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천만 원씩 적자나던 가게를 연 30억 매출 식당으로 만든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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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894 등록일등록일: 2023-05-30본문
왠지 내가 산 주식은 오를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식 투자를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선택한 창업은 대박이 날 것 같다. 더욱이 대박집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똑같이 창업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부푼 꿈이 1년 이상 적자로 나타나면 창업은 악몽이 된다. 꿈이라면 잠을 깨면 되지만 현실에서는 악몽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집 <정짓간>을 운영하는 부재일 사장(46)이 그랬다. 원래 부재일 사장은 인테리어 사업을 했다. 인테리어를 하는 일은 행복하고 좋았지만 여러 가지 위험과 내키지 않는 상황들이 많았다. 그래서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분야로 업종전환을 꿈꾸게 됐다. 그게 바로 식당이었다.
맛집을 방문할 때마다 성공한 음식점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100년 가는 음식점을 꿈꾸며 전재산을 투자해서 창업에 도전했다. 유명한 맛집의 가맹점으로 창업했기 때문에 문만 열면 그 식당처럼 손님이 가득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매달 수천만 원씩 적자가 났다.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무너졌다. 인테리어 사업에서 번 돈으로 적자를 메꾸며 버텼다.
그랬던 식당이 지금은 월 2억4천만 원대 매출을 올리며 부산 지역의 돼지국밥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부재일 사장이 악몽같은 시기를 이겨내고 업종전환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
◆인테리어 사업하며 지옥과 천당을 오가다
부재일 사장은 군대에 다녀와 20대 중반부터 인테리어 관련 일을 했다. 29세까지는 직원으로 일했고, 결혼을 하면서 독립해 내 사업체를 차린다. 근무하던 인테리어 사장의 아내가 동생을 소개해 결혼에 이를 정도로 부재일 사장은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어느 직종이나 직업적 고충이 있다. 인테리어 사업도 마찬가지다. 접대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고객사의 갑질도 만만치 않았다. 큰 기업의 경우 24시간 대기를 하며 새벽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달려가야 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부도 위험이었다. 부재일 사장이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기 때문이었다. 부재일 사장 자신도 큰 공사를 따내서 초기 계약금만 받고 공사를 진행했다가 공사 완료 후 잔금을 못 받아 몇 년간 소송을 하기도 했다.
좋은 일을 맡아 돈을 벌 때도 있었지만 부도 위험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건설업에서는 인테리어가 후공정 마감이므로 건설사가 부도나면 돈을 받지 못하는 위험부담도 컸다. 무엇인가 좀 더 안정적이고 위험부담이 적은 일이 필요했다.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100년 사업을 찾다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지만 전업이 쉽지는 않은 법이다. 자칫 잘못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안전한 전환이 필요했다.
안전한 방법으로 택한 게 투잡이었다. 부산을 기반으로 전국적으로 공사를 하다보니 서울에서 기회가 왔다. 서울 강서구에 <통바지>라는 고깃집 가맹점을 오픈해서 점장을 두고 운영하게 됐다.
생각보다 수익이 나쁘지 않았다. 식당이 잘 운영되자 지방에도 매장을 알아봤다. 마침 창원에서 100평대 음식점 매물을 만났다. 하지만 고깃집을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컸다. 그 때 부산에서 단골로 방문하던 유명한 돼지국밥집이 생각났다.
