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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창업뉴스 [성공사례]

네번 망하고 시니어 사업으로 우뚝, 미스코리아 출신 사업가의 성공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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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4,317 등록일등록일: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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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니어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일본의 투자회사와 라이선스 게약을 맺고 일본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K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K푸드, 코스메틱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유독 조용한 분야가 K패션이다. 모든 K 패션 브랜드가 일본 진출을 희망하지만 일본에 라이센스 판매를 한 것은 처음이다. 주인공은 몬테밀라노다.

 

◆미스코리아 출신은 사업하기 쉬울까?

몬테밀라노의 창업자 오서희 대표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미모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선입관을 부추기기도 한다. 미인 대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면 화려하고 쉬운 삶을 살 것같지만 오서희 대표는 사업에 네 번이나 실패했다. 특히 중국에 공장을 운영하던 그녀는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받아서 매출이 반토막 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딛고 몬테밀라노는 라이센스 사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만들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특히 사업은 힘들고 공평하다고 강조하는 오서희 대표.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니어 고객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오서희 대표는 어떻게  시니어패션 사업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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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만에 1억 날리고 망한 첫 사업 

오서희 대표는 재미교포 출신이다. 대학 재학 중 우연히 미주 한국일보를 통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정보를 접하고 출전했다. 오 대표가 미스코리아 달라스 진으로 선발된 것은 대학교 3학년때다. 미스코리아가 됐지만 미국에서 살고있던 그녀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연예인의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렸다


오 대표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사회생활은 한국에서 시작했다. 첫 직장은 패션회사의 패션디자이너였다. 원단 수출회사에도 근무했다. 2년 정도 직장생활을 한 후 자신의 패션브랜드를 만들어 창업했다.


1998년 부모님에게 1억원을 빌려 창업자금을 마련했다. 자신의 영어 이름을 사용해 섹시하고 귀여운 컨셉의 영캐쥬얼 브랜드 <미스실비아>를 런칭했다. 서울 동대문과 면목동에 2개의 매장을 내고 직접 옷을 만들어서 판매했다. 


◆한 사람의 자본가보다 대중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

회화를 전공한 그녀가 패션사업에 도전한 이유는 한 사람의 자본가에게 그림을 파는 대신 패션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은 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이쯤 배우면 내 사업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제조, 마케팅, 유통, 재고관리 등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사업 실패후 오 대표는 자신보다 하루 더 사업을 하는 모든 사업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업을 접는 일은 꿈을 접는 것과 같아서 슬프고 힘들었다.


첫사업에 실패한 후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브랜드 <아이스버그>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레오나드>의 상품기획팀장으로 일했다. 명품 브랜드 MD라 유럽으로 출장갈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유럽 패션 산업도 깊이있게 접했고 백화점 유통의 특성도 배울 수 있었다.

 

◆식당 경영에서 배운 것은?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한 때 대호가든이라는 식당도 운영했다. 언니가 하던 식당을 물려받아서 경영했는데 강북에서 가장 큰 800석짜리 고깃집이었다. 고깃집을 운영할 때 오 대표는 탈 공간을 위해 냉면 배달을 하는 등 참신한 아이디어로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2000년 12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식당 경영을 했지만 마음은 늘 패션사업에 있었다. 2001년 미리 몬테밀라노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브랜드의 의미는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계의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다른 아이디어로 없던 새로운 매출원을 발굴하는 등 열심히 일했지만 식당경영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늘 패션 사업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식당 경영을 하면서 고객 서비스와 응대를 배웠다. 깨달은 것도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적성은 없다, 하기 싫으면 적성을 핑계댄다.  왜 하기 싫은가? 함께하는 사람이 싫어서다. 1인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 일해야 그게 기업이다.

 

◆오서희 대표가 관계를 단절하는 사람의 특성은

오 대표가 싫어하는 사람은 약삭 빠르고 돈을 안쓰는 사람이 아니다.  비교하고 불평하고 핑계대는 사람이다. 불평하면서 계속 일을 한다든지, 안된다며 핑계를 대는 사람은 유치하고 어린 아이같다. 


