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영업이야기] 기자에서 호프집 사장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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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3,566 등록일등록일: 2018-08-30본문
서울 가좌역 부근 모래내 시장 음식점 골목길. 한 때 이 일대는 명동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가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일대의 음식점들도 나이를 먹었고 인근 주민들도 고령화되었다.
가좌역 인근엔 서울 서북부 뉴타운 3총사 중 하나인 ‘가재울뉴타운’이 있다. 인근 구릉지에 있던 저층 주택과 상가들은 이미 재개발돼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들이 인근에 스카이라인을 바꿨지만 가좌역 대로변 근처 모래내 시장 부근은 그 지역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은 50,60대 시니어들이 주 고객이다. 모래내 시장은 갈비로 유명해 아직도 20년, 30년된 갈비집 냉면집들이 많다. 대부분 전통적인 업종들이 포진해 있다.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를 증명하듯이 비록 겉모습은 허름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나름대로 전통을 고수하는 숨은 맛집들도 적지않은 곳이 이 골목길이다.
◆20년 경력 기자에서 치킨집 사장으로
저녁이 되면 낡은 음식점들이 어두컴컴한 조명을 밝히던 이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은 점포가 하나 있다. 중앙언론사 출신 기자가 운영하는 치킨호프집 바보스이다.
전직 기자였던 김연배 사장(52세)은 비어있던 점포, 그것도 16평짜리 매장에서 하루 120만~17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창업 3개월 만에 거둔 성과다. 짧은 기간에 단골을 100명 이상 만들었다. 심지어 얼마전에는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2호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 바보스 서울 모래내가좌역점 외부 전경.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제공
그 뿐만 아니다. 한 자리에 오래 영업한 점포들이 많아 텃세가 만만치 않을 법도 한데 갈등은 커녕 골목길의 이웃 사장들과 어울려 오래된 친구처럼 정겹게 잘 지낸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낯선 이가 장사를 잘하면 이웃 점포들의 시기가 있을 법도 하련만 시기는 커녕 상권을 살렸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갑’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기자 외에도 주로 갑 입장에서 일하는 검사나 교수, 경찰 등은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여야하는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성공적인 사업 행진을 하고 있는 김연배 사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1.장사에 목숨 걸다.
김연배 사장이 현재 브랜드를 택한 이유는 사업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신선한 생맥주와 건강한 3무(無)치킨이라는 컨셉이 그 것이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소인 치킨호프는 크고 작은 유행은 있겠지만 사라지는 반짝 업종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3무란 보존제 발색제 발향제를 넣지 않은 닭을 의미하는데 덕분에 속은 촉촉하고 겉은 파삭해 식어도 치킨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3분만에 튀기는 수비드치킨도 판매하고 있다.
김 사장은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장사에 임했다. 초창기에는 회사 업무와 매장 일을 함께 하는 강행군으로 2달 만에 7kg이 빠지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생겼다. 주변 가게들은 저녁 6시가 돼야 영업을 시작했지만 모래내점은 이르면 오후 2시부터 문을 열었다. 미리 미리 준비해야 고객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밤에는 새벽 3~4시까지 문을 열었다. 하루 3~4시간밖에 못자는 생활이 계속 됐지만 몸이 피곤하고 손님이 없어도 영업시간 연장을 고수했다. 그 덕에 차츰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김사장의 점포를 보고 인근 점포들의 영업시작 시간도 덩달아 빨라져 상권이 이전보다 활기를 띠는 계기가 됐다.
2.군계일학 점포
사업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권 입지 조건. 하지만 목좋고 임대료 비싸다고 좋은 자리가 아니다. 내 상권내에서 경쟁점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곳이 유리하다. 바로 군계일학 전략이다.
바보스 모래내점은 밤이 되면 동네를 밝게 비추는 군계일학 같은 점포이다. 이 일대는 70~90년대 명동에 버금가는 상권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50대~60대 고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쇠한 상권이다. 모래내점이 입점한 곳도 한동안 주인없이 비어 있었다.
처음 들어갈 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유동인구도 거의 없고 골목이 어두워 죽은 상권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보스가 들어오고 골목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젊은 감각에 맞춰 인테리어를 구성했고 매장이 가로로 길어 지나갈 때 눈에 확 띈다.
어두컴컴하고 노후한 점포들 사이에 밝고 현대적인 바보스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살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이 골목으로 오지 않던 주변 아파트 사람들도 하나 둘 씩 이 지역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3. 이웃 사촌들과 잘 지내는 게 비결
장사를 하다보면 인근 점포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서로가 경쟁관계이기도 해서 해꼬지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연배 사장은 이 문제를 잘 풀었다.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지역 텃새가 만만치 않을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문제 소지를 없앴다. 기자로 활동할 때 수많은 사람들과 교제하던 인간관계 기술을 십분 발휘했다. 매장 오픈 전부터 주변 상인들의 업소를 찾아 밥이나 술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를 만들었다. 지금도 영업이 끝나면 다함께 회식도 하며 이웃사촌으로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김 사장은 세상살이에서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자 생활할 때부터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관계가 발전해 요즘은 영업 마감 후 이웃 사장들과 한 밤중에 어울리기도 한다. 이번 여름에는 20명이 영업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을왕리를 다녀왔다. 장사에 지쳐 모두 몸은 피곤했지만, 늘 매장에 갇혀있다보면 동등한 사이에서 나누는 교제가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몸은 피곤해도 함께 모여서 친분을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다. 서로 친해지니 경쟁자라기 보다는 함께 상권을 키우는 동지가 되었다.
