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물리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신학과 공상과학소설이 뒤얽힌 이상한 나라 같다. 특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은 마법의 함수인 것처럼 보인다. 대학 시절 유명한 교수님이 있었는데, 지금도 첫 강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분은 칠판에 크게 시간, 공간’이라고 쓰시고 모든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서두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딸아이에게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왜 그렇게 느끼느냐’고 했더니 아침이었는데 밤이 되고, 자신의 키가 계속 자라고, 기다리면 음식이 보글보글 끓고, 그러니 시간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대답한다. 돈 버느라 바쁜 사업가들에게 시간을 어떻게 느끼나’라고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할까. 누군가가 나에게 컨설턴트로서 시간을 어떻게 느끼나’라고 묻는다면 나는 성취’를 말하고 싶다.
자신의 목표와 시간 관리법을 돌아보라
경영자는 성과로 직원들을 평가한다. 창업자도 성과로 성공과 실패를 평가 받는다. 그런데 성과는 곧 결과다.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다.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딸아이가 대답했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면 성과를 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성과를 내는 직원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면서 일을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들은 목표는 삼천포에 떼어 놓고 자기만족에 빠진 시간을 보낸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목표와 무관한 일에 시간을 한없이 보내거나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서 열매를 거둘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마치 밭에 씨를 뿌려 놓고 추수하지 않는 격이다. 성과를 내는 사람은 씨를 뿌리면 풍성한 열매를 얻고 추수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명확하다. 그래서 종자 준비에서부터 파종 육묘 제초 물 관리 수확까지 모든 것을 섬세하게 의지를 갖고 관리한다.
창업이라는 과정은 참으로 막막하다. 하지만 목표는 과정을 견디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시간을 지배하게 만든다.
신은 씨앗을 뿌리면 시간이 흘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자연을 설계했다. 하지만 실제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 특히 보이지 않는 인생살이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의 목표와 의지로 열매 맺는다.
미당추어탕 전정욱 사장의 사례를 보자. 직장인이던 그는 1998년 남원골 추어탕을 창업했다. 그전에 약 1년 가량 주말 시간을 이용해 가족들로부터 음식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후 그는 직영점을 여러 개로 늘렸으며 노하우 전수 요청이 쇄도하자 가맹점을 개설해 줬다. 2003년 제조 공장을 설립했으며 2005년 국제 인증 규격의 최신 설비를 도입해 공장을 업그레이드했다.
같은 해 레토르트 제품 생산 및 유통을 시작해 현재 대형 리조트 센터, 국내 유명 유기농 식품점, 홈쇼핑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2006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어 미국을 비롯해 뉴질랜드 등에도 추어탕 곰탕 등 각종 국류를 수출하고 있다. 같은 해에 울진군 및 장흥군과 제품 개발 협약을 체결해 국내산 재료만을 이용한 전통 탕류의 제품화에 성공했다. 그런 제품력을 바탕으로 고급 레토르트 탕류 제조 및 유통은 물론 프랜차이즈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1998년부터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 사장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그냥 한 회사의 연혁을 나열한 것이려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1998년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창업 대열에 섰다. 그 많은 창업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어떤 역사를 만들었는가.
모든 창업자들은 매년 목표를 세운다. 아니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5년 후 10년 후의 그림도 그린다. 대부분 창업 초기에는 한 달, 두 달, 석 달짜리 그림을 그린다. 더 나아가면 1년짜리 그림 정도를 그린다. 그런데 경영에 익숙해지고 노련해지면 5년, 10년짜리 그림을 그리게 된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월간 계획이니 연간 계획이니 중장기 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른다.
전 사장처럼 10년 만에 인생을 바꾼 사람도 있고, 10년 동안 계속 후퇴하는 사람도 있다. 10년 동안 제자리걸음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창업자의 성공과 실패는 성과를 내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의 목표 및 시간 관리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역사를 만들고 싶은가
놀부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그 회사의 지나온 발자취가 정성스럽게 정리돼 있다. 1987년을 클릭하면 그해 3월 17㎡(5평)짜리 가게에서 230만 원의 자본금으로 창업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점심시간마다, 혹은 저녁 식사 시간마다 우리는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이상 음식점을 운영해 온 수많은 사장들을 만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꿈과 어떤 그림이 오늘날 수많은 음식점 사장들 속에서 김순진 회장을 한국의 대표 음식점 경영자로 우뚝 세웠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도대체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요리한 걸까. 매년 어떤 목표를 세우고 열매를 거뒀을까.
비단 김순진 회장뿐이겠는가. 김가네의 김용만 사장이 그렇고, BBQ의 윤홍근 회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터널을 지나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성공한 수많은 이들은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도전을 맞고 있다. 새로운 1년, 새로운 5년, 새로운 10년에 대한 도전이다. 과거의 성공한 경험은 미래의 1년, 5년, 10년이 성공적일 가능성과 확률을 높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100%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양자택일해야만 할 선택이 있을 때마다 우주가 한 쌍의 병행우주로 갈라진다는 병행우주론이나 스티븐 호킹의 호두 껍데기 속의 우주’에 나오는 우주는 여러 개의 역사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혼란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우주가 여러 개의 역사를 갖는다니.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김순진 회장과 출발점이 같았을지도 모르는 전국의 음식점 사장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매우 다양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함께 고등학교, 대학교를 입학했지만 졸업 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우리의 진로와 삶의 방향, 모습이 서로 많이 달라져 있듯이 말이다.
성공을 원한다면 창업자들은 지금 결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나갈 우주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어떤 역사를 가진 우주를 만들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대안의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인물의 한 사람인 디팩 초프라는 말한다. 당신이 만나는 세상은 당신이 그려왔던 바로 그 세상이다. 당신이 그리지 않은 세상을 당신은 만날 수 없다.’
- 한경비즈니스 창업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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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www.changupok.com)
부산 출생.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세종대학교 마케팅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으로 프랜차이즈 및 창업, 유통 및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동.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자문위원.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및 여성부 창업멘토 등 역임. 삼성, 현대, 쌍용 등 각종 기업과 연세대, 안양대, 한양대, 성신여대, 동국대 등에서 창업강좌 및 프로그램 운영. 각종 방송과 언론 등에서 창업 칼럼니스트 및 패널로 활동. 저서로 탈샐러리맨 유망사업정보’,맛있는 요리’,돈되는 창업’,실버정책과 창업’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