경영자가 되면 구성원들에게 아빠같이 기둥도 되고 엄마같은 따뜻함도 줘야 하는데 불평이 습관이 된 사람의 말은 들어봤자 피곤하기만 하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지만 정작 자신은 습관적으로 불평하고 핑계대기 때문에 그걸 깨닫지 못한다.


오 대표는 그런 사람과는 관계를 끊는다. 오 대표는 평상시 절대로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입밖에 내뱉는 순간 부정적인 상황을 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패션사업에 도전하다

2003년 오서희 대표는 고깃집을 접고 다시 패션 사업에 도전한다. 초기의 몬테밀라노는 지금같은 시니어SPA브랜드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젊었던 오대표는 젊은 감각을 담아 중고가의 발랄한 영캐쥬얼 컨셉으로 브랜드를 론칭했다.


한국에서 이태리 브랜드를 만들고 이태리에서 제품을 수입했다. 티셔츠는 18만원대, 코트는 120만원대였다. 하지만 영캐쥬얼 스타일의 패션사업은 망하고 말았다. 이태리를 오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중고가 브랜드 사업인데 불경기도 한 몫했다. 


사업을 접으면서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고별전’을 열고 90% 할인판매를 했다. 고별전에서 재고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이 경험을 통해 오 대표는 <가격은 고객이 정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새로은 패션을 기획한다. 그게 4070 세대를 타겟으로 하는 지금의 몬테밀라노 컨셉이다.


◆합리적인 가격과 독창적인 프린트 패션 브랜드의 탄생

몬테밀라노의 특성은 ‘합리적인 가격’과 ‘프린팅’이다. 시즌도 파괴했다. 20대에게 자라와 H&M같은 패스트패션이 있다면 시니어를 위한 패스트 패션이 되는 게 몬테밀라노의 목표가 됐다. 


오서희 대표가 프린팅 패션을 선호하는 것은 전공과 관련이 있다.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옷감에 프린팅된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다.


오 대표가 상품기획팀장으로 일했던 프랑스 명품브랜드 <레오나드>는 독창적인 플라워 프린팅이 돋보이는 패션이다. 아름다운 프린트가 멋진 패션이지만 워낙 고가 제품이라 세탁비가 많이 들고 관리가 힘들었다. 오 대표는 레오나드와 유사하지만 손쉽게 세탁할 수 있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는데 당시 젊은층이 선호하는 의류에는 프린팅을 하지 않았다. 주로 시니어 패션에 프린팅이 많이 활용되고 있어 시니어 패션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지금이야 말로 엄청난 인구 수를 가진 시니어 패션 전성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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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면 행복해지는 패션?

여러 번의 사업 실패 경험을 통해 오 대표는 패션비즈니스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정립했고 그 철학을 몬테밀라노에 담았다.

프린팅 패션은 컬러풀하다. 그런데 오대표가 담고 싶은 것은 시각적인 컬러가 아니다. ‘행복감’이다. 오서희 대표는 몬테밀라노를 입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행복감을 주는 컬러와 디자인을 지향한다.

오 대표는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절대로 원단을 고르지 않는다. 미신같지만 원단을 고를 때의 감정이 투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행복할 때 원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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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가격 정책 

몬테밀라노의 행복 철학은 가격에도 투영돼 있다. 명품처럼 비싼 옷은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에게 과시적인 행복을 제공한다. 반면 몬테밀라노같은 합리적인 저가격 패션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언젠가 오 대표는 호텔 주차장에서 가장 비싼 벤츠를 타고 3천만원대 밍크코트를 걸친 여성이 몬테밀라노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 또 유럽으로 향하는 공항의 일등석 라운지에서 몬테밀라노를 입은 여행객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시장 노점에서 몬테밀라노를 멋지게 소화한 소상공인 사장님을 보기도 했다.

