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생겼어요. 저 정말 갑으로 20년 직장 생활 했잖아요. 을로 한 번도 안살아봐서 정말 두려웠어요. 누군가에게 영업하고 사정해야 한다는게. 그래서 처음에 영업할 때는 대사까지 준비해서 외웠어요. 그런데 이제 자신있어요. 영업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고, 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 거래와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J는 일 중독자다. 밧데리가 방전된 줄도 모르고 죽기 살기로 일할 정도로.
시골에 가서 3일을 쉬면 몸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엄마에게 회사로 가겠다고 말했다. 회사에 갔더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괜찮니?’
나 괜찮아. 회사 나오면 그냥 살아나잖아. 아픈데 하나도 없어.’
그러던 J가 창업을 했다.
주차장에서 J를 마주쳤을때 J는 소장님도 조심해. 나 얼마전에 병원에 실려갔어. 소장님도 만성 피로야. 기가 빠졌어.’라고 말했다. 일중독자 J에게도 창업 첫해는 한 겨울 바람보다 더 모질었나보다. ( 참고로 J는 나랑 동갑내기다)
어느 날인가 토요일 밤 12시가 다될때까지 일하고 사무실 문을 잠그는데 J에게 전화가 왔다. 퇴근하다 보니 주차장에 소장님 차가 있더라. 아직도 일하고 계세요?’라고.
어느 날 우리는 남들 다 쉬는 휴일에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서로를 쳐다보며 으이그 못말려. 몸좀 챙겨’라고 서로를 걱정해줬다.
그런데 나는 국경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쉬는데 J는 다음날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름 휴가갈 시간이 없어 광복절 끼워 시골이라도 갔다오려고 가족과 내려가다 갑자기 J 생각이 났다.
몇 일전 몸이 많이 아팠던 터라 괜히 우울해지고 J가 그리웠다.
전화를 했더니 안 받는다. 우리 언제 얼굴 봐요. 식사라도 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소장님 저 내일 이사가요.’답장이 왔다
서로를 잘 아는 우리는 그렇게 한 건물에서 따뜻하게, 차분하게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J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단다. 마음이 아려왔다. 너무 미안했다.
월요일 회사에 나와 마음속으로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전화가 온다.
소장님 저 마지막 짐 빼는데..’라고 한다
얼른 우리 식사나 해요.’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자매처럼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예의 서로 서로 건강을 챙겨주면서.
우리 따뜻한 차 한잔도 마음 편하게 못마셨어,’라고 했더니 아냐 우리 새벽에 커피 마셨잖아.’라고 한다.
맞다. 두 달전인가 꼭두 새벽에 출근을 하다가 J를 마주쳤다.
그날 J는 큰 이벤트가 있어 일찍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졸지에 서로 반가워하며 모닝 커피를 마셨다.
식사를 하며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이경희 : 나, 왜 이렇게 사나 몰라. 자기 이 건물로 왔는데 정말 다정한 시간도 한 번 못가져보고.
J : 괜찮아요. 나도 일하느라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이경희 : 근데 왜 창업 하게 됐어요?
J: 글쎄요. 조직에 있다보니 경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뜻대로 해보고 싶다는. 그런데 기회가 왔어요. 누가 전문 경영인을 해보라고. 그래서 시도를 했는데 그 분이 투자를 잘 못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창업에 나서게 됐어요.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J는 지난 1년 6개월 남짓한 기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하다.
너무 너무 힘들었다고.
이경희 : 창업 해보니 어때요 ?
J :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 정말 갑으로 20년 직장 생활 했잖아요. 을로 한 번도 안살아봐서 정말 두려웠어요. 누군가에게 영업하고 사정해야 한다는게. 그래서 처음에 영업할때는 대사까지 준비해서 외웠어요. 그런데 이제 자신있어요. 영업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고, 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 거래와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누구 앞에서도 편하게 대화를 하고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그럴 수 있게 됐어요. 그게 뭐랄까 세상 사는데 자신감이 됐어요.
이경희 : 제일 힘든게 뭐였죠?
