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성공탐구] 탈샐러리맨 전략으로 가정간편식 사업서 성공한 ‘국선생’ 최성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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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3,358 등록일등록일: 2017-08-11본문
‘기업 하나 탄생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10년은 늙었다’라고 말하는 가정간편식과 반찬 프랜차이즈 ‘국선생’의 최성식 대표(51세). ‘90세까지 당당하게 세금 내면서 살고 싶어서 창업했다’고 말하는 최 대표는 4050세대들이 꿈꿀만한 이상적인 창업 성공 사례다.
직장 커리어를 살린 창업이라는 점도 그렇고 직장동료였던 후배가 회사의 주요 인재로 합류한 점, 창업 후 5년여 만에 달성한 성과, 업종 선정 배경을 비롯해 창업에서 성장까지의 모든 스토리가 듣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최 대표가 도전한 업종은 1인가구 증가 시대에 가장 유망한 분야인 가정간편식(HMR)사업이다. 5년 만에 제조공장을 가진 벤처기업으로, 2016년 기준 매출액 125억원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아보자.
◆ 커리어 살린 분야에 도전, 5년 만에 안정궤도 진입
2017년 7월 기준 국선생 가맹점 수는 81개다. 전체 점포의 평균 매출액은 2200만원 선이다. 상류층 거주지에 있는 한 가맹점은 약 33㎡(10평) 남짓한 매장에서 월 5000만원대 매출을 올린다. 가맹본사가 운영하는 직영매장들도 대부분 월 4000만원대 안팎으로 매출액이 높은 편이다.
전 매장이 이렇게 매출이 높은 건 아니지만 가장 표준적으로 운영되는 직영점 매출이 높다는 데서 사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하는 최 대표. 더욱 고무적인 것은 초기 개설한 매장보다 최근에 개설한 매장들의 평균 매출액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착오를 주리고 브랜드 파워가 힘을 발휘한다는 증거다.
▲ 최성식 국선생 대표. /국선생 제공
가정간편식 전문점인 ‘국선생’이 일반 반찬전문점에 비해 높은 매출과 수익성을 자랑하는 배경에는 최 대표의 전문성이 녹아있다.
최 대표는 원래 호텔의 셰프였다. 젊은 시절 창업에 대한 욕구가 커 잘나가던 호텔을 박차고 나와서 음식점을 창업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음식을 잘하는 것과 창업해서 경영을 잘하는 것은 별개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두 번째로 들어간 직장이 이마트다. 이마트에서 그는 상품을 개발하고 구매하는 바이어였다. 가장 좋은 품질을 저렴한 가격에 찾아내야 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식품산업과 구매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호텔 셰프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식재료 및 식품 제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건 아니다. 최 대표의 경우 셰프라는 전문직업의 특성과 구매 노하우가 결합하면서 미래의 가정간편식 사업 진출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창업에 대한 꿈은 직장 일에 흥미가 줄어들면서부터 싹텄다. 어느 날부터 아침 출근길에 가슴이 뛰지 않았다. 회사가 안정궤도에 오르면서 도전할 일이 줄어든 것. 직장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샐러리맨 마인드로 일해본 적이 없던 그는 조직이 안정되어 도전하고 혁신할 일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자 지금이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할 때라고 판단했다.
◆ 배수진 치고 모든 걸 던져서 도전, 배신당했을 때 가장 아파
창업은 도전을 좋아했던 그의 바람을 배신하지 않았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산전수전 육해공군전까지 다 겪게 했다.
직장 다니면서 경영전문대학원의 프랜차이즈 MBA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프랜차이즈 분야의 사업자들을 만나면서 가맹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마트에 근무하면서 식품 산업 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는 싱글족 증가와 식생활 변화로 가정간편식과 반찬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판단, 도전하기로 했다. 셰프 출신답게 레시피는 본인이 만들고 구매부서 근무 경험을 살리면 가장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고기나 야채 등 어떤 식재료의 품질이 좋은 건지, 어디서 구매하는 게 가격대비 최상품인지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바로 거기에 최 대표의 경쟁력이 발휘됐다.
