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자산가가 배달 음식점을 창업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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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836 등록일등록일: 2023-06-05본문
2019년 여름, 50대 후반의 중년이 공유 주방에 배달음식점을 차렸다. 불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고 딩동 소리를 들으며 주문에 응대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대기업 은퇴자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는 몇년 전 스타트업 기업의 지분을 정리한 수백억대 자산가이다. 죽을 때까지 놀고 먹을 수 있는 그는 왜 다시 배달 음식점을 창업한 것일까?
◆수백억대 자산가가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많은 청년들이 ‘파이어족’을 꿈꾼다. 이들은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30대 말이나 늦어도 40대 초반까지는 자발적으로 이른 은퇴를 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파이족과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다. 유니타스 대표이자 장부대장을 운영하는 ㈜푸드노트서비스의 강병태 대표(60)이다.
강병태 대표는 2019년 4월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의 지분을 전량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게 매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점에 새로 법인을 설립하고 얼마 후 <경성밥상>이라는 배달음식점을 창업했다. 그가 설립한 ㈜푸드노트서비스는 2022년 5월에 37.5억을 투자유치한데 이어 투자빙하기로 불리는 올해 3월에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한 번 성공도 어렵다는 스타트업 시장에서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며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내 첫 IT교육프로그램 1기생으로 등록, 삶의 방향이 바뀌다
강병태 대표는 금수저가 아니다. 지방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그런 그가 어떻게 스타트업계의 시니어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것일까?
작은 선택 하나가 인생을 바꾸고 평생 영향을 미친다. 그런 기회는 다방면에서 나올 수 있지만 가장 흔한 것 중에 하나가 교육 프로그램이다. 물리학 전공자로서 그저그런 장기도 없이 취업에 도전해야 했던 강 사장이 젊은 시절에 한 선택은 미래에 뜰 분야의 교육을 듣고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었다. 쌍용정보통신이라는 쌍용그룹의 자회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IT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강 대표는 그 교육에 1기로 참가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프로그램 짜는 법을 배우는 것은 너무 재미있었다. 적성에 딱 맞았다. 교육을 마친 후 그는 한화유통에 취업했다. 거기서 물류 및 체인스토어의 다점포 운영 프로그램 설계, 개발자로 근무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프로그램 설계와 개발일이 너무 좋았던 강 대표는 업계에 소문이 날 정도로 일을 잘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그가 글로벌 회사에 스카웃 되는 발판이 되었다.
◆글로벌회사 근무 경험을 기반으로 무작정 창업
1995년 미국의 글로벌 기업 AT&T가 한국에 진출했는데 그 회사에 프로젝트 매니저로 스카웃이 됐다. 국내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하며 배우는 게 많았지만 글로벌 회사의 근무 경력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다. 한국 회사와는 다른 경영 관리 시스템을 배운 것. 목표를 설계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글로벌 업무 수준을 경험한 게 훗날 창업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개발 파트의 관리자로 입사했으나 얼마 후 그는 사표를 품에 안고 영업직으로 전환을 요구했다. 다소 우락부락한 인상에 말도 더듬는 강 사장은 영업직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는 반대를 했지만, 퇴직을 불사하는 강력한 요청에 결국 회사도 두 손 들고 강 사장의 요구를 수용했다.
영업부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고객사를 만났다. 글로벌 기업이다보니 고객사도 국내 대기업이 대부분이었다.
◆개발만 잘해? 영업도 잘하는 비결
영업직에 맞지 않는다는 회사의 평가와 달리 강 대표는 영업부에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항상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충족해주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프로그램 개발은 물론 영업에서도 힘을 발휘한 것이다. 평소 회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개발 역량으로 나타났고 영업부로 옮긴 후에는 고객의 신뢰로 나타났다. 아무도 강 대표가 영업을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좋은 태도와 습관이 능력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훗날 강병태 대표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고객사들은 앞다퉈 도와주겠다고 했을 정도다. 5년 정도 글로벌 회사에서 일한 후 강 대표는 2001년 창업에 도전했다.
퇴직 당시 강 대표는 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지금은 연봉 1억이 큰 돈이 아니지만 20년전만 해도 직장인에게는 꿈의 연봉이었다. 그렇게 높은 급여를 과감하게 포기한 것은 당시 불고 있던 벤처붐도 영향을 미쳤다.
회사에서 조직관리를 잘해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던 강병태 대표가 퇴사를 한다고 하니 함께 하겠다는 직원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 동료가 힘이 됐다.