J : 착한 병
이경희 : 아...
J : 저 정말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해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제가 못견디고,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저를 망가뜨려요. 주변에서 너 지금 사는 것 반만 해도 된다고 해도 그게 안돼요.
이경희 : 20년간 갑생활 하다가 1년 6개월 을생활 하기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죠. 그리고 결국 자신감을 얻었다고. 저는 93년 회사 차린 이후로 계속 을이었어요. 하하 말안해도 알겠죠. 돈받고 제대로 못해준다는 생각 때문에 고객들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져요.
J는 언젠가 어느 대기업의 일을 아웃소싱 받아서 했다.
내가 보기에도 계약한 금액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해준 것같았다.
그런데 그 기업은 돈을 안주고 금액을 깎다가 결국 일정 금액을 깎은 후 지불 기일이 한참 지나서야 돈을 지불했다. 광고에서 나오는 그 기업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구와 달리 J의 창업 초창기는 그 기업과의 거래로 인해 마음고생 몸고생 영혼까지 고생할 정도로 시달림을 받았다.
J는 광고 슬로건과 다른 그 기업의 행태에 분노를 했고 옆에서 보는 나 역시 me, too’ 였다. 아무리 광고는 광고일 뿐이라지만, 그런 기업 문화와 마인드를 가진 기업이 그런 멋지고 아름다운 척하는 광고를 하는 건 참으로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J는 이제 1인 기업가를 꿈꾼다.
1년 6개월간의 시행 착오를 접고,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분야에서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래서 조직도 조금 축소시켰다.
그리고 윈윈을 위해 사무실도 합동 사무실로 옮기는 것이다.
J는 일중독자인 자신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너무 내버려뒀다는데 대해 매우 마음 아파한다. 얼마전 어떤 사건 때문에 자신의 아이 마음을 너무 몰랐다고 말하며 자책했다.
나는 내가 모두 겪었기 때문에 2천프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전 모 공기관의 인큐베이팅 센터 여성사업가 입주 대상자 선정을 위해 사업계획서 심사를 했다. 사업계획이 다 그러려니 하고 별 기대도 안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 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자기 분야의 탄탄한 경력을 가지고 지식 기반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특히 일부 사업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지식기반 사업이었다.
사업성공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자기 분야의 업무 경험을 혁신적인 창업아이디어로 연결시킨 그네들의 사업 계획서를 보면서 한편 기쁘고 다른 한편 안타까웠다 .
모두들 여성 사업가였는데, 그네들은 J나 나 처럼 육아와 가정이라는 이중고를 지고 창업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대부분 35세에서 42세 사이의 사회 경험이 탄탄하고 학력이나 커리어도 화려한 똑똑한 여성들이었다.
나는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그녀들의 사업계획서를 심사하면서 그런 그녀들의 도전에 힘찬 박수를 마음으로부터 쳐줬다. 심사를 통과하든 아니든 그네들 모두를 응원하고 힘이 닿으면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나나 J가 겪어왔듯이 그녀들이 부딪힐 앞으로의 힘든 과정들이 연상돼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네들처럼 똑똑한 여성들이 나서줘야 할 시점이다.
그네들이 성공해서 침체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기반 서비스업은 초보자가 하기 힘들다. 그네들처럼 한창 일할 나이의 노련한 경력자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그래서 나는 심사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창업후 몇 번이나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던 J를 보면서 오늘 마음속으로 J에게 파이팅을 외쳐줬던 것처럼.
20080818. 이경희 (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
부산 출생.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세종대학교 마케팅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으로 프랜차이즈 및 창업, 유통 및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동.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자문위원. 세종사이버대 겸임교수.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및 여성부 창업멘토 등 역임. 삼성, 현대, 쌍용 등 각종 기업과 연세대, 안양대, 한양대, 성신여대, 동국대 등에서 창업강좌 및 프로그램 운영. 각종 방송과 언론 등에서 창업 칼럼니스트 및 패널로 활동. 저서로 탈샐러리맨 유망사업정보’,맛있는 요리’,돈되는 창업’,실버정책과 창업’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