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칼럼] 프랜차이즈와 창업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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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016 등록일등록일: 2017-10-26본문
‘직업의 종말’ 저자인 테일러 피어슨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그는 미래사회에 대해서 직업의 종말을 선언하고 창업가 정신만이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 입구는 넓지만 출구는 좁은 창업
그런데 이런 시대에 한국 사회에서는 ‘창업의 배신’이 우려되는 상황이 종종 눈에 띈다. 그것도 정부나 정치가 주도되어 창업을 배신하는 형국이 연출돼 사업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고 있다.
창업의 배신이란 무엇인가? 천신만고 끝에 어느 정도 성장해서 한숨 돌리려고 하는데 성공한 기업을 탐욕자로 간주하고 기업가를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다.
컨설팅을 해보면 창업한 기업의 생존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한다. 통계는 단적으로 그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창업자의 20~30%는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50~60%는 2년 안에 문을 닫는다. 70~80%는 3년 안에 문을 닫는다. 업종 군별로 차이가 있지만 어떤 업종은 3년 내 폐업률이 거의 90%에 육박한다.
창업은 깔때기 같아서 들어가는 입구는 넓지만 성공의 출구는 매우 좁다. 살아남는 기업은 극소수이다. 이미 성공한 후에는 그 자리까지 쉽게 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온갖 역경을 넘긴 기업에 범법 사실이 명확하지도 않은데 여론 사냥을 한다면 열심히 사업하고 싶은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 올해 두더지 자판기처럼 두들겨 맞았던 분야가 프랜차이즈 업계다.
▲ 서울 중구 명동에 모여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모습. /조선일보DB
◆ 가맹본사 적정마진은 납품업체 이익과 조직원 복지향상에 필요
프랜차이즈를 향한 화살 중에 어떤 것은 받아 마땅한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마진 논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을 추구한다. 그 결과가 이익이다. 기업은 제품 원가 외에도 인건비, 연구개발비, 마케팅 등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많다. 해외진출이나 신규 사업 준비에는 오랫동안 이익 없는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정확한 비용구조를 파악하지 않고 매출 이익을 문제 삼는 것은 위험하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가맹본부의 수익성이 어느 정도 담보돼야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우수한 인재들이 가맹본부에 입사해 가맹점의 성공을 위해 자기 직업에 헌신할 수 있다.
가맹본부의 마진을 지나치게 쥐어짜는 것은 청년들에게 저임금에 고생만 하는 일자리를 만들어주라는 이야기와 같다. 마진이 문제가 아니라 가맹점 운영 연한과 성과, 관계를 문제 삼아야 한다. 가맹점포 유지율, 가맹점 평균 운영 연한, 폐업률, 가맹점포당 평균 매출, 손익 수준, 분쟁 건수가 더 중요하다.
공정무역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가격을 후려치면 누군가 피해를 본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마진을 문제 삼으면 누군가가 그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 전체 프랜차이즈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익성이 좋은 기업은 일부다. 따라서 가맹본부에 용역이나 원재료를 공급하는 중소납품업체와 조직원들이 1차적으로 손해를 감수하게 될 것이다.
◆ 가맹본부 사장 대부분은 흙수저 출신
통계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성공률은 일반 자영업자보다 훨씬 높다. 반면 가맹본사의 사업 성공은 어렵다. 40년이 넘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프랜차이즈를 통해 대기업군에 진입한 기업은 파리바게뜨와 다이소. 등 몇 개가 유일하다. 골목길에서 성장해 연간 1000억원대 매출을 넘어선 프랜차이즈 기업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업종도 가맹점포 수가 많고 수익성이 좋은 치킨과 피자. 제과, 편의점, 화장품 정도다.
현재 대기업 브랜드들은 프랜차이즈 시장에 진입할 때부터 대기업이었다. 처음부터 금수저였던 셈이다. 그런데 금수저 물고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게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니 유연성과 인적 의존성, 감성 터치, 변화관리가 중요한 프랜차이즈 사업에서의 성공이 호락호락할 리 없다. 대기업들이 규모와 자본의 힘만 믿고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해 실패한 브랜드를 모으면 작은 공동묘지를 만들어도 될 정도다.
