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6개 심야식당으로 출발, 연 60억 매출 올리는 37세 식당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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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0,698 등록일등록일: 2022-12-20본문
요즘 영리치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외식사업가들이다. 40대 초반에 기업 매각을 통해 수백억, 천억 원대 부자가 되는가하면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알차게 사업하는 청년 사업가들이 적지 않다.
부산에서 곱테랑, 사거리 식당 등을 운영하는 손정호 사장(37)도 그 중에 한 명이다. 손 사장은 식당 7개에서 연 60억 원대 매출을 올린다. 손 사장은 사거리식당 3개, 곱테랑 3개, 돈테랑 매장 1개를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2개의 매장을 추가로 공사하고 있다.
손 사장의 하루는 직장인과 비슷하다.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서 운동을 하고 운영하는 매장들을 차례대로 순회한다. 저녁 시간에는 중 1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한 스윗홈으로 퇴근하는 가정적인 아빠다.
손 사장의 부모님은 평생 작은 백반집을 운영했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하기 전에 재미삼아 영업이 끝난 부모님 식당에서 심야식당을 운영하다가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2013년에 문을 연 사거리 식당 첫 매장은 10년차인데도 창업초기부터 지금까지 월 매출 1억원을 유지하고 있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인 손정호 사장이 식당부자로 성공한 비결은 뭘까?
◆부모님이 운영하던 백반집 활용해 알바로 심야식당 운영
군에서 제대한 손정호 사장은 대학에 복학하기 전에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를 했다. 그때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백반집이 눈에 들어왔다. 손 사장의 부모님은 부산 덕천동에서 30년간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백반집은 7시면 문을 닫는데 밤새 영업을 하지 않는 매장이 아까웠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심야 식당을 해보기로 했다.
음식 장사를 하는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 장사는 두렵지 않았다. 부모님 몸이 아프면 대신 주방에서 일을 한 경험도 있었다.
부모님의 매장은 유흥가에 있었다. 인근에 룸살롱, 나이트 클럽 등이 많았다. 잠시 하는 알바였지만 뭔가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흰색 와이셔츠에 꽃무늬 앞치마를 하고 머리도 올려 남다르게 깔끔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허름한 백반집에 깔끔한 복장으로 서빙을 하니 매장은 금새 대박이 났다.
저녁 7시부터 새벽 5시, 6시까지 영업을 했는데 매장은 발딛을 곳이 없을 정도였다. 국수 라면 등 3천 원대 음식이 많이 팔렸는데, 그런 저가 메뉴로 밤 사이에 50만, 60만 원대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매출이 뚝 끊겼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여파로 유흥가가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함께 하던 친구는 견디다 못해 매장을 떠났고 그렇게 어려운 여건에서도 손정호 사장은 1년 이상을 더 버텼다. 인건비를 절약하며 한달에 300, 400만원씩 벌어서 저축을 했다.
한번 장사의 맛을 보니 그 다음에는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음식 장사는 손정호 사장의 인생이 됐다.
◆동업 깨지고 나홀로 창업한 사거리 식당으로 대박
어느 정도 돈을 모으자 나만의 가게를 하고 싶었다. 매일 출퇴근길에 눈여겨 봐둔 매장이 있었다. 그 매장이 매물로 나오자 2010년에 펍으로 운영되던 매장을 인수해서 ‘새마을포차’라는 것을 만들었다. 투자비는 3억 원 정도 들었다. 운영은 손정호 사장이 책임지고 나머지 2명의 친구가 공동 투자했다. 3명이 각각 1억 원씩 투자한 동업 매장이었다.
매출액은 월 5천만~7천만 원 선으로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3명이 각자 8백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렸지만 투자한 두 친구간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 손정호 사장은 매장을 계속 운영하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 매장은 정리를 해서 매각하게 됐다.
새마을포차를 정리한 후 1년 정도 쉬면서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중1때부터 좋아하던 첫사랑과의 결혼이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새마을포차를 하던 자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점포 매물이 나왔다. 그 가게를 인수해서 ‘사거리식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매장이 사거리에 있었기 때문으로 별다른 생각없이 상호를 지었다. 2013년 12월에 오픈했다.
투자비가 빠듯했기 때문에 기존 매장을 인수한 후 파사드의 컬러만 변경해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문을 열자마다 대박이 났다. 35평에서 월 매출 1억 원을 올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추가로 낸 매장인 서면점도 28평에서 1억 원대 매출을 올리며 대박이 났다.
◆사거리식당의 히트 비결은?
사거리식당 덕천점이 줄서는 주점이 되자 주변에서 가맹 문의가 쏟아졌다. 사거리 식당은 현재 부산 서면과 덕천동, 서울 건대입구에 3개의 직영 매장이 있다.
