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12개로 연 10억 매출, 순대국 안 파는 순대식당의 성공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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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967 등록일등록일: 2023-01-09본문
순대는 대표적인 한식 메뉴 중 하나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찾는 순대전문점은 10평짜리부터 100평이 훌쩍 넘는 전문 외식 매장까지 규모도 다양하다. 대중적인 수요가 많은 만큼 특별한 차별화 요소가 있다면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부산에 있는 ‘공순대’가 그런 예이다.
공순대 부평동 매장은 테이블 12개에서 주말에는 하루 500~600만 원씩 매출을 올린다. 연 매출액은 10억원대에 달한다. 지금은 20평 규모이지만 매장을 확장하기 전 10평에 테이블 6개일 때도 대기 번호표를 99개까지 발행하며 하루 5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린 날이 많았다.
공순대를 운영하는 공명철 사장이 작은 매장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는 데는 공순대 만의 차별화 전략과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우암동 10평에서 시작된 순대 장사
공명철 사장의 외할아버지는 이북에서 큰 잔치를 하면 돼지와 소를 잡고 수육, 순대 등을 만들어주는 도축 정육 관련 일을 했다. 외할아버지 가족은 6.25 전쟁이 나면서 함경남도 원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 남구 우암동에 피난왔다.
공사장의 외할아버지는 부산 피난지에서 정육점을 했는데 꽤 성공을 거뒀다. 공명철 사장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시장통에서 순대를 팔다가 장사가 곧잘 되자 외할아버지의 정육점 근처인 부산 우암동에 10평짜리 작은 식당을 내서 운영했다.
외할아버지가 이북에서 순대를 만들던 역사를 합하면 100년, 부산에 피난와서 어머니가 순대장사를 시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7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공 사장이 부모님이 운영하던 매장을 물려받아서 편안하게 장사하면서 저절로 잘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공명철 사장이 운영하는 부평동 매장은 어머니가 운영하던 그 매장이 아니다. 브랜드도 달라졌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대부터 이어온 맛의 기본은 유지하지만 독특한 사이드 메뉴 개발과 서비스 전략 등 공명철 사장이 새롭게 발전시키고 재창조한 부분이 많다. 지금의 성공을 만든 데는 부모님이 만든 손맛에 더해 공명철 사장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대학나온 신여성, 시장에서 순대 장사를 하다
순대 장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공명철 사장의 어머니다. 어머니가 순대 장사를 하게 된 계기는 생계를 위해서였다. 부산에 피난 온 외할아버지의 정육점 사업이 번창한 덕분에 공 사장의 어머니는 신식 교육을 잘 받았다. 그 시절 동아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지적인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공명철 사장의 아버지가 3형제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자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당시만 해도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을 위한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딸의 생계를 위해서 공 사장의 어머니가 순대 만드는 법을 배워서 순대장사를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시장통에서 순대를 팔았으나 장사가 잘되자 우암동에 10평짜리 식당을 열었다. 계속 손님이 넘치자 어머니는 가게가 있던 건물을 인수했다. 바닥면적이 10평인, 손바닥만한 건물이었지만 임대료를 내지 않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교만하고 게으른 경영, 매출이 바닥으로 떨어지다
공병철 사장은 3형제다. 공명철 사장의 형들은 순대 만드는 데 관심이 없었다. 공명철 사장만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순대 만드는 일을 도왔다. 순대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공명철 사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 사장이 어머니가 운영하던 매장을 이어받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경쟁자가 늘어나고 뭔가 새로운 전략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우암동은 동네가 작아서 매출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좀 더 큰 상권에서 장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장을 옮긴 것이 지금의 부평동 매장이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매장 상호는 원산순대였는데 지리를 표시하는 상호라 상표 등록이 되지 않아서 공순대로 상호를 변경했다.
지금도 우암동 매장은 그대로 있다. 그 곳은 내점 고객을 받지 않고 테이크 아웃으로 순대만 판매한다. 매장 이전 후 공명철 사장이 착각한 게 있었다. 부평동은 부산 최고 상권인 남포동이 가깝다. 우암동에서 장사가 잘되었으니 큰 상권을 끼고 있는 부평동에서 당연히 장사가 잘될 걸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서 술도 자주 마시고 가게 운영을 대충 대충 했더니 매출이 영 오르지 않았다.
매출이 바닥을 기는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매장을 방치하면 외할아버지 어머니로 이어온 순대 역사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때부터 공 사장은 외부 활동은 모두 접고 오로지 매장 살리기에만 매달렸다.
◆365일 연중 무휴로 가게를 운영하다
매출이 바닥을 기던 공순대가 줄서는 맛집으로 재탄생한 비결은 첫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실하게 매장을 운영한 것이다.