직원 수 2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 전체 70%가 넘는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사장들 대부분은 흙수저들이다. 영세자영업자 출신이거나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스스로 창업을 해야 했거나, 대기업을 퇴직하고 취업이 안 돼 혹은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 사람들이다. 길바닥과 시장통에서 성공한 후 해외진출 해보려고 아등바등하며 애국했다고 뿌듯해하는 우리 동네 작은 부자들이다.
◆ 프랜차이즈는 세금지원 없이 혼자 컸다
정부와 지자체는 영세한 시장상인과 자영업자를 살려보겠다고 지금까지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었다. 그 성적표는 어땠을까?
반면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프랜차이즈에 정부가 지원하는 비용은 연간 총 20억~30억원대 수준이다. 일자리 100만개·100조 규모나 되는 이 시장에 이 정도 지원이 시작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제조업, 벤처, 재래시장 등이 정부로부터 온갖 지원을 받는 동안 프랜차이즈는 버려진 자식처럼 혼자 컸다.
서비스업 고도화와 선진화를 외치면서도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해외진출하려고 애쓰며 투자할 때 해외박람회에 참가하는 부스비 정도 지원해주면서 생색낸 게 고작이었다.
시장상인이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처럼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육성하는 분야도 필요하다. 한편 국민 세금을 쓰지 않고 스스로 자라는 분야가 있다면 채찍보다는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조성해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프랜차이즈는 천덕꾸러기이지만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에서는 소상공인의 실패를 줄이고 성공률을 높이는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프랜차이즈는 미래 기업의 성장요건을 두루 갖고 있다.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의 상생, 플랫폼 적 경영요소, 업무 전문화와 아웃소싱, 서비스 및 지식 사업, 브랜드 중심의 소비자 비즈니스, 무형자산의 체계화, IT와 서비스 사이언스, 데이터 경영 등. 지난 3년간 많은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해왔으며 그 성과는 지난 40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다. 하지만 영세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아직은 채찍보다 지원과 격려, 학습이 더 필요하다.
◆ 미국 전통 기업들, 프랜차이즈 통해 혁신
미국의 경우 전통적이고 낙후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통한 혁신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도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중소제조업체들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역시 프랜차이즈를 통해 판로확보와 일자리 창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사업모델을 판박이처럼 찍어내는 프랜차이즈의 장점은 대량 일자리 창출이므로 정부나 지자체의 일자리 고민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특히 사업 노하우 표준화로 경쟁력이 약한 중장년이나 시니어들도 쉽게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서비스 사이언스’를 구현하는 프랜차이즈의 특징을 잘 활용하면 낙후된 국내 서비스업을 더 고도화할 수 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혹은 중소기업 보듬기
기업은 사업 초기에는 창업가의 무한한 희생과 헌신으로 성장하지만, 일정 단계를 지나면 기업 성장의 원동력은 고객과 조직원이다. 자동차를 구매해도 기름이 없으면 운행할 수 없듯이 조직원과 고객은 기업의 연료 공급자다. 그래서 소유자가 누구이든 모든 기업은 사회의 공공재이다. 이런 공공재를 경영자가 소유주라는 미명으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듯이 기업 외부의 특정인이나 권력이 함부로 다뤄서도 안 된다. 누군가의 일터이고 생계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기업은 브랜드 신뢰를 먹고 산다. 워런 버핏은 “신뢰가 만들어지는 데 평생의 시간이 들지만 무너지는 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가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깔때기의 좁은 관을 통과한 중소기업들을 잘 보듬어줘야 한다.
기업의 탐욕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창업가의 탐욕이 정부 지원 없이도 사업의 모든 고비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선한 의지를 가진 정치인일지라도 국민 세금을 쓰는 일은 잘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개인재산을 헌납하기는 쉽지 않듯이 기업이 땀 흘려 번 이익금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기회의 평등, 절차의 공정, 분배의 정의가 이뤄지는 비즈니스 유토피아를 꿈꾼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게임 참가자들 전원의 의식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길을 지향하며 가지만, 그 과정에서 힘들게 일어선 기업이 억울하게 난타당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번 주 금요일에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가 산업 혁신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 어떤 내용이든지 냄비 끓듯이 반응하지 말고, 합리적이고 차분하게 상생과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경영자들도 이 기회를 통해 서민 생계에 미치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의가 단번에 이루어지려면 피바람이 불어야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교육과 계몽과 인내와 대화가 상처 없는 정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