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데일리 창업뉴스 [성공사례]

호떡점 3000개, 닭강정 매장 200개 만든 장사의 신, 성공비결은?

페이지 정보

조회:12,491 등록일등록일: 2022-08-01

본문

대학 전공은 금속공학과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장사의 신이 돼 버렸다. 대학다닐 때 했던 아르바이트만 30여 가지가 넘고 20가지가 넘는 장사를 했다. 그러다보니 대학을 6년이나 다녔다. 노점을 3000개나 만들고, 지금은 전국에 200개가 넘는 닭강정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행 지나 한물간 사업이라고 평가받는 닭강정으로 대박 매장을 만들고 코로나 기간 동안 점포가 200개나 늘었다.


주인공은 ‘인생닭강정’의 대표 허진영씨(54)이다. 힘들게 대학을 들어갔지만, 허진영 대표가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장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정형편이 어려워 시작된 아르바이트 인생

허진영 대표는 학창시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뿐이었다. 음식점, 주점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은 꼭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진학 공부를 했다. 하지만 번번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다가 스물 두 살에 군대를 갔다. 군 제대 후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그래서 들어간 학교가 인하대학교 금속공학과 였다.


대학은 들어갔지만 여전히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그래서 대학 1, 2학년 때는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제대로 공부를 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적은 돈으로 식당을 창업할 수 있다. 어머니에게 식당을 차려주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2천만원 정도를 마련해서 분식집을 차려드리고 어머니가 돈을 벌면 자신은 공부에만 전념할 생각이었다.


첫 장사는 과일 장사였다. 막연히 산지에서 밭떼기로 과일을 사서 이동차량으로 팔면 돈이 될 것 같았다.장사를 위해서는 중고차가 필요했다. 당시 예비역 대학생들에게는 한일은행에서 카드를 만들어줬다. 장사를 위해 카드 대출을 받으려면 누군가 보증을 서줘야 하는데 형제들은 망한다며 말렸다. 하지만 허진영 사장의 고집을 꺽지 못하자 매형이 보증을 서줬다.

 

◆주중에는 학교다니고 주말에는 장사하고

이동과일 장사는 보란 듯이 성공을 했고 어머니에게 식당 창업자금 2천만원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어머니를 창업시킨 후 본인은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허진영 대표는 장사의 맛에 푹 빠졌다. 장사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주중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노점을 운영했다.


옷장사, 군고구마 장사 등 다양한 업종을 운영하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업종이 호떡 장사였다. 호떡 장사는 서울대 입구쪽, 서울 사당역 이수역 태평백화점 뒤의 부동산 가게 앞 등 고정된 장소에서 했다. 가게에 월세를 주고 코너 자리를 빌려서 차를 세워두고 장사를 했던 것이다. 그 당시 하루 장사를 하면 15만원 정도 벌었다. 그렇게 학비를 마련했다.


장사하는 것을 말렸던 형제들도 허진영 대표가 졸업할 때쯤에는 ‘너는 아프라카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놈’이라고 허 대표의 장사 수완을 인정해줬다.

 

◆전투에 승리하고 첫동업은 실패하다

장사와 공부를 병행하다보니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미 장사의 맛을 들인 후라 취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취업을 포기했다.


졸업후 호떡 장사는 점점 탄력이 붙었다. 1천만 원씩 순수익을 얻기도 했다. 깔끄미 호떡이라는 상표를 출원하고 본격적으로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서울 대림동 뒷골목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공간을 임차해 반죽공장을 차렸다. 죽마고우였던 친구와 동업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친구가 공장에서 반죽만드는 작업을 하고 허진영 대표는 물건을 공급할 노점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3개월만에 거래할 노점상 50개를 만들었다. 당시 반죽을 공급해서 월 1500만원씩 순수익을 얻었다.


처음에는 서로 역할분담을 해서 운영을 잘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친구가 보기에 본인은 하루 종일 땀흘려 반죽작업을 하고 힘들게 일하는데 외부 영업활동을 하는 허진영 대표는 늘 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게 문제였다.


마음이 많이 상한 친구는 어느 날부터 말을 걸지 않았다. 잠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는 사이인데 하루에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친구를 보면서 허진영 대표는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친구에게 사업자 관리 업무도 쉬운 게 아니라는 설득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설득능력이 없었다. 친구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에게 사업을 다 넘긴 후 허진영 대표는 송파로 옮겨서 새로 사업을 시작했다.


