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표, 3천만원으로 창업해 20대에 연봉 4억원 번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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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744 등록일등록일: 2022-06-14본문
“친형이나 친동생이 비젼없이 힘든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하라고 말할 겁니다. 단, 반드시 나를 갈아넣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역량을 키우는 데는 창업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필드키친의 강규원 대표(29세)다. 강 대표는 취업을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다. 하지만 오래 되지 않아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가서 창업에 도전했다. 왜 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걸로 생각한다. 강 대표도 대기업에만 들어가면 남들처럼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꿈같은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학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만년 과장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꿈꿨던 직장이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가서 창업에 도전했다. 창업 후 얼마되지 않아 강규원 대표는 월 1500만원씩 순수입을 올렸다. 사업을 확장해 몇 년 후에는 5개 매장에서 월 3천~4천만원씩 벌었다. 지금은 8개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65개의 가맹점이 함께 하고 있으며 얼마전에는 서울 강남역 요지에도 매장을 냈다.
간절히 원하던 직장을 퇴사하고 창업에 도전해 성공한 청년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간절히 원하던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사표를 낸 이유는
강규원 대표는 나를 갈아넣을 준비가 된 사람이 선택해야 할 것은 바로 창업이라고 강조한다. 나를 갈아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좋아하는 술, 취미 등을 모두 끊고 오로지 사업에만 전념하고 그 외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은 끊어내야 하는 엄청난 인내심을 말한다.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을 볼 시간도 아껴야 한다.
강 대표의 가맹점 중에는 1500만원을 투자해 한 달에 2천만원씩 버는 사업자가 있다. 남들이 들으면 대박이라고 한 마디 하면 되지만 그 말 뒤에는 어머어마한 노력이 숨어있다는 게 강 규원 대표의 말이다.
사업을 하기 전에 상가만 서른 군데 이상 봤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보증금 5백만원, 월세 40만원짜리 상가를 권리금 없이 얻었다. 모든 기물은 중고로 구매했고, 창업자금이 부족해서 필수 기물 외에는 구매를 하지도 못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육수 냉장고 살 돈이 없어서 바트에 냉면 육수를 소분하여 냉동 보관하며 장사를 했다. 방구할 돈도 없어서 매장 한 켠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면서 6개월을 버텼다. 집이 아닌 가게에서 생활하고, 가게 근처 사우나에서 샤워를 했다. 새벽 시간에도 잠을 줄여가며 배달을 했고, 모든 시간을 장사에만 에너지를 쏟았다.
그런 노력 덕분에 오픈 후 월 4천만원대 매출을 올렸으며 매달 500만원씩 매출이 상승해 월 매출 1억이 넘는 매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을 갈아넣어 성공했던 가맹점주처럼 강규원 대표도 20대의 에너지를 갈아넣어서 사업을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공채로 입사를 했던 그가 왜 창업에 자신을 갈아넣게 된 걸까?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모은 돈 3천만원으로 고향에 가다
강규원 대표는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IMF때 부모님의 사업이 크게 망하면서 전북 익산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마치 기생충 영화에 나오는 가족처럼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는 온 가족을 고생으로 내 몰았다. 강규원 대표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야 했다. 중고교 시절 예식장에서 서빙하는 주말 알바를 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일당 5만원을 벌었다.
고등학생 때 입시 미술을 했는데 돈도 많이 들고 나중에 먹고 살기도 어려울 것같아 수능을 본 후 원하는 전공을 바꿨다. 장학금을 준다는 것도 솔깃했고, 장사와 연관이 많을 것같아서 조선이공대학교 프랜차이즈 경영과에 진학한다. 군대 제대 후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학교를 다니다가 4학년 취업시즌에 죽기 살기로 공부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대기업 5군데에 서류를 냈는데 그 중에 2곳에서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그런데 한 기업에서 서류 전형에 합격했지만 시험을 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응시 자격이 4년제 대학이었는데 회사 착오로 전문대인 강규원 대표를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정확한 응시 조건을 체크하지 못하고 서류를 넣은 건 본인 잘못이지만 그걸 챙기지 못한 회사의 과실도 있으니 면접 볼 기회를 달라고 사정해 기회를 얻었다.
제일 먼저 면접 장소에 도착하고 싶어서 면접 전날 서울에 올라가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 5시부터 회사에 나가서 기다렸다. 강 대표는 ‘나를 안뽑으면 당신네 회사가 손해’라는 생각으로 면접에 임했다. 좋은 분위기에서 면접이 진행됐고 다행히 그는 합격했다.
