해외에 나가서 살고 있는 사례가 많았는데 그분들은 주사장이 오난숙 여사 옆에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주사장에게 삼송초밥을 잘 운영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주사장 마음 속에 사명감이 싹트고 삼송초밥을 100년, 200년 역사를 가진 노포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그는 이 식당이 언제 문을 닫아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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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경영자인 어머니가 최고의 스승

미국 가기 전 동업으로 초밥집을 차리게 될 것을 대비해서 주방 교육을 미리 받기는 했지만 마음 자세가 변하자 본격적으로 조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삼송초밥의 주방을 오랫동안 지키면서 맛을 유지한 조리부장이 그에게 좋은 스승이었다. 평생 일식당을 경영한 오난숙 여사는 일식 조리사 100명도 거뜬히 당해낼 만큼 베테랑 경영자였다. 그런 어머니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외부 교육 프로그램도 열심히 찾아 다녔다.

주강재 사장은 그렇게 베테랑들의 지도를 받으며 삼송초밥을 경영하고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것을 하나씩 배우고 터득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비록 조리 전공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게 돼 대학 강사로 일식조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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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재 사장이 합류하면서 상권 변화로 인해 떨어졌던 매출은 두 배나 올랐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 인증도 받고 매년 블루리본 맛집으로 선정되고 있다. SNS계정도 개설했고, 네이버 플레이스 관리도 조금씩 하고 있다.

삼송초밥은 2,3층인데 총 100평이 넘는 규모다. 2층은 일반 손님이, 3층은 단체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주강재 사장은 단체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객단가가 높아서 단체 고객을 유치하면 매출이 껑충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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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했다. 덕분에 유럽과 일본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크게 늘었다. 좌식으로된 공간은 입식으로 변경해 젊은층 고객이 매장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60년 역사만큼 고령자 고객이 많아 젊은층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삼송초밥이 가진 강점을 고객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직접 대면하는 콘텐츠 마케팅이었다. SNS만큼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처럼 우리 메뉴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은 입소문의 원동력이 됐다.

평일에는 인근 직장인이 매장을 많이 찾지만 주말에는 가족단위 외식 고객과 외지 관광객들이 많다. 마케팅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입소문을 통해서 삼송초밥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객단가는 1인당 5만원 선이다.


◆전통을 지킬 것인가? 새롭게 변할 것인가?

세대가 변하고 상권도 변하고 경쟁 환경도 달라지고 있는데 60년 된 식당이 100년, 200년 지속되려면 어떤 정책을 갖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주제는 주강재 사장이 늘 고민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강재 사장은 명확한 경영 원칙을 갖고 60년 된 식당이 지켜온 오래된 가치를 잘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통을 잘 계승하면서 미세한 변화만 주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후토마키이다. 후토마키는 오래전부터 조리사들이 가장 없애고 싶어 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계란말이 하나를 만드는데 15분 이상 걸린다. 초밥은 만드는 시간도 짧고 가격도 비싼데 김밥은 공만 많이 들고 비싸게 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조리자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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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후토마키, 백겹으로 된 달걀말이

하지만 삼송초밥은 후토마키의 전통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후토마키를 만들 때는 오방색을 잘 구현해야 한다.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을 황 적 청 흑 백 5가지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들놀이초밥으로 여겨져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고 귀한 날만 먹는 특별한 음식으로 여겨졌던 게 후토마키다.

김초밥에 들어가는 생선 가루인 오보로는 보통 싼 대구로 만들지만 삼송초밥은 자연상 광어로 만든다. 원래 맨드라미를 사용해 핑크빛으로 색을 내는데 일본 사람들도 삼송 초밥을 방문해 오보로를 수출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이다.

달걀말이는 백겹으로 만든다. 그 정도 돼야 달걀을 먹을 때 카스테라같이 폭신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전통을 그대로 구현한 삼송초밥의 후토마키는 전국 어디에서도 맛을 볼 수가 없다. 오직 삼송초밥에서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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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된 씨간장으로 소스 만들어

삼송초밥의 장어요리는 60년 된 씨간장으로 소스를 만든다. 60년 동안 이어져 온 농축 소스라 입안에 장어를 넣었을 때 살살 녹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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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왕에게 진상하던 음식인 호시모노라는 복어육포도 삼송초밥에서만 만날 수 있다.

요즘 MZ세대들이 좋아하는 텐동은 원래 6.25시절부터 즐기던 음식이다. 그 무렵에도 오차즈케와 오야꼬동은 아침에 즐기고 점심 때는 텐동이나 규동을 즐기곤 했다.

삼송초밥의 텐동은 맛있는 튀김으로 유명하다. 한 미식가는 삼송초밥의 튀김에서 폭신한 눈 밟는 소리가 난다며 칭찬했다.