허 대표와 헤어진 친구는 2년 후 사업을 접었다. 쉽게 보였던 거래처 관리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5a8e1928b450ce842235f9c6d5a1266c_1659330556_3632.jpg

◆평생 함께 할 동업자를 만나다

첫 동업에서 실패한 후 2002년 허진영 대표는 평생 함께 사업을 할 진정한 파트너를 만난다. 대입 재수 시절 노량진에서 만난 다섯 살 어린 후배였다. 그 후배는 대학 졸업후 IT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허진영 대표가 사업하는 걸 보고 회사를 그만둔 후 합류했다.


이후 후배와 허진영 대표는 20년간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가족이나 친형제 보다 더 서로를 잘 알고 신뢰하는 사이가 됐다.


친구에게 사업을 넘기고 헤어진 허 대표는 버블호떡이라는 상호를 등록하고 새로 사업을 시작했다. 노점상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정식 매장을 운영할 수 없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고 수 십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허진영 대표는 늘 처지가 힘든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다. 경제적으로 힘든 서민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늘 고민하던 허 대표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형편이 어려운 서민창업을 지원하며 함께 성장하다

노점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각종 설비를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것이었다. 장사를 할 사람들은 집기류와 장소만 마련하면 됐다. 그렇게 임대해준 비용은 노점을 운영하면서 벌어서 갚을 수 있도록 했다. 허진영 대표의 생각은 큰 호응을 얻었다. 2004년 허진영 대표는 1000개의 노점상을 개설할 수 있었다.


사업은 점차 번성해서 공장을 확장했다. 부지 500평에 건평 150평대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공장이 들어선 지역에 물이 부족해서 다시 공장을 인천 남동공단으로 옮겨야 했다.


호떡은 겨울 한철 장사다. 연중 높은 매출을 올리려면 지속적으로 계절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줘야 했다. 행복한 잉어빵, 아이러브고구마빵, 아이러브계란빵, 옥수수호떡, 와플 등 계절마다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다. 당시 잉어빵은 대히트 상품이었다. 붕어빵과 잉어빵의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잉어빵의 월등한 맛 때문에 붕어빵 옆에 잉어빵이 들어가면 무조건 붕어빵이 문을 닫아야 했다. 그렇게 문을 닫은 붕어빵 장사들은 장소를 옮겨서 잉어빵으로 품목을 바꿔서 장사를 할 정도였다.


조금 늦게 잉어빵 메뉴를 도입한 허진영 대표는 무수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서 완벽한 맛을 개발했다.회사에 17년 이상 경력을 가진 명장 수준의 제빵사를 두 명이나 채용해서 연구 개발에 투자했다. 덕분에 거래를 하는 노점상들도 장사가 잘됐다. 서민장사인 노점상들의 성공을 위해 재료를 공급할 때도 최소한의 이익만 챙겼다.


5a8e1928b450ce842235f9c6d5a1266c_1659330633_6216.jpg 
5a8e1928b450ce842235f9c6d5a1266c_1659330638_2392.jpg

◆거래처 3000개, 화재로 공장이 불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공장에 불이 나서 전소가 됐다. 공장 뒷집이 고물상이었는데 거기서 불이나서 옮겨 붙은 것이었다. 문제는 건물만 보험을 들고 시설보험을 들지 않은 것이었다. 대법원까지 가서 배상을 받기는 했지만 당장 재료를 공급하지 못하는 비상 사태가 터졌다.


하는 수 없이 다른 회사의 공장이 가동하지 않는 야간 시간을 빌려서 재료를 생산해 공급했다. 당시 허진영 대표가 거래하던 노점이 2500개였는데 공장 화재 이후 이탈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그만큼 노점들의 신뢰가 깊었다.


거래처가 가장 많았을 때는 3000개였다. 하지만 허 대표는 어느 날 미련없이 공장을 헐값에 매각하고 사업을 접었다. 이유는 두 가지 였다. 낮은 수익성과 동업이 문제였다.


허 대표는 후배 외에 1명을 더 동업자로 영입했다. 전국에 대리점을 구축하고 재료를 공급했는데 그 중 초기에 들어온 경기도의 한 지역 총판격인 사장에게 지분을 줬다. 3명이 동업을 하는데 지분을 30%나 준 것이 문제였다. 경험 부족이었다.