◆무작정 회사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
회사를 나올 때만해도 아무 계획이 없었다. 무작정 창업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퇴사 후에 본격적으로 어떤 사업을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함께 하는 동료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자본력이 좋지않아 무조건 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했다. 첫 사업은 일본 회사의 한국 총판이었다. 당시 국내 결제시장은 카드가 60% 현금이 40% 정도 였다. 슈퍼마켓마다 대부분 코인디스펜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현금을 내면 자동으로 동전을 거슬러주는 장치다. 특정 일본 회사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장치를 유통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또 다른 회사와 컨택을 해서 한국 독점 계약을 따는 게 목적이었다. 일본 회사는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했고 목표로 하는 시장 점유율이 있었다. 그 회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그 회사가 한국에 팔고 싶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영업망까지 설계한 후 일본으로 갔다. 한국 후지쯔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연간 500대를 파는 조건으로 한국 총판을 받았다.
창업 초기 회사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첫 계약이 성공한 데는 강병태 사장의 치밀함이 한몫했다. 시장 조사를 하고 미리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한 후 그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사전에 조정해서 계약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일본으로 날아간 것이다. 직원 4명으로 시작해 창업 첫 해 매출은 10억 원이었다.
◆유통사업에서 구독형 사업으로 전환하라
유니타스의 두 번째 사업은 신용카드 전자서명기였다. 이전에는 카드결제를 하면 카드결제영수증 2장을 사업자와 고객이 나눠가졌다. 불편한 구조였다. 미국에서 전자서명기를 수입해서 대형 유통회사에 납품했다. 국내 10대 유통회사가 다 도입할 정도로 히트했다.
그런데 강 대표가 수입한 전자서명기가 히트하자 밴사들이 전자서명기를 만들어서 무상으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강 대표가 수입한 전사서명기는 필체의 무게 즉 필압까지 감지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제품이었지만 밴사들이 배포한 전자서명기는 일종의 이미지 캡쳐 기능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용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급속도로 확산됐다. 그렇게 두 번째 사업은 시장 환경 변화로 2년 정도 전개한 후 사업을 접었다.
세 번째 사업은 은행의 시장 리스크 관리 시스템 솔루션 사업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에서는 국내 은행들에게 위험가중치를 적용해 관리하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바젤2 규약준수)을 의무화했는데 금융기관은 2년 안에 그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다.
강 대표는 그 분야의 솔루션을 가진 회사를 컨택해 총판 계약을 받고 그 솔루션으로 국내 70, 80% 은행을 선점했다. 그 사업으로 수십억을 벌었지만 그렇게 시류에 영합하는 단기적인 유통 사업이 아니라 구독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배달시장이 뜬다? 배달포스업에 도전
그래서 시작한 사업이 배달 포스사업이었다. 당시에는 밴사가 무상으로 포스를 제공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직원 1~2명을 데리고 있어 포스 서비스의 질이 낮았다.
강병태 대표가 배달 포스를 개발해서 포스 장애가 일어나면 365일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포스에서 발생하는 장애 전화를 받아주는 전략을 세웠다.
2010년 배달의 민족이 출시되면서 이후 배달앱 시장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소상공인들은 배달앱 단말기를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포스에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배달 대행을 부르려면 다시 주소를 입력해야 한다. 주소만 두 번 입력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강 대표 회사가 개발한 배달 포스를 사용하면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없어진다.
배달앱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배달대행과 포스에 입력이 되는 시스템이므로 사업자는 수락만 누르면 된다. 이런 편리함을 무기로 국내에서 가장 큰 치킨 회사에도 프로그램을 납품한 것은 물론이고 고객층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배달포스 프로그램은 처음에 투자를 받아서 운영했으나 현재는 배달의 민족에 강 대표의 지분을 전량 매도했다. 늦은 50대에 성공한 자산가가 된 것이다.
◆일 안하고 놀 수 있는데 배달음식점 창업
은퇴할 나이에 자산가가 되면 대부분 인생을 즐기며 편하게 사는 게 꿈일 것이다. 하지만 강병태 대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니타스라는 회사를 전부 매각한 게 아니라 배달포스 프로그램 사업부만 따로 분리해 매각했기 때문에 기존에 하던 다른 사업은 그대로 전개하고 있었다.
배달포스를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새로운 스타트업 도전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게 바로 장부대장이다. 장부대장을 개발하는 ㈜푸드노트서비스는 2019년 4월에 창업했다. 2021년 7월 장부대장 모바일 앱을 출시하고 2021년 11월에 장부대장 프차를 출시했다.
장부대장은 여러 가지 배달앱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통합해서 하나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특징이다. 또 배달 사업자를 위한 다양한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창업을 위해 강병태 사장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직접 배달 매장을 창업해서 운영해보는 것이었다. 공유주방에서 <경성밥상>이라는 배달 매장을 창업해 직접 운영해봤다. 지금 경성밥상은 프랜차이즈 전문가에게 맡겨 가맹사업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장부대장 프차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경성밥상은 비빔밥, 고기국밥, 전 등 다양한 한식을 배달하는 매장이다. 직접 배달 음식점 현장에서 일하면서 배달 사업자에게 필요한 것, 도움이 되는 것을 체크하고 감안해서 개발한 프로그램이 장부대장이다.