부재일 사장의 어머니는 국밥집을 하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고 부 사장 자신도 국밥을 좋아했다. 대형 국밥집 중 역사가 있고 유명한 곳은 연간 수십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곳도 많았다. 국밥은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적인 메뉴라 국밥집을 하면 100년, 200년 가는 음식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부 사장은 생각만 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단골로 찾던 부산의 유명한 돼지국밥 브랜드에 찾아가서 가맹점을 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곳에서 5천만 원을 주고 전수창업을 했다. 국밥 끓이는 방법 정도를 배우고 양념은 본사에서 받아서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지인 2명과 동업으로 창업에 도전
돼지국밥은 부산의 소울푸드였고, 유행을 타지 않아 자리를 잘 잡으면 평생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부 사장은 돼지국밥집을 성공시켜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 정도의 가게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창원에서 만난 매장을 포기하고 부산에서 점포를 구했다. 2013년 부산 사하구에 돼지국밥집을 오픈한다. 처음에는 가맹형태로 운영했다. 돈을 많이 벌 거라고 기대하며 8억 원 가까이 투자했다. 부산 지역의 장사 잘되는 다른 국밥집처럼 큰 돈을 벌려면 매장 규모가 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인 2명이 함께 투자했다. 부재일 사장이 전체 투자비의 70%를 댔고 나머지 두 사람이 각각 15%씩 투자를 했다. 오픈을 기다리며 가슴이 뛰었다. 워낙 유명한 돼지국밥집의 가맹점이었기 때문에 문만 열면 손님이 밀려들 줄 알았던 것이다.
◆대박 날 줄 알았는데 계속되는 적자
그러나 창업은 쉬웠지만 돈을 버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 200만 원 매출이 올라도 300만, 400만 원까지 매출이 올라도 남는 게 없었다.
당시 부재일 사장은 인테리어를 하면서 매장을 점장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결산을 해보니 한달에 적자 액이 2천만, 3천만 원 가량 됐다. 이게 한 두 달도 아니고 1년 넘게 지속됐다.
지분이 적은 다른 투자자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자를 탈출하기 위한 노력은 오롯이 부재일 사장의 몫이었다. 지분도 가장 많았고, 매장 운영에 대한 필요성도 더 절실했다. 인테리어 사업에서 번 돈으로 적자를 메꾸며 매장 운영에도 관여하다보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유명 맛집은 왜 적자가 났을까
적자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매장이 큰 것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160평에 좌석이 170석이었다. 가게가 크면 클수록 인건비, 전기세 등의 고정비가 늘어난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매출이 높아도 손익분기점이 높아서 적자가 나고 초기에 반짝 매출이 오른 후 계속 떨어졌다.
두 번째 원인은 주인 없는 매장의 한계였다. 2명의 다른 투자자는 매장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고, 부재일 사장은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매장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서비스, 품질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겼다.
세 번째는 천재지변이었다. 장사를 시작하고 1년 후 쯤 메르스가 터진 것이다. 메르스 첫 환자가 부산 사하구에서 발생했다. 부산 사하구의 돼지국밥집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가면서 사하구 지역의 돼지국밥집들은 매출이 초토화가 됐다. 할 수 없이 인테리어 사업을 부업으로 하며 계속 돈을 메꿨다. 그즈음 체인점 본사에서 받는 물류로는 수지 타산이 안 맞아서 본사와 거래를 중단하고 육수와 양념, 소스를 직접 다 개발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는 높은 원가였다. 노하우 전수를 받았지만 거의 모든 양념을 가맹본사에서 공급받았는데 원가가 높아서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적자 탈출 대작전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부재일 사장은 적자 탈출 방안을 찾아서 하나 하나 실행에 옮겼다.
먼저 동업자를 정리했다. 동업자들은 지분은 갖고 있었지만 가게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지분이 가장 많은 부재일 사장이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매장을 살리려면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온전한 의사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투자비를 돌려주고 지분을 정리했다.
둘째, 인테리어를 그만두고 식당 운영에 올인하기로 했다. 돼지국밥집 경영과 인테리어 사업을 병행하니 이도저도 안 됐다. 적자를 메꾸려면 인테리어 사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 식당 경영에 몰입할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셋째, 식당 규모를 줄였다. 매출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의 대형 식당은 운영비 부담이 너무 컸다. 좌석이 많은 큰 식당은 웨이팅 개념도 없다. 그래서 여유 공간을 전전세를 줬다. 현재는 130평에 90석이 약간 넘는다. 테이블수가 줄면서 오히려 매출이 올랐다. 웨이팅이 되고 선순환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식당 경영 노하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넷째, 홀로서기 준비를 했다. 거의 모든 양념소스를 가맹본사에서 공급받았는데 원가가 높아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래서 계약기간이 끝날 때를 대비해 장기 플랜으로 자체적인 소스 및 제품개발을 준비했다. 역시 국밥집을 운영하는 지인과 협업헤서 다양한 맛 테스트를 했다.