 

세상은 그 사람이 얼마나 비싼 옷을 입고 있는가, 명품백을 들었는가로 사람의 값어치를 매긴다. 오 대표는 그런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오 대표 자신도 명품백을 들지 않는다. 오래전 청소년들이 브랜드 운동화와 옷을 입고 친구에게 자랑하려던 것처럼 요즘 여성들은 과거의 청소년들처럼 명품으로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려고 한다. 오 대표는 이런 현상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가격이 싸다고 품질까지 저렴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수백만 원대 명품백의 원가가 8만원대라는 것이 공개돼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이 전개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합리적인 가격대의 패션도 얼마든지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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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으로 매출 반토막, 지금은 새로운 성장기

몬테밀라노의 패션 철학과 독특한 스타일은 매니아 고객을 만들었다. 오 대표는 중국에 제조공장과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했다. 백화점마다 매장을 개설했고 50여개 매장에서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 했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중국의 공장과 디자인연구실을 모두 닫아야 했던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상당수 매장이 문을 닫고 매출도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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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지속돼온 중국의 제조시스템을 중단하고 한국에서 다시 시스템을 세팅해야 했다. 오 대표는 <그 과정이 은 마치 놀이공원에서 안전바 없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한다.


코로나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지만 긍정적인 말만 하겠다고 다짐한 오서희 대표는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냈다. 현재 로드샵과 백화점을 포함해 3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라이선스 사업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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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패션 최초로 일본에 상륙한 몬테밀라노

더욱이 지난 해에는 K패션 최초로 일본 투자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일본 상륙은 새로운 성장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는 K콘텐츠에 열광하는 탄탄한 4070 주부층이 존재한다. 일본 QVC 홈쇼핑이 이 시장을 노리고 K시니어 브랜드를 찾았는데 그 레이더망에 걸린 게 바로 한국 중년주부층에 탄탄한 매니아 고객층을 가진 몬테밀라노였다.


하지만 결정이 미뤄지다가 에이전시를 통해 일본 진출이 안될 것같다는 소식을 듣자 오대표는 곧장 비행기를 타고 동경으로 날아갔다. 큰 여행 가방에 몬테밀라노 제품을 가득 채워서. 

QVC는 미국계 글로벌 쇼핑채널인데 아시아에는 일본에 방송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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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본부장은 마침 미국에서 유학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대화를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음날 오 대표는 방송 제안 통보를 받았다. 몬테밀라노는 러닝개런티 6%로 일본 QVC와 계약을 맺었다. 오서희 대표는 방송에 직접 출연해 몬테밀라노 패션을 입고 제품을 소개했다.


QVC방송에 한국인이 등장한 것은 최지우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QVC방송국에 몬테밀라노 관이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13가지 종류의 옷을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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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밀라노가 시니어SAP브랜드라고 해서 60대 이상 고령자가 타겟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서희 대표가 생각하는 시니어는 40대 이상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4070층을 타겟으로 하고 한국에서도 이 세대의 고객층이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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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비 대신 택한 것은?

패션은 브랜드 파워가 중요하다. 다양한 브랜드 마케팅은 필수다. 하지만 몬테밀라노는 마케팅에 돈을 쓰지 않는다. 가장 큰 홍보는 입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니어모델들은 몬테밀라노의 가장 큰 홍보채널이다. 몬테밀라노는 1년에 여섯 번 정도 패션쇼를 가진다. 패션쇼에 선 시니어모델들은 모두 몬테밀라노 해시태그로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린다. 자랑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몬테밀라노 패션 홍보로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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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모델 산업을 키우다 

오서희 대표는 ‘시니어모델산업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우연히 서울 강남구 주최 페스티널에 이벤트 회사와 컨소시엄으로 공모를 했는데 덜컥 선정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몬테밀라노 옷을 제공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구청의 행사담당 국장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당초에는 젊은 모델들 사이에 시니어 모델 몇 명을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키 170cm가 넘는 20대와 키 160cm의 60대는 체급이 맞지 않았다. 시니어모델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오 대표는 시니어모델들이 실수를 해도 동네 주민들이니 이해해줄 것이라며 구청측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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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선 100명의 시니어모델, 감동과 환호

덕분에 100명이 시니어모델들이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린 시니어 패션쇼에 섰다. 패션쇼장은 눈물과 열광의 도가니였다. 밥하고 살림하던 자신의 어머니들이 패션쇼에 서자 가족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오서희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감동이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를 정도다.