서울 이수동 재래시장통에 첫 직영점포를 냈다. 장사가 아주 잘 됐다. 약 16㎡(5평) 남짓한 매장의 하루 평균 매출은 130만~140만원대였다. 잘 되는 날은 200만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 2013년 1월에는 의왕점, 4월에는 신천점을 오픈하고, 2013년 5월에 법인을 설립했다. 지인들에게 그가 창업한 매장들이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가맹점 개설 요청이 쇄도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아픔을 겪었다. 하나는 지인의 배신이다. 장사가 잘되자 욕심이 난 지인이 최 사장을 배신하고 상호를 바꿔서 다른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출사표를 던졌으니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도전을 계속했다. 애초에 프랜차이즈를 목표로 했으므로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2013년 3월부터 공장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대 공장을 사용했으나 2016년 9월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지금은 자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전 재산을 투자한 것이었다. 퇴직금을 모두 사업에 투자한 마당에 집까지 팔아서 전세로 옮기고 공장을 가동하면서 아내의 걱정이 커졌다. 가족들은 걱정하면서도 최 대표의 도전을 응원해줬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전 가족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믿고 이해해 준 가족의 응원이 지금의 성과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됐다.
▲ 국선생 양천구청점 매장 외부. /국선생 제공
◆ 시장 변화 빨라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준비
공장을 운영하기 전 모델이 1.0 모델이고 공장을 가동하는 지금 모델이 2.0 모델이다. 1.0 모델은 매장에서 모든 음식을 만들어야 했을 때의 모델이다. 2.0 모델은 반제품을 공급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가맹점주들의 일손을 줄여 조리 업무를 간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판매 품목도 냉동 편의식과 상온상품으로 확대했다. 앞으로 3.0, 4.0 모델까지 준비하고 있다. 관련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므로 국 반찬 사업의 미래를 꿰뚫어 보고 미래 시장 변화까지 감안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가맹본부가 전처리 또는 반조리 상태의 식품을 벌크로 가맹점에 공급하면 점포에서는 약간의 조리를 가미해서 개별 포장 후 판매한다. 판매 품목은 150여 가지가 넘는다. 국·탕류와 육류요리의 종류가 많을 뿐 아니라 냉동만두 등 냉동 간편식이나 상온 상품까지 다양하다. 계절별 매출 증대를 위해 시즌 제품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자라나는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들이 주 고객층이다 보니 최 대표는 창업할 때 만들었던 경영이념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국선생의 사업 원칙은 ‘좋은 재료’ ‘좋은 기술’ ‘좋은 마음’이다. ‘좋은 재료’란 관리된 재료다. 식재료를 생각하면 항생제 장어, 농약 배추같이 부정적인 선입관이 먼저 떠오르는데 국선생은 관리를 통해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한우를 직접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최상품 소고기는 지방간이 생길 정도로 비만한 소다. 이런 소고기는 먹는 사람들 건강에 좋지 않고 특히 국거리용으로는 가치가 덜하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좋고 최고의 맛을 내는 소를 위해서 친환경으로 소를 직접 키우고 있다. 닭고기 돼지고기도 무항생제를 사용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 ‘신념과 철학’으로 원칙 지키는 게 생존비결
‘좋은 재료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만 신념과 철학을 갖고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고 말하는 최 대표는 ‘뭐든지 쉽게 쉽게 하려고 하니까 원하는 걸 할 수 없다. 노력해서 방법을 찾아내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지자체와 제휴해 친환경적인 좋은 재료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낼 계획이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많이 귀농해 유럽처럼 부가가치가 있는 친환경 농업에 종사하며 ‘국선생’의 파트나가 되기를 바란다.
