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명강의로 유명한 서울대 최인철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용중에 유럽지역 국가별 장기기증 동의률을 조사한 도표가 소개됐는데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등은 10~20%대에 머물렀는데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랑스 스웨덴 등은 99% 이상으로 매우 높았다. 동의율이 낮은 국가는 박애정신이 없는 나라이고 동의율이 높은 나라는 그 반대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전자는 장기 기증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의사를 밝히는 사회적 구조이고, 후자는 태어나면서 전국민이 장기 기증에 동의하는 걸로 되어 있고 기증하기 싫은 사람만 의사를 표명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단순한 사례를 예로 들며 최교수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전에 A 사장을 만났다. 전직원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열심히 하는 회사였다. 본인 사유재산까지 처분해가면서 직원들의 급여를 미루지 않았고, 전직원들도 그런 사장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열심히 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미팅을 끝낸 후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보기에 그 회사는 앞으로도 힘들 것같았다. 사업 모델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재정 상황이 나쁜 게 아니라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해도 재정 상황이 나쁠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너가 사재를 처분해 급여를 주면 직원들이 고마워하기는 한다. 하지만 오너 자신만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지 급여를 받기 위해 입사한 직원들은 사재를 처분하든 빚을 내든 급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사장 생각만큼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 것이 직원의 사고 구조다. 모름지기 경영자는 내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직원의 사고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장은 우리 회사가 이직율이 낮다고 자랑스러워할수 있고 낮은 이직율은 사업 성공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또 열정이 있는 사장은 회사가 잘되면 직원들에게 어떻게 해주겠다고 미래의 먼 비젼을 많이 강조해준다. 하지만 작은 기업 직원들은 사장이 생각하는 것만큼 야망이나 꿈이 크지 않다. 사장은 회사가 잘되면 여러분에게 이런거 해줄게, 저런 거 해줄게라며 비젼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지만 상당수의 직원들은 일이 아주 힘들지 않고, 월급이 만족할만큼만 나오면 큰 욕심 내지 않고 직장을 다닌다. 그런데 일이 힘들거나 월급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월급이 불규칙적이면 이직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직원과의 관계에서도 구조를 봐야지 열심히 하고 안하고를 따지는 것은 기대만큼 성과를 높이는 방법은 아니다.
수많은 중소사업자들이 너무나 열심히 하지만 이길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입지가 너무 나빠 고객을 유치하기 어려운 경우, 경쟁사에 비해서 브랜드 지명도가 너무 떨어지는 경우, 시설이 낙후돼 인근 젊은 고객층와 맞지 않는 경우, 마케팅은 열심히 하지만 맛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 등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본적인 구조가 잘못돼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하다못해 작은 매장의 정리 정돈도 구조와 연관이 있다. 점포 이면에 빈공간이 없는 경우는 의탁자, 선반 등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모두 동원해서 인테리어를 할때 미리 수납장을 잘 만들어야 매장이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어질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청결을 강조해봤자 한계가 있다. 늘 정리정돈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경우 경쟁력없는 사업모델을 만들어놓고 사업이 진척이 안된다고 푸념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가맹점주들의 반응이 나빠 창업자들이 문의할 경우 계약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인데도 기존 가맹점 관리나 매출 증대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영업에만 혈안이 되면 가맹점 모집은 계속 좌초될 수밖에없다.
어떤 사업자들은 너무 이익이 안나는 구조라서 열심히 하고도 돈을 못버는 경우가 있다. 판매량이 한정돼 있는 상태에서 헐값에 팔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절대로 넉넉해 지지 않는 것이다.
구조나 프레임은 왜 열심히 하고도 돈을 벌지 못하는가, 왜 착한 사람이 실패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풀어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B 사장은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객들이 말을 하면 늘 양보하고 고객에게 손해본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싸게 싸게만 값을 부른다.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하는 B 사장이지만, 그저 어제 해온 대로 열심히만 할뿐 우리 상품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익을 내기 위해 가격정책을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 그 정도 가격을 책정할 경우 서비스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밤 12시가 돼서야 퇴근하지만, 그의 회사 재정 상황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국내 유명 HR컨설팅사의 한 컨설턴트는 조직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간단하다. 급여를 지급하는 직원 평가 기준을 바꾸면 된다’라고 말한다. 그 것이 구조다. C사의 사장은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평가 기준에 의해 원리원칙대로 직원들을 평가한다. D사의 고객은 늘 직원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사정하고, 큰소리도 내지만 직원들은 사장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전직원이 명확히 인지하는 그리고 회사가 내세우는 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그나마도있는 평가 기준 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은 스스로가 월급을 받는 만큼 성과를 내고 있는지 어떤지 조차도 모르고 목표의식도 부족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급여나 근무 조건에 아무 변화가 없다보니 그저 회의시간에 사장의 잔소리만 참으면 된다는 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것이 구조의 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력과 열정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는 잘못된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제대로된 프레임을 갖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나의 욕구 보다는 시장과 고객의 욕구를 바라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업자들도 내가 하고 싶은 업종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면 잘못된 구조로 들어가기 십상이다. 내 조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시장과 고객에게 경쟁력을 갖고 어필할 수 있는 업종을 찾아야 한다.
죽전문점으로서 9백개가 넘는 가맹점을 거느린 본죽의 경우 프랜차이즈업계의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죽의 성공뒤에는 늘 가맹점주에 대한 철학과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으로 경영을 하는 김철호 사장의 경영능력이 자리하고 있지만 본죽이라는 사업 모델 자체가 기가 막히게 창업자들에게 어필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창업시장에는 1억원대 안팎의 투자로 예쁘고 깔끔하고 손쉬운 업종을 원하는 수많은 창업 수요가 존재하고 있는데 본죽의 사업모델은 그 욕구와 딱 맞아떨졌던 것이다. 게다가 웰빙 바람, 가벼운 식사 트랜드, 일반 분식집보다 약간 높은 가격대를 유지해 수익성이 좋은 점 등이 기막히게 결합된 것이다.
본죽의 사업모델이 가진 강력한 구조는 죽전문점으로 1천개 가까운 매장을 개설하는 믿기 어려운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아마 본죽의 인테리어가 덜깔끔했거나 장사가 좀 안되는 매장이 나왔다고 해서 가격파괴를 했다면 지금처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 흐름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또다른 요소다.
거의 대부분의 브랜드가 쓰러졌지만 분식업의 대표브랜드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김가네의 성공은 IMF 직후 소형 매장 창업을 원하는 창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강력한 외적 구조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사업 초기 프랜차이즈나 상권을 잘 몰랐던 김용만 회장은 맥도널드의 입지가 좋다고 판단, 맥도널드 옆에만 점포를 내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는데 이 것은 A급 입지라는 강력한 구조를 만들어 김가네를 롱런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 됐다.
하지만 구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인드 구조다.
잘못된 사고의 구조는 실패의 절친한 친구이고, 올바른 사고 구조는 성공을 이루는 마법의 지팡이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 소규모 사업가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져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일 수록 절망하는 사람이 성공한 적은 역사를 통털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불황이 깊어도 결국 희망을 가진 사람이 뭔가를 이뤄냈다. IMF는 수많은 사람을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었지만 그들중 할 수 있다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IMF를 계기로 생애최고의 성공을 맛보기도 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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