◆개업 2년 후부터 흑자로 전환
적자를 메꾸면서 사업을 하려니 육체적인 고단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4시간 운영하다보니 갑작스러운 직원 이직이 생기면 그 시간을 부재일 사장이 메워야 했다. 하루 2, 3시간밖에 못자고 일하는 나날이 길어지자 천식이 생겼다. 스트레스에 육체적인 고단함까지 겹치자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인지 식당 오픈 2년 차부터 이익을 남기기 시작했다. 식당 손익분기점이 일매출 400만 원인데, 일평균 450~500만 원 정도가 됐다. 가게 위치가 좋은 자리가 아니어서 한 순간에 오르지는 않았다. 꾸준히 올랐다.
현재는 성수기에는 일평균 800만 원이 넘고 비수기에는 일평균 700만 원대가 나온다. 돼지국밥집은 7월부터 9월까지가 성수기다. 6월부터 올라서 12월, 2월까지 꾸준히 오른다. 비수기는 3월~4월이다.
상권이 좀 더 좋았더라면 1일 1천만 원, 2천만 원 매출도 자신있지만 지금도 초창기 적자날 때를 기억하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돼지국밥집은 육수와의 전쟁, 가스비만 월 500만 원대
돼지국밥을 만드는 것은 한마디로 ‘육수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사실 육수를 쉽게 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다. 다른 국밥집은 대부분 완제품 육수를 쓴다. 아니면 뼈육수와 고기 육수를 혼합해서 쓴다. 그렇게 하면 만들기도 수월하고 시간과 노동력도 절약된다.
하지만 정짓간은 100% 사골 육수를 고집한다. 그래서 정짓간의 돼지국밥은 국물이 뽀얗다. 시간 비용 노력이 많이 들지만 그 정성이 고객을 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육수내는 게 스트레스였다. 테스트만 1년 가까이 했다. 육수실은 완전 찜통이다. 사우나같다. 뼈가 무거운데 가마솥에 100킬로를 들어서 넣어야 한다. 100킬로를 넣어서 물을 받아서 한 시간 삶아 불순물을 뺀 뒤에 뼈를 다시 씻어서 다시 솥에 넣어 새물을 받아서 첫 번째 육수를 받아낸다. 그렇게 하는데만 10시간 넘게 걸린다. 첫 번째 육수를 내고 난 후에 다음 육수를 받아내는데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보통 5~6번 정도 육수를 뽑아낸다. 그렇게 해도 많은 육수가 나오지는 않는다.
육수내는 것은 피나는 노력과 인내심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정짓간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도 육수 때문이다. 국밥집은 야간 매출이 중요하다. 연매출이 50~60억 원씩 나오는 곳들은 야간 일매출이 400~500만 원씩 나온다. 부 사장 매장은 야간에 50~100만 원 매출이 오른다. 주간 저녁 매출 중심이라 지금 보다 매출을 더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야간 장사를 하는 것은 육수를 밤에 끓여야 하니까 홀에 한 사람을 더 써서 밤에도 장사를 하는 것이다.
◆평일 1일 700~800만 원 매출, 주말 1천만 원대 매출
<정짓간>의 대표메뉴는 돼지국밥이다. 순대국밥, 내장국밥, 섞어국밥도 잘 나간다. 가격은 8천~9천 원대이다. 보쌈과 막국수도 있다. 매장 위치가 아파트 단지 부근이라 밤에 술 손님이 적다. 밤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파삼겹 메뉴를 추가했다. 파삼겹은 가족 단위 고객, 인근 공단 주변의 회사원들에게 인기다. 저녁 매출을 높이는 효자 상품이다.