식당을 다시 일으켜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공 사장은 본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설날, 추석 연휴도 없이 연중무휴로 식당 문을 열고 일을 했다. 내일 하늘이 무너져도 매장 영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손님을 맞았다.
둘째는 순대의 품질이다. 공순대는 최근 좀더 손쉽게 지금의 비법을 살릴 수 있는 생산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공장을 설립해서 새로운 프리미엄 토종 순대의 시대를 열려고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공순대의 모든 순대는 공명철 사장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있다. 품질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순대는 하루 매출 500만원이 올라도 주방에 3명만 있으면 된다. 그 이유는 공명철 사장이 미리 순대를 다 만들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순대는 서민음식? 고급 음식?
순대를 서민음식으로 여겨서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북에서 순대는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고급 음식이다. 요즘은 밀가루 당면이 들어간 순대가 대부분이지만 원래 순대가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밀가루가 없었다. 당연히 당면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건강에 좋은 다양한 식재료로 순대 속을 만든다.
제대로 된 귀한 순대를 만들려면 일이 많다. 채소를 데치고 수분을 짜낸 뒤 썰고 비벼서 작은 창자에 넣어야 한다. 두부도 물기 없이 꽉 짜야 한다. 막창 순대의 경우 하루 종일 만들어야 한다. 막창 냄새를 없애려면 열 번 스무 번 이상 씻어야 한다.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일을 하다보면 허리가 성할 날이 없다.
새벽 6시부터 순대를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하고 포장까지 하면 저녁 7시에 끝난다. 만드는 시간만 12시간 걸린다. 특히 내장 손질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공명철 대표는 지금도 비가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 일요일 주말 빼고는 매일 하루 10시간씩 순대 만드는 일을 한다.
이렇게 공명철 사장이 직접 순대 품질 관리를 하면서 열정을 쏟자 가게의 매출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줄서는 순대 맛집이 됐다. 대기 번호표를 99번까지 나눠주기도 했다. 입소문이 나자 방송 출연 제의도 많이 왔다. 포장도 많이 해가고,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빗발쳤다.
◆18가지 재료로 만든 순대
셋째, 공순대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바로 순대 메뉴이다. 공순대의 순대는 당면이 안 들어가는 이북식 순대다. 주로 야채가 들어간다. 양배추, 무채, 대파, 찹쌀, 시래기, 배추. 두부 등 총 재료를 다 합치면 18가지 정도 된다.
공순대에는 순대집에 흔한 순대 국밥이 없다. 대신 전골류를 판매한다. 순대전골은 소자가 2인분에 2만8000원. 소곱창전골은 기본 소자가 3만 원. 순대사리 추가 시 3만5000원이다.
막창순대도 있다. 막창을 순대로 만든 것이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 돼지막창은 국내산 중에서 제일 좋은 부위를 사용한다. 냄새를 잡고 얼마나 깨끗하게 잘 삶느냐가 중요하다. 그 과정이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낼 정도로 고되다. 막창순대는 2만5000원이다. 양은 500그램 정도다. 택배는 700그램을 준다.
◆돼지껍데기묵, 한우허파전을 서비스로 주는 순대집
공순대가 줄서는 맛집이 된 것은 또다른 비결은 푸짐한 서비스다. 공순대는 고급한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를 서비스로 제공한다. 가자미식해, 허파전, 돼지껍데기 묵 등이다.
가자미 식해는 자갈치 공동어시장에서 그날 잡은 가자미 중에 새끼 가자미를 산다. 중자나 대자는 뼈가 억세서 안 된다. 새끼 가자미를 한 상자 사서 지느러미를 손질해서 보름간 숙성을 시킨다. 그 후에 마늘, 고춧가루, 생강 등으로 양념을 해서 다시 일주일간 숙성을 시킨다. 한 달이 되면 아주 맛있게 잘 숙성된 가자미 식해가 완성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공 사장은 서비스로 내보낸다.
허파전은 한우 허파를 삶아서 소고기 육전처럼 얇게 썰어서 만드는데 소고기보다 더 맛있다. 이것도 무료로 제공한다. 손님 2명이 오면 한입 크기로 서너 조각을 내놓는데 맛있으니 자꾸 추가로 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많다.
돼지껍데기 묵은 돼지껍데기를 한약처럼 푹 고아서 카레 가루를 조금 넣고 색을 낸다. 다른 첨가물은 아무 것도 안 들어가는 콜라겐 덩어리다. 초장이나 쌈장, 소금 등에 찍어먹으면 맛있다. 이것도 손님 수만큼 한 조각씩 서비스로 나간다.
공 사장이 이런 프리미엄 사이드 메뉴를 만들어서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은 식당의 차별화를 위해서다. 내가 조금 수고를 더 하면 결과는 두 배 이상으로 돌아온다.