이중 1등 매장은 부산 덕천점이다. 창업이후 지금까지 줄곧 테이블 13개로 월 매출 1억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사거리식당 첫 매장이던 부산 덕천점은 인근에 대학이 있다. 39포차와 비슷한 시절에 매장을 오픈했다.
사거리식당의 히트 비결은 여러 가지다. 첫째, ‘컬러 전략’이다. 투자비가 부족해서 판갈이 하는 느낌으로 파사드의 컬러만 파스텔 블루로 변경했는데, 한식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색이라 시선을 확 끌어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
처음에 내건 슬로건도 한 몫했다. 밥도 술도 되는 식당이라고 내건 것이다. 보통 포차는 저녁 9시 이후가 피크타임이다. 하지만 사거리 식당은 저녁 6~7시부터 고객이 넘친다. 새벽까지 보통 5회전 정도를 한다. 4시에 문을 여는데 6시부터 매장이 가득 찬다. 밥도 되고 술도 되는 매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밥솥을 준비해서 아무나 밥을 떠먹을 수 있게 한 것도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메뉴 전략’도 성공 비결이다. 곱도리탕을 전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닭도리탕 베이스에 곱창이 들어가는 메뉴이다. 느끼할 수 있는 곱창을 매콤한 닭도리탕 소스가 잡아준 게 맛의 비결이다.
‘고객과의 친근한 관계 유지’도 성공 비결이다. 새마을포차를 할 때도 그랬고 손정호 사장이 운영하는 매장은 여성 고객이 타겟이다. 손님들에게 자주 말을 걸어주고 음식이 나가면 테이블 서빙도 직접 하면서 고객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직원들을 교육한다.
◆힘들 때도 버텨라, 고객 믿음이 장수 비결
고객 행복을 위해서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내서 노력을 많이 했다. 가령 생일케이크 트레이를 만들어서 고객들이 생일 케이크를 가져오면, 생일 축하 노래를 크게 틀고 케이크에 불꽃을 꽂아줘 만족도를 높였다. 이후에는 주말에 생일 파티를 하러 오는 고객도 많았다.
시즌 메뉴 역시 오래된 매장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데 한 몫했다. 시그니처 메뉴가 있지만 계절을 반영한 시즌 메뉴를 계속 개발했다. 여름이면 화채나 과일, 겨울에는 굴과 보쌈 등 분기별로 메뉴판을 변경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만큼 메뉴를 많이 개발하지 않는다. 주변에 경쟁자가 계속 늘어나다보니 너무 다양한 메뉴보다는 시그니처 메뉴를 확실하게 부각하는 전략을 강조한다. 곱도리, 닭도리탕을 주력으로 한다.
사거리식당 1호점이 10년째 월 매출 1억을 유지하는 가장 큰 비결은 ‘고객에 대한 믿음’이다. 주점은 주변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 일시적으로 매출이 요동친다. 하지만 손사장은 고객이 다시 올거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믿음대로 고객이 다시 왔고 그것이 대박 매장의 장수 비결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
이처럼 대박을 내는 직영 매장 덕분에 한 때 사거리식당은 부산의 상권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남포동이든 어디든 가장 번화한 자리에서 사거리 식당을 만날 수 있었다. 장사도 잘됐다.
하지만 코로나 타격으로 가맹점들이 무너졌다. 대박난 직영점 덕분에 요지에서 가맹문의가 쇄도해 가맹점을 냈는데, 팬데믹 기간 동안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지금은 아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포차업종은 9시 이후 본격적으로 매출이 오른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 동안 9시 이후 영업을 하지 못하로록 규제했다.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가진 직영점은 버텼지만, 가맹점 중에는 버티지 못한 곳이 많다. 손정호 사장은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외부 조건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가맹점들이 문을 닫는 것을 보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접었다.
◆5년간 줄서는 곱테랑, 코로나 팬데믹 중에 성장한 비결은?
요즘 손정호 사장이 애정을 갖고 운영하는 매장은 ‘곱테랑’이다.
곱테랑은 가성비 있는 가격에 곱창과 대창을 파는 곳이다. 곱테랑도 여성 고객이 주 타겟이다. 곱테랑은 코로나 기간 중에 오픈한 매장이지만 코로나에도 아랑곳없이 매출 타격이 없었다. 서면점은 2019년에, 사상점은 2020년 5월에, 독천점은 2020년 1월에 오픈했다. 매장 평수는 평균 30평인데 월 평균 6천만 원, 7천만 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사거리식당은 포차이기 때문에 영업 시간 제한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곱테랑은 코로나 기간 중에도 되는 집은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다.
