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의 행복한 창업] 지성의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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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014 등록일등록일: 2008-11-28본문
외모는 화무십일홍이지만, 지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한다.
운이 좋아 매일경제에서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의 부대행사로 열린 여성포럼에 참석했다. 예일대 부총장인 린다 로리머를 비롯 한국인으로 미국 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전신애 美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사진) 등을 비롯 2백여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계의 지성들이었다.
자기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 그들의 외모는 뒤지지는 않았지만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룩한 삶은 아름다운 향기였다. 진솔한 그들의 대화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 자리에서 강연을 들으면서 대담을 들으면서 나는 지성이란 뭘까를 생각해봤다.
1. 먼저 지성이란 생각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성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가운데 발견하고 반성하고 도전하고 꿈꾸고 창조한다. 그래서 지성의 바탕은 생각이다.
따라서 아무리 학력이 높아도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고 익숙한 습관에 따라 자동기계 처럼 사는 사람은 지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둘째 더 고차원적인 지성이란 철학이다. 존재이유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이다. 칸트의 네 가지 질문처럼 왜 무엇을 무엇 때문에 어떻게 무엇을 위해 등 끊임없이 존재론적 차원에서 던져야 한다. 그 것이 학식 지식과 지성의 구분이 아닐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정말 이 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가치가 있는 일인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한 번 더 고민하는 것 그 것이 철학이다.
그러면서 지성은 평생을 사는 동안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은 비로서 철학적 존재론적 정체성, 우주 역사상 유일무이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한편의 위대한 삶의 서사시를 만들어나간다.
그저 똑똑하다면, 박식하다면 그 것은 지성이 아닐 것이다. 최근 미국의 한 언론인은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이 지성을 무시한다며 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 기사를 보고 곰곰 생각해봤다.
많이 배운 사람이 냉혹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일 거라는 식의 방송 등에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과 달리 의외로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예의가 바른 사람도 적지않다 걸 느낄 때가 많다. 그 것은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지성일 것이다.
3. 셋째, 가장 고차원적인 지성은 박애일 것이다. 차별하지 않고 잘난척 하지 않고 겸손하며 친절하고 사랑하는 것, 측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 박애가 강할수록 우리는 최고의 지성에 가까워진다.
순박해도 모르는 것은 지성이 아니다.
지난 일요일 직원들과 산에 갔다. 일찍 도착해 식당에서 김밥을 먹는데 김밥의 밥알이 엉망이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할머니들이 김밥을 파는데서 순박함, 살아 펄펄뛰는 생명력은 느낄지 몰라도 고객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파는 음식이 어떠해야 할까에 대한 철학과 고객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랑하는 마음. 그 분들에게는 익숙한 김밥을 만들고 그 것이 잘 팔리면 좋은 것이다.
만일 거기에 지성이 곁들인다면 이익 못지않게 고객을 위하는 마음이 포함될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도 편가르기 역시 지성이 아니다.
듣자니 서울의 잘사는 동네에서는 아파트 모임이든 종교 모임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당신 무슨 학교 나왔냐,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는 몇 등을 하냐, 남편 직업이 뭐냐로 편을 가른다고 한다. 학교로, 재산으로, 지위로, 성적으로, 살고 있는 집의 가치로,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편가르기 하는 속물 근성에 대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소설들이 냉소를 보내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 현실에서는 그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모르고, 마치 벌거숭이 왕이 나신으로 거드름을 피우고 국민앞에 행진하듯이 행동한다면, 거기에는 지성이 전혀 없다고 할 만하다.
그런 뛰어난 조건들이 잘난 것임은 누구나 다 안다. 희소가치가 있는 만큼 잘난척 할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할 권리는 세상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공짜로 준 것도 없고 오히려 뛰어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고단한 노동의 대가를 더 많이 가져가 화려하게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누리는 부유함은 고단한 사람들의 노력- 누군가 땀흘려 번 돈으로 낸 임대료,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노동력의 일부 댓가, 누군가 상품을 사기 위해서 낸 돈 등 -을 가져간 것일 가능성이 크므로 더 겸손하게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들이 더 앞장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일 것이다. 그래야 그들에게 지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겨우 편가르고 잘난척이나 하려는 권력, 끼리 끼리 모여서 즐기는 고상한 취미의 부유함, 지위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가진 능력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할 때 존경받을 만한 지성이 탄생한다.
누구나 익숙한 사람, 비슷한 사람과 모이고 싶어한다. 그것이 편하다. 인지상정인 걸 안다. 하지만 끼리끼리 문화는 폐쇄적이다. 그 것은 박애와는 정반대다. 다른 것을 포용하는 것, 모두 우리라는 생각, 세상 모든 것에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는 것 그 것이 박애일 것이다.