입사 직후 대형몰의 여성의류 매장 파트를 맡게 됐는데 몰이 오픈하기 전이다보니 주말에는 시간이 났다. 주중에는 회사 일하고 주말에는 알바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
1년이 지난 후 진급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은 모두 한단계 직급이 상승했는데 강 대표의 이름은 없었다. 가장 일찍 나가고 가장 늦게까지 일했다. 누구보다 업무 처리 속도도 빨랐다. 동기들 일까지 맡아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직급이 오르지 않은 것이었다. 불현 듯 만년 대리를 하고 있는 어느 상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비젼이 없다고 판단했다. 1년2개월 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포함해 3천만원을 들고 전북 군산으로 내려갔다.
◆맨발로 뛰며 창업, 첫달부터 대박난 이유는
장사 경험이 없던 강사장은 3주간 창업 준비를 했다. 업종을 고민하고 투자비를 설계했다. 3천만원은 창업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금액이었다.
마음에 드는 상가는 30평이었는데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120만원이었다. 인테리어를 하고 주방 기물을 사야 하는데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상가 주인과 협상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올렸다. 인테리어는 직장생활을 할 때 알았던 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철거 각종 시공 등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을 제외하고는 자재 구매까지 발로 뛰면서 해결했다. 기물은 모두 중고로 구매해 비용을 절약했다. 그래도 짧은 기간 몰에 근무하면서 배웠던 지식과 정보가 창업하는데 도움이 됐다.
창업자금이 부족해 오픈할 때는 식자재 구매할 돈이 없어 외상으로 물건을 받아서 아슬아슬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업종은 닭갈비였는데 전수창업비로 5백만원을 줬다. 2015년 7월 17일 사업자 등록증을 냈다. 얼마나 고생했든지 창업 준비기간 동안 74kg이던 몸무게는 66kg로 줄었다.
“맨손 창업을 하는 건 정말 힘들다. 하지만 건강과 젊음이 있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했다. 부족한 자금으로 직접 발로 뛰면서 배운 것도 많다. 자금이 넉넉해 남에게 맡겼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첫창업인 ‘닭갈비클라쓰’는 문을 열자 마자 장사가 잘됐다. 매장은 군산대 앞에 있었다. 당시에는 청년창업자들이 별로 없었는데 주 고객층인 군산대 학생들이 강 대표와 비슷한 또래라 편했다. 주민들도 열심히 하는 강 대표를 좋게 봤다. 홍보도 잘 되고 장사도 잘 됐다. 군산대 학생들과의 교류도 좋았다. 학생 회장이 축제 때 현수막도 걸어주고 학교 예산으로 쿠폰로 발행해줬다.
중고령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나이 어린 꽃미남 청년이 장사를 하는 모습을 지역사회는 대견하게 바라봐줬다. 하루에 세 번씩 오는 고객도 있었다.
첫 달 매출 5천만 원, 두 번째 달 매출 6천만 원을 올렸다. 한달에 2천만 원의 소득을 벌었다. 빚을 안고 시작한 창업이었지만 두 달 지나서 미수금을 다 갚았다.
그러다가 2016년에 매출이 소폭 하락했다. 강 대표 매장이 불티나자 인근에 메머드급 닭갈비 경쟁점이 생겼던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마진을 포기하고 메뉴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그 무렵 닭갈비 배달까지 시작했다. 대형 경쟁점은 문을 닫았고, 강 대표의 매장은 경쟁에서 이겨 더 잘 됐다. 새벽 1~2시까지 열심히 일만 하자 금방 1억원을 모을 수 있었다.
◆5개 매장 운영하며 한달에 3천만~4천만원씩 벌어
군산대 앞 매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강 대표는 두 번째 브랜드에 도전한다. 지인의 제안으로 2016년 과천 경마장 특수 상권에 입점 기회가 생겨 카페와 한식당을 열게 됐다. 그런데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건 큰 고통의 시작이었다. 동업으로 50%씩 투자를 하기로 했으나 지인이 돈을 마련하지 못해 혼자 자금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계약은 이미 진행됐고, 자금은 엄청나게 부족했다.
그 때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였다. 총 3억원의 투자비가 드는 사업이었는데 강 대표는 이미 1억을 투자해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동업자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거기서 중단하면 계약 위반으로 돈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신용보증재단은 물론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통장에는 단돈 백만원도 남지 않았다. 동업자는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같이 하자고 말하고, 그 사람이 소개한 중간에 끼어든 회사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초반에는 월 500만원씩 적자가 났다.