곱테랑의 성공비결은 ‘원플레이트 시스템’이다. 불판에 초벌이 끝난 곱창, 대창, 염통, 우삼겹, 버섯, 부추, 파인애플이 서빙된다. 300그램 기준 소자가 3만원이고, 중자가 4만5천 원, 대자가 5만9천 원이다. 20~30대 여성 고객이 전체 60~70%로 많은 편이다. 친구와 함께 와서 원플레이트를 먹은 후 볶음밥을 추가하는 게 일반적인 코스다.
서면 곱테랑의 경우 코로나와 무관하게 5년간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곱테랑 매장들은 입지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니다. 일부러 그런 장소에 매장을 얻었다. 곱창 대창은 매니아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입지의 영향이 덜하다.
‘돈테랑’도 2020년 12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매장을 열었다. 삼겹살과 돈마호크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삼겹살 130그램에 1만1천 원을 받는다. 돈마호크는 그릴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내준다. 돈테랑은 50평에서 월 6천~7천만 원 가량 매출을 올린다.
◆식당 부자는 재테크를 어떻게 할까?
손정호 사장이 동업이 아닌 나홀로 창업한 첫 식당은 2013년 12월에 문을 연 사거리식당 1호점이다. 이후 매장을 지속적으로 늘린 것은 2018년 이후다.
돈을 벌면 투자를 해서 계속 직영점을 확장했기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돈을 버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직영점을 확장하면서 그래도 내가 돈을 적지 않게 벌었구나 생각하게 됐다.
손정호 사장에게 재테크는 재투자를 하는 것이다. 주식이나 코인투자 같은 것은 관심이 없다. 이렇게 중독적으로 직영점을 내고 재투자를 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 손정호 사장과 함께 하는 직원겸 파트너는 15명이다. 이 중에 12년간 함께 일을 해 온 점장만 5명이나 된다. 매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운영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 않게 많다. 손정호 사장이 계속 재투자를 하고 매장을 늘리는 것은 이렇게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다점포를 운영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인력 관리시스템이다. 손정호 사장은 직원이 새로 들어오면 5년 정도 지켜본다. 점장이 되려면 적어도 5년 정도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그 중에서 장사에 뜻을 둔 사람이 있으면 공동 투자를 통해 파트너가 될 기회를 준다. 주로 주류 대출 등을 통해서 10~20% 정도 지분을 갖게 해준다.
월급과 이익 분배금을 저축해서 돈을 모으면 파트너의 지분률을 올려주면서 주인 의식을 갖게 해준다.
◆12년 함께한 점장만 5명, 직원을 파트너로 육성
이렇게 장사에 뜻을 둔 직원들을 점장으로 육성하고 파트너로 만드는 것이 사업의 큰 보람 중 하나이다. 손정호 사장이 자영업자이지만 직장인처럼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보면 열심히 하는 직원만 만나기는 어렵다. 가장 곤란한 직원은 월급에 안주하는 사람이다. 월급받는 만큼만 일하고 늘 하던 패턴대로 변화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매장을 맡으면 매출이 떨어지거나 오르지 않는다. 일반 직원을 점장으로 육성하는 게 목적인데 그렇게 의욕없이 월급만큼만 일하는 직원 밑에서는 인재를 키울 수 없다.
실제로 매출이 떨어질 경우 점장을 교체하면 매출이 1.5~2배 가량 오른다. 수동적으로 일을 하는 직원들은 매출이 높고 활기찬 매장으로 순환 근무를 시킨다. 그렇게 하면 활기찬 매장의 기운을 받아서 다시 본인 매장으로 돌아갔을 때 이전보다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손정호 사장이 점장으로 육성하는 직원은 장사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장사가 내 길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비록 아르바이트라도 직책을 높여주면서 키우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드물지만 대출금을 갚지 않아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손정호 사장이 대신 갚아주고 지분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식당 부자가 네이버 마케팅을 선호하는 이유는?
손정호 사장은 마케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손 사장은 네이버 마케팅을 선호한다. 스마트 플레이스를 비롯해 키워드 광고, 파워링크도 한다. 다른 식당들은 인스타그램 등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많이 한다. 손사장도 SNS 마케팅을 하지만 네이버 마케팅은 나름대로 그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단체 손님 유치나 신규 고객 유치에는 네이버 마케팅이 효과가 높다. 매장은 신규 고객이 없으면 망한다. 아무리 오래된 매장이라도 전입 전출이 있으므로 신규고객이 꾸준히 유입되고 이렇게 유입된 고객이 재방문 고객이 되어야 한다.