평등하다는 생각, 다름을 인정하지만 차별하지 않는 것, 측은한 것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하는 사랑이 최고의 지성이고 그래서 최고의 사랑을 가진 신, 하느님은 최고의 지성일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참고 url :
[워싱턴 초대석] 미국 노동부 여성국의 전신애 국장(02/11/2008)
VOICE OF AMERICA
운이 좋아 매일경제에서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의 부대행사로 열린 여성포럼에 참석했다. 예일대 부총장인 린다 로리머를 비롯 한국인으로 미국 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전신애 美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사진) 등을 비롯 2백여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계의 지성들이었다.
자기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 그들의 외모는 뒤지지는 않았지만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룩한 삶은 아름다운 향기였다. 진솔한 그들의 대화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 자리에서 강연을 들으면서 대담을 들으면서 나는 지성이란 뭘까를 생각해봤다.
1. 먼저 지성이란 생각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성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가운데 발견하고 반성하고 도전하고 꿈꾸고 창조한다. 그래서 지성의 바탕은 생각이다.
따라서 아무리 학력이 높아도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고 익숙한 습관에 따라 자동기계 처럼 사는 사람은 지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둘째 더 고차원적인 지성이란 철학이다. 존재이유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이다. 칸트의 네 가지 질문처럼 왜 무엇을 무엇 때문에 어떻게 무엇을 위해 등 끊임없이 존재론적 차원에서 던져야 한다. 그 것이 학식 지식과 지성의 구분이 아닐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정말 이 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가치가 있는 일인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한 번 더 고민하는 것 그 것이 철학이다.
그러면서 지성은 평생을 사는 동안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은 비로서 철학적 존재론적 정체성, 우주 역사상 유일무이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한편의 위대한 삶의 서사시를 만들어나간다.
그저 똑똑하다면, 박식하다면 그 것은 지성이 아닐 것이다. 최근 미국의 한 언론인은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이 지성을 무시한다며 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 기사를 보고 곰곰 생각해봤다.
많이 배운 사람이 냉혹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일 거라는 식의 방송 등에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과 달리 의외로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예의가 바른 사람도 적지않다 걸 느낄 때가 많다. 그 것은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지성일 것이다.
3. 셋째, 가장 고차원적인 지성은 박애일 것이다. 차별하지 않고 잘난척 하지 않고 겸손하며 친절하고 사랑하는 것, 측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 박애가 강할수록 우리는 최고의 지성에 가까워진다.
순박해도 모르는 것은 지성이 아니다.
지난 일요일 직원들과 산에 갔다. 일찍 도착해 식당에서 김밥을 먹는데 김밥의 밥알이 엉망이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할머니들이 김밥을 파는데서 순박함, 살아 펄펄뛰는 생명력은 느낄지 몰라도 고객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파는 음식이 어떠해야 할까에 대한 철학과 고객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랑하는 마음. 그 분들에게는 익숙한 김밥을 만들고 그 것이 잘 팔리면 좋은 것이다.
만일 거기에 지성이 곁들인다면 이익 못지않게 고객을 위하는 마음이 포함될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도 편가르기 역시 지성이 아니다.
듣자니 서울의 잘사는 동네에서는 아파트 모임이든 종교 모임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당신 무슨 학교 나왔냐,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는 몇 등을 하냐, 남편 직업이 뭐냐로 편을 가른다고 한다. 학교로, 재산으로, 지위로, 성적으로, 살고 있는 집의 가치로,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편가르기 하는 속물 근성에 대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소설들이 냉소를 보내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 현실에서는 그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모르고, 마치 벌거숭이 왕이 나신으로 거드름을 피우고 국민앞에 행진하듯이 행동한다면, 거기에는 지성이 전혀 없다고 할 만하다.
그런 뛰어난 조건들이 잘난 것임은 누구나 다 안다. 희소가치가 있는 만큼 잘난척 할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할 권리는 세상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공짜로 준 것도 없고 오히려 뛰어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고단한 노동의 대가를 더 많이 가져가 화려하게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누리는 부유함은 고단한 사람들의 노력- 누군가 땀흘려 번 돈으로 낸 임대료,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노동력의 일부 댓가, 누군가 상품을 사기 위해서 낸 돈 등 -을 가져간 것일 가능성이 크므로 더 겸손하게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들이 더 앞장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일 것이다. 그래야 그들에게 지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겨우 편가르고 잘난척이나 하려는 권력, 끼리 끼리 모여서 즐기는 고상한 취미의 부유함, 지위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가진 능력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할 때 존경받을 만한 지성이 탄생한다.
누구나 익숙한 사람, 비슷한 사람과 모이고 싶어한다. 그것이 편하다. 인지상정인 걸 안다. 하지만 끼리끼리 문화는 폐쇄적이다. 그 것은 박애와는 정반대다. 다른 것을 포용하는 것, 모두 우리라는 생각, 세상 모든 것에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는 것 그 것이 박애일 것이다.
평등하다는 생각, 다름을 인정하지만 차별하지 않는 것, 측은한 것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하는 사랑이 최고의 지성이고 그래서 최고의 사랑을 가진 신, 하느님은 최고의 지성일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참고 url :
[워싱턴 초대석] 미국 노동부 여성국의 전신애 국장(02/1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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