지분이 비슷한 3명이 동업을 하면 늘 한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후배와 허진영 대표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인데 새로운 동업자는 그렇지가 못하다보니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그리고 대리점과 노점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재료를 공급하다보니 연매출이 100억, 150억원 해도 남는 게 많지 않았다.


소외감을 느낀 동업자는 계속 공장을 매각하고 사업을 정리하자고 했다. 이전에도 파트너의 마음이 상하면 미련없이 사업을 정리했던 허대표는 동업자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공장 매각후 다시 노점으로 

헐값에 공장을 매각한 후 그는 그 돈으로 배달의 민족같은 음식점 어플 사업에 투자를 했다. ‘돈되지요’라는 어플이었다. 나중에 배달의 민족 초기 멤버가 된 친구도 합류했다. 명문대 전산학과를 나와 게임을 만드는 친구였다. 하지만 7개월간 운영하다가 사업이 힘들겠다고 판단해 중단했다. 투자 유치없이 공장을 매각한 자금만으로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 사업을 접은 후 친구와 함께 갈비찜전문점을 동업으로 시작했다. 매장을 성공시켜서 프랜차이즈에 도전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그 사업도 실패했다. 친구의 요리 솜씨가 부족해 맛이 없었다. 신규 고객은 많았지만 맛이 없으니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두 번의 사업 실패로 허진영 대표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 때가 2017년이었다. 호떡사업을 할 때 송파구 쪽에서 대리점을 하던 친한 동생이 ‘형님 밥은 먹고 사셔야죠’라며 허 대표를 위해 작은 장사 자리를 마련해줬다.


고고로맨스라는 이름으로 핫도그와 오뎅을 팔았다. 매출 150억 원대가 넘는 공장을 운영했던 허진영 대표는 다시 학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하던 대학시절의 처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장사는 잘됐다. 단 손님은 줄을 섰지만 객단가가 낮아서 매출에 한계가 있었다. 


5a8e1928b450ce842235f9c6d5a1266c_1659330704_7736.jpg

◆인생닭강정 시작, 3평에서 하루 300만원 벌며 대박

허 대표는 닭강정으로 업종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인생닭강정’의 시작이다. 주변에서는 닭강정 사업은 이미 한물 가서 안된다며 말렸다. 하지만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객단가가 올라가자 3평 공간에서 월 4500만 원대 매출을 올렸다. 장사는 불티났고 마침 놀고 있던 중학교 동창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가 됐다.


허 대표의 일을 돕던 친구가 독립해서 성신여대 앞에서 가맹 1호점을 냈다. 허진영 대표도 본인이 졸업한 인하대학교 앞에 매장을 냈다. 인하대 직영점은 초대박이 나 3평 매장에서 하루 300만 원까지 매출을 올렸다.


첫 매장에서 주방 일을 돕던 허 대표의 친구도 지금은 독립해서 서울의 한 대학가앞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장사가 너무 잘되자 허진영 대표는 2018년 10월 인생닭강정 상표 출원을 했다. 줄서는 매장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가맹문의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10년간 노점으로 호떡 장사를 하던 분이 서울에 낸 또다른 매장은 첫달 매출 9천만 원을 올려 센세이셔널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성과 덕분에 2020년에만 100개가 넘는 가맹점이 개설됐고 지금은 200개가 넘는 가맹점이 운영되고 있다. 한물 간 업종이라는 인식이 있던  닭강정 업계에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은 허대표의 인생닭강정이 닭강정 대표 브랜드가 됐다.

 

◆한물간 닭강정 사업을 살린 비결은   

인생닭강정이 대박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겉바속촉’의 맛 덕분이다. 인생닭강정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닭강정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 주변에서는 모두 허 대표의 닭강정 사업을 말렸다.


그래서 허 대표는 왜 닭강정 사업이 무너졌는지를 분석해봤다. 닭강정이 실패한 이유 중에 하나는 빨리 식어서 딱딱해졌기 때문이었다. 안주꺼리로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맛의 닭강정을 개발했다. 호떡 공장을 할 때부터 제품 연구 개발에 아끼지 않고 투자한 덕분에 맛개발에는 자신이 있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둘째, 골라먹는 다양한 맛이다. 인생닭강정은 8가지 맛으로 즐길 수 있다. 과거의 닭강정은 매운맛 순한 맛 두 종류밖에 없었다. 인생닭강정은 파닭, 양파, 매콤 치즈, 순한갈비, 마늘 등 원하는 맛을 골라서 즐길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매콤달콤한 맛을 가진 닭강정이다. 달콤한데 매콤한 맛이 살짝 가미돼 있다. 마늘 간장도 인기 메뉴다.