마케팅 비는 매장마다 다른데 월 50만 원에서 150만 원 가량 쓴다. 오래 식당 장사를 하다보니 친분을 쌓은 인플루언서도 있다. 새로 매장을 오픈하면 초대를 한다. 가끔은 기업형 광고를 하기도 하지만 투자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매출이 높은 매장은 점장에게 많은 자율권을 준다. 반면 매출이 떨어지면 80~90% 이상 손정호 사장이 직접 관여해서 마케팅 아이디어도 내고 메뉴개발도 제안한다.
손정호 사장의 중요한 일과는 연구 개발이다. 전문지도 구독하고 3~4개월에 한 번 일본 등 해외 벤치마팅도 떠난다. 월 1회는 직원을 선발해서 1~2일 정도 시간을 내서 맛집 탐방도 한다. 이렇게 하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구상하고 메뉴 개발도 한다.
◆늘 성공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직영점을 잘 운영하고 있지만 손정호 사장도 힘들 때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영업시간 제한으로 포차주점이던 사거리식당 가맹점이 문을 닫을 때도 힘들었다.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낄 때도 정신적으로는 힘들었다. 사거리 식당으로 성공을 거둔 후 손 사장은 ‘곱창선생’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곱창선생도 대박이 났고 가맹 문의가 쏟아졌다. 사무실을 열고 아내까지 합류해서 가맹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물류 사고가 터졌다. 식자재를 생산하는 하청업체는 물건을 1500만 원어치 공급했다고 주장하는데 물류 공급과정에서 매장에서는 500만 원어치 밖에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 소송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중간에 낀 가맹본사가 책임을 져야했다.
어느 쪽의 잘못인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잡지 못해 가맹본사가 부담을 하고 합의하에 해결을 했다. 그런 와중에 곱창선생, 사거리식당 등 4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높은 매츨을 올리던 가맹점주가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원래 계약 기간 중 해지를 하면 패널티를 물어야 했지만 손정호 사장은 가맹점 입장을 고려해서 원만하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 그런데 계약을 해지했던 가맹점이 유사 상호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자 나머지 가맹점주들이 동요하면서 가맹본사가 그런 사태를 막아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미 합의서를 작성했던 손사장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가맹점주의 편의를 봐줬는데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그렇게 자기 길을 갔던 가맹점주는 지금 곱창 사업을 접었다. 그 사건 이후 아직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 확장을 접고 곱창 선생을 곱테랑이라는 브랜드로 상호 변경했다.
◆운이 좋은 비결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정호 사장은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로 부모님 매장에서 시작했던 심야 식당이 대박 매장이 됐고, 이후에도 여는 매장마다 모두 성공을 거뒀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배신을 당하고 사업을 멈춘 것 말고는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원래 긍정적인 편이라 작은 것에 마음이 상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말이 많지 않고 조용한 성격인데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손정호 사장은 자신이 운이 좋은 이유가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오직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주변에 보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는 한 눈을 파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일에 마음을 뺏기는 것이다.
하지만 손정호 사장은 지금도 가족과 사업만 바라본다.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고, 사업에서는 젊은 외식 인재들을 키워서 파트너로 만들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손 사장은 첫사랑인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가 매장을 기획할 때 디자인 감각을 갖고 많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직영점 확대와 가맹사업 중 어느 쪽이 맞는 방향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점장을 파트너로 육성해서 직영점을 확대하며 사업을 키우는 것과 가맹점주와 상생하는 것 사이에서의 고민이다. 지금도 직영 매장 2개를 추가로 오픈하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지만, 어느 쪽이 됐건 정도를 지키며 함께 성장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 것이 손정호 사장의 꿈이다.
지식이 쌓일수록 눈도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올 하반기에는 부산프랜차이즈사관학교 학생으로 등록해 성장 방법을 공부하고 있기도 하다.
이경희의 원포인트
손정호 씨는 전형적인 A형 사장이다. 조용하고 말 수가 적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과 성실함이 도전하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둔 비결일 수도 있다.
큰 야망을 쫓다보면 욕망이 현실을 앞질러가서 욕구 불만으로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지만 손정호 사장은 뭐든 과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긍정적이다. 대신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실천하며 착실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스타일이다.
부모님의 백반집을 활용해 심야식당을 할 때도 독특한 서비스 전략으로 고객을 사로잡았고, 사거리식당도 포차이지만 밥과 술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과 크고 작은 이벤트로 고객의 마음을 훔쳤다.
지속적인 작은 혁신과 우직함은 결과적으로 유행이 빨라 부침이 심한 주점 시장에서 10년째 월 매출 1억원을 유지하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경희. <내 사업을 한다는 것> <CEO의 탄생> 저자. KFCEO과정, 부산프랜차이즈사관학교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