행사 이전만 해도 시니어 모델은 큰 존재감이 없었으나 그 행사 이후 시니어 모델 시장은 급성장해서 큰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찾아가는 문화마케팅

몬테밀라노는 문화 마케팅도 적극 활용한다. 오 대표는 올해 8월 홍익대 대학원 서양학과에서 석사로 졸업한다. 패션사업을 하지만 늘 작품 활동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틈틈이 작품을 그렸다. 결국 홍익대 대학원까지 진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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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이런 애정은 몬테밀라노의 <찾아가는 미술관> 행사로 열매를 맺었다. 첫 전시는 여수에 있는 400평짜리 카페였다. 해당 카페는 갤러리와 카페가 둘 다 있었지만 오서희 대표는 무거운 갤러리 대신 카페를 전시장소로 택했다. 카페 사장은 800만원, 1000만원씩 하는 그림이 손상이라도 될까봐 겁을 냈지만 오서희 대표는 본인이 책임진다며 전시회를 밀어붙였다. 여수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400평대의 멋진 카페는 미술관이 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미술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 대표는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이 딱 하나라고 말한다. 49대 51로 내가 조금만 손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오 대표가 손해를 감수하고 미술품 훼손에 대한 걱정을 없앴기 때문에 첫 전시가 가능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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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오 대표는 미스코리아 출신 예쁜 여사장이 아니라 다른 모든 기업가처럼 24시간, 1년 365일 사업만 생각하고 산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전산에 접속해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다. 시장 반응을 매일 매일 체크하는 것이다. 그런 후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2005년부터 꾸준히 운영해온 네이버 블로그도 직접 관리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자신의 크고 작은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일상의 작은 행복 중 하나다.


회사에는 주 2~3회만 출석한다. 주로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패션업계 관계자 미팅으로 종일 바쁜시간을 보낸다. 가끔 특강도 하는데 서울대 의류학과에서 특강을 한 후에는 포항공대에서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사업>에서 고령자 인체측정 부문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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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가장 힘들 때?

누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오 대표는 <사업은 항상 힘들다>고 대답한다. 오서희 대표는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사업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신 사업을 하면 시간은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회사가 돈이 있지 사장들은 대부분 돈이 없다. 그건 매출 1조인 회사 사장도 마찬가지라는 게 오 대표의 말이다. 물건값주고 인건비주고 각종 비용 지출하고 세금 내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게 사업이다. 대신 사장들은 누구의 간섭없이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게 기업가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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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는 일본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몬테밀라노 라이선스 사업을 하는 게 꿈이다. 패션을 넘어 잡화, 액세서리, 화장품 등 다양한 영역으로 라이선스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8월에는 올리브영에서 가장 인기있는 화장품전문기업 한솔생명과학과 몬테밀라노 뷰티라인 27종을 가지고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열릴 드럭스토어 쇼에 참가할 예정이다. 또 9월에는 쌈지와 콜라보로 연령구분 없이 누구나 들 수 있는 가방이 출시될 예정이다.한지를 겹겹이 만들어 가죽만큼 튼튼하지만 가벼운 가방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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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 대표는 자녀가 없다. 남편,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자녀가 없기 때문에 부부는 곧잘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우리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이 죽자>는 말을 하곤 한다. 그래서 꿈도 큰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행복하게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경희의 원포인트 

우유부단함은 미성숙의 상징일 수도 있다. 오서희 대표는 우유부단하거나 미지근한 게 없다. 모든 일에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 성공이든, 실패든, 위기에 대해서든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는 오 대표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명언제조기라고 부를 정도다. 첫 창업의 실패, 두번째 사업의 실패, 그리고 몬테밀라노를 창업한 이후에도 두 번이나 실패를 거쳤다. 네 번이나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K 패션 최초로 일본에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코스메틱, 잡화,  액세서리 등 다양한 분야로 라이선스 사업을 확장해 나가면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드는 원동력은 사업에 대한 진지함과 진정성을 통해 기업가로서 자신의 세계관을 확고하게 정립한 것이다. 오 대표는 <모든 사업은 무엇인가를 파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파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가의 여정에는 크고 작은 풍랑이 끊이지 않는다. 그 풍랑을 이기는 비결을 터득하고 싶다면 오 대표처럼 자신의 철학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경희. 부자비즈 대표 컨설턴트. 저서 < 내사업을 한다는 것><CEO의 탄생> <이경희 소장의 2020창업트렌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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