강 대표는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직접 뛰었다. 빚을 지며 오픈한 후 월요일과 화요일은 군산 닭갈비클라쓰를 돌보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과천 경마장 카페와 식당에 매진했다. 당시 금토일은 하루에 3만보 정도 씩 걸었다. 매장 3개를 피크타임별로 뛰어다니다보니 나온 숫자다. 낮에는 매장에서 뛰고 원가 절감을 위해 거래처를 찾고 서류 정리를 하며 오로지 사업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2017년 1월부터는 흑자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2017년 5월에 과천 국립 과학관의 매장도 매물로 나와 브런치카페를 오픈한다. 2019년까지 경마장에 3개점, 과학관 1개점, 군산에 1개점 총 5개 매장을 열심히 운영했다. 매장 3곳에서 얻는 월 순소득은 3천만~4천만원대였다. 연봉으로 따지면 4억원이 넘는 셈이었다.
그때 당시 강 대표가 운영하는 브랜드는 삼겹배달전문점 ‘1인삼겹 오빠삼’, 게장 브랜드 ‘밥도둑 바른게장’, 군산의 ‘닭갈비클라쓰’ 3개였다.
◆도전, 또다른 성장의 시작
배달 매출이 잘 나오자 본격적으로 배달사업을 시작했다. 2018년과 2019년 초가 되면서 배달이 홀 매장보다 훨씬 잘됐다.
강 대표가 운영하는 ㈜필드키친의 핵심 브랜드는 1992덮밥&짜글이(이하 덮밥짜글이)이다. 장사가 너무 잘되는 걸 보고 전주 매장에서 일하던 분이 아들에게 창업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가맹점을 내줬다. 강 대표의 친구들도 창업을 하고 매장에서 일하던 구성원들이 창업을 희망하고 그렇게 가맹점이 확장되면서 1992덮밥&짜글이는 배달전문점으로 현재 65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짜글이는 충청도 음식인데 전라도 식으로 바꿔서 가성비 넘치는 메뉴로 개발했다. 고기듬뿍짜글이도시락, 닭갈비덮밥도시락, 마약양념돼지덮밥도시락, 김치고기덮밥도시락 등의 메뉴가 있다. 모든 메뉴의 가격은 11000원선.
브랜드는 덮밥짜글이지만 가맹점에는 3개 브랜드까지 숍인숍 입점이 가능하다. 1인삼겹오빠삼, 밥도둑바른게장, 죽선생, 호랭이냉면, 돈까스클라스, 닭갈비클라쓰, 청담할매식혜 등 여러 가지 브랜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덮밥짜글이를 중심으로 호환될 수 있는 식자재로 메뉴를 구성해 주방에 부담이 없다. 재료 수급, 매장 동선 등이 편리하다. 배달 전문이라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서울 강남 요지에 매장을 내다
요즘 강규원 대표는 서울에 있다. 2022년 3월 강남역 요지에 매장을 냈기 때문이다. 소자본으로 창업해 월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던 가맹점주와 공동투자로 1992덮밥&짜글이 매장을 오픈했다. 규모는 38평이다. 코로나가 끝나지않은 2021년 12월에 계약을 했기 때문에 권리금 없이 매장을 얻었다. 그 매장에 현재 권리금이 3~4억원 정도 붙어 있다. 이렇게 기회는 항상 다른 사람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사람에게 온다.
배달 중심이던 1992덮밥&짜글이 매장이 오프라인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낸 매장이다. 고객층은 연령 제한없이 다양하다. 한식의 감성을 담기 위해 노력한 매장이다. 오프라인 매장이라 배달비중은 매우 낮다. 내점 고객 맞이하기도 바쁘다. 현재 매출액은 8천만~9천만원선이다. 지금까지는 점심 중심 장사였는데 곧 프리미엄 막걸리와 함께 저녁 매출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강 대표의 브랜드들은 배달전문점이 많지만, 앞으로 서울 강남역 모델로 해서 코로나엔데믹 시대를 대비해 홀매장도 확장할 계획이다. 물론 배달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다.
◆헝그리정신...무조건 열심히 한다
강 대표가 8개 브랜드를 진두지휘하는 비결의 바탕에는 헝그리정신이 있다.