좋은 재료, 좋은 기술, 좋은 마음 이 세 가지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은 출시하지 않는다는 게 국선생의 사업 방침이고 안정된 매출과 소비자 신뢰는 바로 이 원칙에서 나온다.
▲ 국선생의 사업 원칙은 ‘좋은 재료’ ‘좋은 기술’ ‘좋은 마음’이다. /국선생 제공
40대에 반퇴한 대기업 출신인 만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예비 창업자들에게도 해줄 말이 많지만 업종 선정을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불나방 창업을 하지 말고 적어도 5년 10년 장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서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면한 과제는 가맹본사를 믿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가맹점주들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가정간편식과 반찬전문점은 부지런하고 상품 지식이 풍부하고 소비자들에게 설명을 잘해주는 가맹점주들일수록 매출이 높다. 또 서민층 거주지보다는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상권이 매출이 높다. 가맹본부는 직영점의 성공 노하우를 가맹점주들에게 전달하고 대등한 사업파트너로서 상생할 방안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다.
최 대표의 중장기적인 꿈은 푸드테크를 활용한 한식 수출이다. 해외의 한식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현지에서 조달한 원재료 맛이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과 달라서 우리의 맛을 제대로 알릴 수 없는 것을 늘 안타까워 해왔다. 한국에 들어오는 수많은 수입식품처럼 제대로 된 한식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국선생의 장기적인 목표다.
◆ 최성식 국선생 대표의 창업 성공 비결
1. 업종선정을 잘했다. 자신 있는 분야,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분야를 선택했다. 식문화와 인구 구조 변화로 반찬 산업은 향후 가장 전망 있는 분야다. 또 직장 생활하면서 노하우를 터득한 분야라 잘할 자신이 있었다. 식품 구매와 셰프 경력은 국·반찬 제조업에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2. 배수진을 치고 과감하게 배팅했다. 처음 매장을 낼 때 퇴직금을 다 투자했고 공장을 설립할 때는 전 재산인 집을 팔았다. 도망갈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배수진을 치고 도전했다.
3. 사업 초기 최선을 다했다. 창업 후 3년간 딱 3일 쉬었다. 가정도 내팽개치고, 직원들은 다 쉬어도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내가 집 나가라고 할 때까지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전력투구했다.
4. 단순 유통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조를 목적으로 했다. 공장을 임대해 제조하면서 벤처 기업 인증을 받고 이를 통해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서 자가 공장을 마련했다.
5. 직장 다닐 때 대학원 MBA 과정에서 프랜차이즈를 공부했는데 그게 인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석박사 과정을 하면서 인맥을 쌓고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마트 인맥만으로는 창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6. 사업 초기부터 기업 부설 연구소를 설립해서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최고의 제품만이 살길이라고 생각 소스 개발 및 제품 연구 활동을 지속했다.
7. 가맹점 모집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초기에 직영점의 매출이 높아서 지인들을 통해 가맹점이 많이 모집됐다. 가맹점 모집에서 절약한 비용을 제품 질 향상을 위해 알뜰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8. 가맹본부의 수익원을 확실히 정립했다. 로열티를 1.5% 받고 있는데 거의 모든 가맹점주가 로열티를 잘 낸다. 가상계좌에 선입금 후발주 제도를 도입해 가맹점을 순회하고 지도하는 슈퍼바이저들이 가맹점주와 분쟁할 일이 없다.
9. 대기업 근무 경험으로 조직관리를 했다. 중소기업 근무자들의 업무 수준이 낮을 수 있어 업무 매뉴얼을 대기업 수준으로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10. 사업 시작부터 ‘가치 있는 식품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자’라는 경영이념을 명확히 했다. 이마트 근무할 때부터 거래처를 선정할 때 제품보다는 ‘어떤 경우에도 품질을 위해 양심을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마찬가지로 국선생도 그런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경우라도 품질을 양보하지 않는 경영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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