최근에는 3가지맛 닭강정과 떡볶이를 세트로 즐길 수 있는 2만 원대 메뉴 치트러스를 출시했는데 이 메뉴도 인기가 높다. 가맹점들의 객단가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5a8e1928b450ce842235f9c6d5a1266c_1659330860_4772.jpg
 

◆1인 운영에  일 100만원 매출 매장 만드는 게 새로운 목표 

셋째, 소스맛이다. 대학 시절 이후 장사를 계속 했고 특히 연구 개발에 투자를 많이 하다보니 맛있는 소스를 찾아내는 노하우를 갖게 됐다. 한 곳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영역별로 가장 맛있는 소스를 찾아서 개발한다.


넷째, 쉬운 운영이다. 최근에 인생 닭강정은 시스템을 혁신했다. 점점 인건비가 오르고 구인난으로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워지자 제폼 공급 방식을 변경했다. 매장에 한 사람만 근무하면 하루 1백만 원까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닭강정의 단점은 매출이 많이 오르면 일이 힘들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리 시스템을 혁신하면서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반조리된 제품을 공급하게 되면서 맛에 변화없이 주방 일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가맹점 사업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다섯째, 100% 닭다리살만 사용한다. 닭다리살의 특징 때문에 인생닭강정은 식어도 맛이 있다. 다음날 먹어도 맛이 살아있다. 조금만 식으면 맛이 퍽퍽해지는 다른 닭강정과 다르다. 

 

◆가맹점 매출 증대, 해외 진출이 새로운 목표

인생닭강정 가맹점은 대부분 7~8평 규모다. 가맹점 사업자들은 주부나 부부, 청년사업자들이 많다. 장사가 잘되는 매장은 월 7천~8천만 원대, 중상위권 매장은 4천만~5천만 원대, 보통은 2천만~3천만 원대, 하위권은 1천만 원대 매출이다. 


요즘 허진영 대표가 꿈꾸는 것은 두 가지다. 코로나 확산이 들쑥 날쑥 하면서 가맹점들의 매출에도 영향이 있다.


닭강정은 테이크 아웃 매출이 60~70%로 높아서 상대적으로 배달이 적다. 그래서 배달 수수료나 배달대행료에 따른 손실이 적지만, 그래도 마스크를 끼는 사람이 많으면 매출에 영향이있다. 테이크아웃 숫자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맹점의 매출을 높여줄 메뉴 개발과 마케팅 전략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


두 번째는 해외 진출이다. 한국의 치킨 맛 특히 인생닭강정 맛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해외에 K치킨의 맛을 알리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요즘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매출을 올리고 사업을 확장하는 전투에서는 성공 했지만, 동업자 관계,  위기 관리 등 경영의 미숙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경영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동업자와 헤어지는 아픈 경험도 있었지만 지금도 허진영 대표는 동업 예찬론자다. 20년째 파트너로 함께 하는 후배가 있어서 지금의 인생닭강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동업 실패는 동업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허 대표 자신이 경영을 잘 모르고 미숙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가면 힘들고 먼 길이 즐거운 길이 된다. 고통은 나누고 기쁨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은 외롭고 힘든 길이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고, 힘이 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허진영 대표에게는 가맹점주와 조직원, 사업파트너가 그런 존재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는 관계다.    

지난해 인생닭강정 가맹본부 매출액은 92억원이었다. 시스템을 잘 갖춰 가맹점 사업자가 더 운영하기 쉬운 매장, 매출이 더 높은 가맹점, 그리고 해외 진출에 열정을 쏟아부어 30년 아르바이트. 장사 경력의 열매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게 꿈이다.  

buza.biz

데일리 창업뉴스

전체기사
창업뉴스
창업트렌드
창업아이템
성공사례
전문가 칼럼
창업경영실무
프랜차이즈
전체뉴스
  • 구분 창업  경영  마케팅
  • 이 름
  • 연락처
  • 이메일
  • 상담
    내용
개인정보처리방침 동의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