평일에는 인근 공장 지대 직장인들과 지역 주민이 주고객이다. 주간 일 매출은 700~800만 원대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고객이 대부분이다. 주말 일 매출은 1천만 원이 넘는다. 저녁 시간에는 아파트 주민과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다.
매출액에서 원재료비 비중은 31%, 인건비는 27% 정도다. 수도세는 100만 원, 전기세는 성수기 여름에는 200~300만 원이 나오고 비수기는 100만 원 정도다. 가스비는 500만 원정도 나온다. 육수를 24시간 내야하기 때문에 많이 나온다.
◆꾸준한 마케팅과 이벤트로 고객 붙잡기
부 사장은 음식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 못지 않게 마케팅과 이벤트에도 신경을 쓴다.
주로 고객과 소통하는 이벤트를 많이 한다. 홀직원이 6명인데 홀직원 1명 당 무조건 하루에 한 사람씩 손님들에게 만두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한다. 직원들이 고객에 대한 서비스권한을 자율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마운 분, 새로 오신 분, 노인 동반 고객 등 고객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다. 정짓간의 만두는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라 맛이 다르고 인기가 많다.
쿠폰 마케팅도 했다. 도장찍는 쿠폰인데 10번 찍으면 만두가 서비스로 나가는 것이다. 사업 초기 적자가 날 때는 부 사장과 점장이 직접 인근 회사들을 방문해 만두 무료 쿠폰을 돌리며 구두 홍보를 하기도 했다. 100장 돌리면 10명 정도 왔다.
단기적으로는 큰 성과가 나지 않았지만 그런 노력들이 차곡 차곡 쌓여서 지역 주민들이 우리 매장을 알아주고 자주 방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스토어 운영...자기 계발에도 힘써
부 사장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스마트스토어도 운영하고 있다. 돼지국밥과 순대국밥 간편식을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배달의 민족과 쿠팡 등에서 판매한다. 코로나가 한창 일 때는 주문이 일주일씩 밀리기도 했다. 리뷰가 좋고 재구매율이 높아서 앞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간편식 제조에 대한 꿈을 갖고 식품제조 공장 설립을 위해 부지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포기했다. 현재는 매장내 남는 공간에 공장 허가를 내고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지만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적자가 한창일 때 매장에서 하루 2시간씩 자면서 3일 연속 일을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 숨이 안쉬어졌다. 그 때 장사하고 처음으로 후회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기를 지나고 벌써 10년차 역사를 가진 식당이 됐다. 가맹계약이 종료되고 홀로서기를 할 때 상호를 <정짓간>으로 변경했다. 정짓간은 부엌이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다.
정짓간은 고단한 삶속에서도 가족을 위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공간이다. 부재일 사장은 정짓간이 가족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가득한 부엌처럼 고객에 대한 사랑, 함께 하는 직원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100년, 200년 가는 가게 만들기 프로젝트
인테리어 사업을 할 때 큰 부도를 맞아 7년 이상 소송을 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받았던 기억, 고마운 존재지만 힘들었던 고객사들의 갑질에 대한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마찬가지로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힘들었던 일도 이제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장사를 시작한 것을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 뿐이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고객에게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지금 10년 된 매장이 앞으로 평생사업 나아가 100년, 200년 가게로 만드는 게 꿈이다.
부 사장은 “돼지국밥하면 <정짓간>을 떠올리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도 가게가 유지되면 좋겠다. ”고 말한다.
100년, 200년 가는 가게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근에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해서 배움을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 사장은 맛도 중요하지만 고객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벌써 10년차가 되다보니 조그만 꼬마 때 엄마 손 잡고 왔던 고객이 성인이 되어 다시 찾는 걸 본다. 사람 기억 속에 남는 가게, 그게 진정으로 성공한 가게라고 생각한다. 부 사장의 200년 가는 가게 만들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