알탕도 보통은 대구 냉동 알을 사용하지만 삼송 초밥에서는 그날 직접 잡은 생선의 알과 내장으로 끓인다. 그래서 맛이 훨씬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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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초밥을 위한 비결

이렇게 삼송초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메뉴가 있지만 초밥 전문점이니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초밥의 맛이다.

초밥 맛을 내기 위해서 생선은 무조건 크고 가장 신선한 것을 사용한다.

초밥을 만드는 밥도 엄선된 쌀을 사용하여 정성을 다해서 짓는다. 10도 이하의 차가운 물에서 한 시간 이상 불리고 밥을 지을 때 최상급 생다시마를 함께 넣는다. 밥물 양도 온도나 습도에 따라서 다르게 관리한다

삼송 초밥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메뉴는 초밥 정식이다. 초밥 정식 가격은 5만원선. 저렴하지는 않지만 삼송초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메뉴다. 과거에는 이 정도 가격이면 어르신들이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20,30대들도 미식가가 많아서 5만원 정도는 작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지불하는 경향이다. 그래서 갈수록 젊은 고객층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아주 특별한 날이라면 1인당 10만원대인 오마카세 메뉴가 좋다. 그날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만 만들어내는 오마카세는 프리미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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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일식 주방 관리

삼송초밥에는 주 사장의 어머니와 주 사장을 빼고도 7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현역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조리장은 78살이다. 장기근속하는 직원들도 많지만 직원 관리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삼송초밥의 전통과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주방 인력이 바뀌면 그동안 지켜왔던 전통이 흔들리기 쉽다. 가끔은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서 매장을 그만두는 조리장도 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삼송초밥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강조한다. 그렇다고 조리장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의견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열어놓고 있다.

오난숙 여사와 주강재 사장은 매일 매장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주강재 사장은 늘 연세가 많은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언젠가 허리와 다리가 편하지 않은 어머니를 위해서 아쿠아로빅을 끊어 드렸는데 어머니는 조금 다니다 말기를 반복했다. 아쿠아로빅은 텃세가 심해서 새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주강재 사장이 어머니와 함께 회원이 되어서 8개월 동안 아쿠아로빅을 했다. 50명 중에서 젊은 남자는 주강제 사장 1명밖에 없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운동을 할 수있도록 하기 위해서 참여한 것이었다.

주강재 사장의 이런 노력 덕분에 이제는 어머니 혼자서도 운동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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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없지만 서비스는 발전한다

삼송초밥을 방문하면 오래된 노포의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매장을 조금만 돌아보면 60년이나 된 매장이 이렇게 깨끗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매장은 오래됐지만 위생이나 청결만큼은 최신 매장 못지않게 뛰어나야 한다는 게 주강재 사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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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없지만 고객 입장에서 소소하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추억을 찾아서 삼송초밥을 찾는 고령자가 계단 올라오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계단에 손잡이를 설치한 것도 그 중에 하나다. 또 방을 좌식으로 바꾸었지만 어린 자녀를 동반한 고객들을 위해서 다다미 방을 남겨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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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의 미래 성장 전략은?

60년 된 노포의 성장 전략은 어떻게 짜고 있을까?

주강재 사장은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전통을 잘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삼송초밥이 추구하는 원칙과 가치관이 잘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 식품 제조 기업으로의 성장을 고려하고 있다. 초밥은 일식이지만 삼송초밥에서 맛을 보고 삼송 초밥의 식재료를 수입하고 싶다는 일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품 제조 가공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도 이수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프랜차이즈를 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현재 삼송초밥이 가진 역량을 기반으로 텐동이나 스키야키, 규동, 우나기동 전문점 사업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의견에도 귀를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60년 역사의 뿌리가 깊은 만큼 설익은 수준으로 대충하고 싶지는 않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경희의 원포인트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인 도민준은 '인간의 일생은 인간이 철들 만큼 길지 않다'고 말한다. 사업도 그렇다. 어떤 사업이든 창업자가 전성기를 한없이 누릴 만큼 인간의 수명이 길지 않다. 창업자와 함께 고객도 나이가 드는데 젊은 고객을 새로 유입시키지 못하면 사업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노포들이 전통과 변화의 경계선에서 고민한다. 노포라도 변화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 숙성된 장맛같은 전통의 핵심가치는 큰소리로 강조하고 서비스와 소통 방식은 시대흐름에 따라 바꾸면 된다.

이경희. 부자비즈 대표 컨설턴트. KFCEO과정 주임교수. 부산프랜차이즈사관학교 주임교수. 저서 <내사업을 한다는 것><CEO의 탄생><이경희 소장의 2020창업트렌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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