◆정기 휴무일을 정한 이유
그런데 최근 공명철 사장은 막창순대 메뉴와 서비스를 잠시 쉬었다. 곧 재개를 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메뉴를 잠시 중단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공명철 사장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마나 해도 가게를 한 번도 문 닫은 적이 없다. 지난 10년간 설날, 추석도 안 쉬었는데 딱 한번 3일간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일을 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더니 과로에 영양실조라고 했다. 혼수 상태로 있다가 다음 날 깨어났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잠 안자고 일만 한 결과였다. 병원에서는 안정을 취하고 쉬라고 권고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일이 제일 많고 힘든 막창순대 만드는 것을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한달 전부터는 화요일을 정기 휴무로 정해놓고 있다.
공 사장이 후회되는 것은 돈 더 벌려고 하다가 건강을 놓친 것이다. 요즘은 일을 덜 하려고 노력한다. 쉬어야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신 공장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외할아버지때부터 이어온 맛을 그대로 구현할 공장이 완공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순대를 즐길 수 있다. 공순대 매장 운영도 단순해지고 공명철 사장도 건강을 지키면서 여유 시간을 가지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대박 맛집 사장이 힘든 이유
모든 사람들이 줄서는 맛집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줄 서는 맛집도 나름대로 애로가 있다.
공명철 사장의 경우 건강과 성공을 교환한 것이 스스로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몰리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땀흘려 일해야 한다. 감당하지 못할 주문이 몰리면 손님을 안받으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매장은 언제든지 고객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것이 상인의 약속이다.
이 때문에 손님이 몰릴 때 지혜롭게 대응하는 것은 사업자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 공명철 사장의 어머니는 공 사장에게 순대 장사를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만큼 힘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명철 사장도 몇 십년 동안 쭈그리고 앉아 일을 했더니 몸에 성한 곳이 없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직업을 물어봤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척추에 연골이 다 없어졌다고 했다. 순대의 맛과 매출과 연골을 뒤바꾼 것이다.
공장 설립을 준비하는 이유도 더 간편하게 더 많은 사람이 귀한 순대를 즐길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순대를 파는 사람이 건강을 지킬 수 있고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줄서는 맛집의 또다른 애로도 있다. 종종 서비스 실패가 일어나는 것이다. 공 사장의 가게는 낮 12시부터 밤 12시가 영업 시간이다. 공사장은 순대만드는 일만 하고 매장 관리는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의 불친절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손님이 많다보면 직원들도 지치고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불친절한 태도를 보인다. 특히 귀한 음식들을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바쁜 시간에 여러 번 무료 서비스를 요청하면 직원들이 짜증을 내고 그 것이 서비스 실패로 이어지고 악플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항상 친절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악플보다는 단골들의 선한 입소문이 훨씬 많다. 공 사장은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다. 10년 넘게 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만족한 고객의 입소문 덕분이었다.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형들과 달리 공 사장은 중학생때부터 홀로 되신 어머니를 도와서 순대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때는 공부보다 어머니 돕는 일이 좋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공부를 못한 게 후회가 됐다.
그래서 뒤늦게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주간에 순대를 만들어두고 오후 5시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다. 아들 뻘 되는 학생들과 공부를 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순대 만드는 일은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인생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경희의 원포인트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 자영업 역사는 6.25시절 이후부터 시작해 80, 90년도부터 폭발적인 성장과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30~50년 이상 자영업을 해온 소상공은 중 상당수가 은퇴 시기를 맞고 있으며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시점이 요즘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00년 가게를 지정을 통해 일본처럼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는 소상공인의 지속 가능경영을 지원하고 있다.
자녀들이 가업을 승계하면 자연스럽게 장수 경영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오래 지켜온 전통을 어떻게 이어나가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체계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올해 공명철 사장의 나이는 58세대다. 외할아버지의 순대를 어머니가 이어받았고 공순대가 지속가능하려면 공명철 사장도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할 때다.
공명철 사장은 자녀에게 순대 장사를 하라고 권유할 생각은 없다. 대신 보다 현대화된 방법으로 100년 가까이 이어온 순대의 맛을 고객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공장을 성공적으로 설립하면 일반 식당에도 순대 공급이 가능해지고 인터넷 판매도 가능해진다. 품질을 지키기 위해서 순대 만드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하고 양보할 수 없다는 고집을 유지했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익숙한 것을 내려놓고 오히려 버려야 사는 길이 열린다. 자녀가 가업을 승계하지 않는다면 분업하고 잘 위임하는 게 필요하다. 시스템을 갖춘 후 외부에서 전통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귀한 음식인 토종 프리미엄 순대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입히는 것이 척추 연골과 뒤바꾼 순대 외길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길일 것이다.
이경희. <내 사업을 한다는 것> <CEO의탄생> 저자. KFCEO과정, 부산프랜차이즈사관학교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