장부대장을 활용하면 모든 배달 주문을 한 곳에서 관리하고 배달 깃발의 효율 분석, 리뷰 분석, 지도기반 맛집랭킹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돈이 많은데도 계속 투자 유치를 하는 이유
강병태 대표가 이전 사업의 지분 매각으로 이미 부자가 됐지만 회사를 운영하면서 계속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투자를 받았다. 배달 매장을 오픈하는데 본인 자금 1억 원을 투자했고, 팁스에서 20억 원 밸류로 2억을 투자받고 개발비로 5억 원을 지원받았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시리즈A 투자 유치 활동을 벌여 2022년 5월 37억5천만 원을 투자받았다. 올해 3월에는 강병태 대표가 운영하는 유니타스와 (주)해성 등에서 30억 원을 투자받았다.
자기 자본이 충분한데도 계속 투자유치를 하는 이유는 투자 유치를 하면 외부에서 기업 가치를 인증해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소상공인용 프로그램을 개발해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맹본사들이 필요로 하는 장부대장 프차라는 프랜차이즈용 프로그램도 출시했다.
◆장부대장에서 장부대장 프차까지
2023년 5월 기준 장부대장 프차는 800개 브랜드, 3만개가 넘는 매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맹본사들은 장부대장 프차를 통해 각 가맹점의 매출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깃발 효율 분석, 맛집랭킹 및 리뷰 분석, 지역별 매출 분석이 가능하다. 현재 장부대장 프차에는 가맹사업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추가로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실질적인 매출 데이터로 상권 프로그램도 출시할 계획이다.
배달 매장을 창업해서 직접 운영하고 이어서 소상공인용 장부대장을 출시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부대장 프차를 론칭한 것이다 현재는 장부대장 프차의 인기가 높다.
얼어붙은 경기 탓에 올해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투자 빙하기로 불린다. 그런데 강병태 대표가 계속 투자를 유치하며 6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20, 30대 못지않은 열정과 추진력으로 사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그 비결이 뭘까?
첫째, 변화에 빠르다, 강병태 대표의 가장 큰 강점이다. 창업이후 지금까지 계속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제공한 게 성공비결 중 하나다. 이렇게 트렌드를 잃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은 늘 나 중심이 아니라 외부, 시장과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생긴 것이다.
둘째, 강병태 대표의 경력이다. 스타트업에서 사장이 프로그램과 IT 기업 생리를 모르면 힘들다. 강 대표는 직접 밑바닥부터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했으며 IT영업과 조직관리 경험까지 있다는 게 사업 통제력이 높은 요인 중 하나다.
셋째, 영업 경력이다. 개발자였던 강 대표가 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업직으로 옮겨 성공을 거둔 것은 강 대표가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사소한 것을 잘해야 한다. 화려한 선물이나 큰 돈이 아니라 말 한마디, 표정과 같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강 대표는 숫자의 양을 믿지 않는다. 대신 10명, 20명에게 최선을 다하고 존중하고 필요를 충족해준다. 그게 영업의 힘이 됐다.
넷째, 존중과 배려다. 강 대표의 회사에서는 직책으로 동료들을 부르지 않고 나이키, 나무, 토리, 폴리 등 본인이 원하는 별칭으로 서로를 부른다. 위 아래 개념을 없애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었다.
다섯째, 약속을 지킨다. 강 대표는 계약서가 없이도, 본인의 입으로 한 말은 지킨다. 이전 사업에서 주식을 주겠다고 한 직원들에게 약속을 다 지켰다. 엑시트를 했지만 장부대장에 도전할 때 팀원들이 모인 것은 약속을 지키는 강병태 대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선택과 집중이다. 이게 아니라고 판단하면 바로 접는다. 아닌 걸 쥐고 가지 않는다. 다 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한테나 일에서나 선택과 집중을 잘한다. 뭐든지 뾰족하게 만든다. 두리뭉실하게 하지 않는다. 외식업에서 배달 시장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치 때문이다.
일곱째, 명상이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IT 기업들은 대부분 조직원들에게 명상을 장려한다. 강 대표도 2007년 친구의 소개로 명상을 시작하게 됐다. 사업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문제가 명상을 시작한 후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놀고 쉬지 왜 힘들게 또 도전 하느냐고 묻지만 강대표는 힘들지 않다. 명상 덕분이다. 직원들 급여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마음공부를 하면서 내가 너이고 세상에 선악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힘든 것도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일 안해도 남은 여생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데도 계속 도전하는 강병태 대표의 꿈은 어려운 소상공인을 돕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조직원들이 행복한 것이다. 강 대표가 돈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쉬어야 할 때 쉬고 일해야 할 때 일한다. 대신 조직원들에게 많은 것을 권한 위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