4. 객단가를 올리는 상품 노하우
▲ 바보스 서울 모래내가좌역점 내부. 김연배 사장은 매출증대를 위해 자체 세트 메뉴를 개발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제공
음식점 장사라는 게 계산을 해보면 빤하다. 원재료 가격, 인건비, 임대료 빼면 어느 업종이든지 영업이익은 비슷하다. 결론은 매출을 올려야 한다. 한정된 고객으로 매출을 올리려면 객단가를 높여야 했다.
이를 위해 김 사장이 직접 세트 메뉴를 개발했다. 치킨 한 마리 + 샐러드 + 포테이토로 구성된 메뉴로 맥주와 함께 시키면 테이블 당 4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세트 메뉴를 구성했다. 본사 소스만 사용하지 않고 고객 입맛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줘 제공한다.
16평 매장이라 테이블 8개로 5회전 하는데 매장이 크지 않다보니 단체 손님은 흘려보내게 된다. 더군다나 올해 같은 폭염에는 바깥에 테이블을 깔 수도 없다. 그렇기에 테이블 당 매출이 높아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기존 바보스 매장에는 없는 세트 메뉴를 구성해 적은 테이블로도 높은 효율을 내고 있다.
5. 직원 선발 노하우
혼자서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만큼 성실한 우군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김연배 사장은 자기만의 노하우로 직원을 채용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 설거지를 시켜보고 그 폼새에서 사람됨과 성실함을 파악한다.
가장 힘든 건 자유 시간이 없다는 것. 시장이 너무 치열하고 힘들기 때문에 안일한 마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전략은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점포를 물려주자는 것이다.
매출이 검증된 점포를 물려주면 그 점포를 이어받은 사람은 단골이 확보된 가운데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다. 검증된 점포를 물려주고 본인은 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6. 임대료 고민 해결
번화가는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고정비 지출이 많은 곳보다 골목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의외로 좋은 상권이 많다.
김사장은 현재 점포를 매우 좋은 조건으로 얻었다. 새로 오픈한 남양주 다산신도시 매장도 마찬가지이다. 자영업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임대료이다. 그런데 경기가 나빠서 의외로 공실도 많다.
바로 그런 점포를 매출액의 일정액을 임대료로 내는 수수료 매장으로 얻는 것이 김연배 사장의 전략 중에 하나이다. 건물주와 관계를 잘 풀어내고 사명감 있게 영업에 임하면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서로 상생이 가능하다.
7. 상권 확장하기
김연배 사장이 문을 연 후 이 음식점 골목길의 상권이 확장되고 있다. 이 골목을 잘 찾지 않던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이 골목을 다시 찾고 있다. 또 블로그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멀리 서대문에서 20~30대들이 택시를 타고 매장을 찾아오기도 한다.
점포가 하나 늘면 고객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생긴 것이다. 오히려 상권이 확장되어 인근 점포들까지 혜택을 얻고 있다.
8. 단골 만들기
오픈 3개월만에 김연배 사장이 확보한 단골 리스트는 100명이 넘는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잘 사귀는 장점을 살린 결과이다. 시니어 고객들은 다른 게 없다.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단박에 형 동생이 된다. 아날로그 정취가 물씬한 의리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기억하고 말을 걸고 관심을 보여주면서 정이 깊어져 단골이 되는 것, 기자 생활을 할 때나 골목길 음식점을 할 때나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이렇게 가까워진 단골들은 과일을 사들고 가다가 매장에 들러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9. 음식점은 정성이다
김연배 사장의 또다른 성공 비결은 정성이다. 기자 출신이라 맛집도 많이 가본 그다. 고향이 전라도인 그의 어머니는 손맛이 좋았다. 남자지만 어머니 손맛을 물려받기도 했다.
감자튀김이나 고구마 떡 등을 미리 준비해서 내가는 게 보통이지만, 김사장은 그렇게 하지않는다. 무조건 손님이 주문한 후에 조리한다. 가장 맛있는 온도에 음식을 내가기 때문에 가맹본사에서 똑같은 원재료를 공급받아도 정성을 들여서 더 맛있게 만든다.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귀찮은 일을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남양주에 낸 2호점은 모래내가좌역점과는 컨셉이 다르다. 그 곳은 전형적인 학원가이다. 그래서 매장도 카페 컨셉으로 연출했다. 다행히 젊은 엄마들에게 반응이 좋아서 매출도 양호하다. 학원가 한 복판에서 엄마들의 사랑방이 되겠다는 게 남양주 매장의 목표이다.
2호점은 김연배 사장의 아내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 모래내 시장 골목길에서 김연배 사장은 나이 든 상권의 시니어 고객들과 만나면서 번화한 신도시나 도심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따뜻한 정을 흠뻑 느끼고 있다.
"장사 만만치 않다, 목숨 걸고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비결은 서로 경쟁관계이면서 음식까지 나눠먹는, 골목길의 좋은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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