군산 닭갈비클라쓰를 할 때 부터 무조건 열심히 했다. 과천 경마장 매장을 할 때도 남는 시간에는 쉬지 않고 메뉴개발을 했다. 카페 메뉴인 핫도그, 브런치, 비빔밥 등 모든 메뉴 개발을 직접했다.
강 대표는 벤치마킹을 많이 한다. 다른 식당을 자주 다니며 먹어봐서 느낌이 좋으면 집에와서 직접 해본다. 음식 유튜브도 자주 참고한다.
사실 요리는 중학교때부터 했다. 그때부터 터득한 요리의 비결은 간이다. 요리는 간이 80%를 차지한다. 가령 어릴 때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신김치가 없으면 생김치에 식초를 넣어서 끓여먹곤 했다. 요리에 멸치액젓, 참치액젓 등 재료를 바꿀 때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살펴보는 식으로 끊임없이 소스와 식재료를 바꿔가면서 간을 연구한다.
벤치마킹을 하며 메뉴개발을 하는데도 원칙이 있다. 재료는 좋은 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와 그렇지 않은 재료는 맛에 차이를 만든다.
◆직접 메뉴 개발, 끊임없는 도전
강 대표의 또 다른 비결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강 대표의 사업 방식은 린스타트업 방식이다.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 다음 고객 반응을 보면서 브랜드를 혁신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덮밥짜글이가 나오기 전까지 6개의 브랜드가 있었다. 덮밥짜글이가 가장 잘 됐다. 그 밑바탕에는 엄청난 노력이 계속 됐다.
강 대표는 배움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무언가 배우려고 마음 먹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상담료가 100만원이라고 해도 돈을 내고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얻은 지식은 바로 실천을 한다. 2019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청년사관학교도 이수했다.
계속 시도를 하고 외식브랜드를 만드는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메뉴 개발이 재밌다. 테스트하고 기획하고 시장에 던져졌을 때 반응이 오면 희열을 느낀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덮밥짜글이의 매장이 총 65개가 있는데 상위권 매장은 월 1억원, 중위권이 월 3~4천만원, 하위권이 월 2천만원이하다.
창업현장에서 강 대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모든 성공과 매출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3천만원 안팎의 적은 자본을 투자해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은 그럴만한 자격과 이유가 있다.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경영자의 마인드가 젊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조건 열심히 한다. 한 마디로 가게에 본인의 영혼을 모두 쏟아 붓는다. 간절함이 다르다. 영업 시간도 더 늘려서 하고, 리뷰도 열심히 단다. 눈이나 비가 올 때 라이더를 구하기 힘들면 본인이 직접이라도 배달을 간다. 언제든지 고객을 위해 대기 상태에 있다.
또한 사업에 올인하며 좋아하는 것들을 끊는다. 친구와 만나서 술마시는 것, 데이트하는 것,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등이 그것이다.
매출이 낮은 매장들의 특징은 영업 시간이 불규칙하고 짧다. 그것에 대해 지적을 하면 조금 고치다가 결국 원상회복된다. 기본적인 영업 방침을 지키지 않으면서 매출이 안 나오면 남의 탓을 하기 십상이다.
소스같이 음식 맛에 중요한 재료를 아낀다. 배달팁 할인 등 몇 백원 손해보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늦게까지 영업을 해야 함에도 9시에 배달을 중단하고, 눈이나 비가 오면 배달원을 구하기 힘들다며 바로 문을 닫고 술을 마시러 가기도 한다.
사업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고 싶으면 자고, 쉬고 싶으면 쉬고, 문닫고 싶으면 닫고. 그렇게 해서는 높은 매출을 올리기 힘들다.
궁극적으로 자기 돈을 투자한 내 사업이므로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각자 삶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행동도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매출로 결과가 나타난다. 열매가 다른 것이다.
“외식업에서 성공하려면 친구도 술도 여자도 끊어내야 한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적어도 사업의 기반을 잡을 때까지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 30대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그토록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가 사표를 내고 창업에 도전한 강 대표는 7년간 외식업을 하며 느낀 바가 많다. 분명 돈을 버는 외식업은 다르다. 장사를 10년, 20년 해도 여전히 초보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쁜 사업 방식이 몸에 굳은 사람들이다. 강규원 대표는 그런 사람들을 컨설팅 해주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는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돈 안받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더 커지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놓고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싶다. 내가 바로 서면 40세, 50세가 됐을 때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0, 50대에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게 강 대표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