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으로 창업, 사옥짓고 25억 매출 올리는 맛집의 성공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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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943 등록일등록일: 2024-02-08본문
서면은 부산의 핵심 상권 중 하나이다. 이 곳에 3층짜리 자가 건물에서 연 25억 매출을 올리는 해물요리 전문점이 있다.<정동진해물탕.해물찜 서면본점>이다.
부산에는 신선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많지만 <정동진해물탕.해물찜>은 부산 가면 꼭 들러야 할 맛집으로 손꼽힌다. 이 식당의 창업자는 안은영(59세). 김기상(62세) 부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아들 김대홍씨(27세)가 매장 운영에 합류해 Z세대의 감각이 더해지고 있다.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산 대표 맛집으로 성장했지만 출발은 1천만원으로 식당 창업에 도전한 김대홍 씨의 어머니 안은영씨에게서 비롯됐다. 김대홍씨 가족은 어떻게 맛집을 키웠을까?
◆스물일곱살 새댁, 두 살배기 딸을 두고 식당창업에 도전
김대홍씨의 어머니인 안은영씨는 우리나라 소상공인 경기가 가장 좋던 1991년 1천만원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그 무렵에는 술집이고 식당이고 뭐든지 장사가 잘되던 때였다.
겨우 스물일곱 살이던 새댁 안은영씨는 빌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테이블 6개로 식당을 시작했다. 구이집이었는데 낮에는 돌솥밥에 생선을 구워서 점심 장사를 하고 저녁에는 양곱창과 LA갈비를 팔았다. 친척언니 집에서 몇 년을 일해서 배운 후 시작한 장사였다. 인근에 보험사가 많았는데 보험사 직원들에게 맛집으로 인기가 높았다.
운영하는 식당이 잘되자 안씨는 자신감을 갖고 더 큰 매장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두 번째 사업은 고기뷔페였다. 두 번째 사업에는 다른 사업을 하던 남편도 합류했다. 당시 부산 지역에는 무한리필 고깃집이 초창기라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손님은 많았지만 이익도 적고, 고깃집은 너무 흔했다. 안은영씨는 때마침 불기 시작한 웰빙트렌드를 보면서 좀더 독창적이고 건강한 메뉴를 파는 음식점을 하고 싶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게 해물탕해물찜이었다.
해물은 건강에 좋은 웰빙요리인데다 유행을 안타고 오래할 수 있을 것같았다. 남편은 고기뷔페를 운영하고 안은영씨는 해물요리집에서 일하면서 맛을 배웠다. 현장 경험도 하고 맛을 연구해서 2002년 고기뷔페를 <정동진해물탕.해물찜>으로 업종 전환했다.
◆맛집으로 자리잡은 남다른 비결은
인생에는 중요한 전환점이 있는데 김대홍씨 가족에게는 그 때가 전환점이었다. 시작할때만 해도 20년 이상가는, 부산을 대표하는 맛집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부산 최고의 요지에 있는 자가 건물에서 100년, 200년을 목표로 하는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창업 초기에는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부산에 수산물이 풍부해도 아구찜처럼 이미 지역 주민들이 즐기는 다른 메뉴가 있었고 지역 특성상 양념된 해물요리보다 신선한 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맛은 뛰어나지만 홍보 방법이 묘연하던 때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방송이 나간 후 음식점은 날개를 달았다. 방송 나간 날이 삼일절이었는데 난리가 난 것이다. 웰빙 트렌드와 월드컵 경기, 이후의 광우병 파동은 정동진해물탕.해물찜이 맛집으로 자리잡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안하는 직원에게 8개월간 월급 준 이유는
고기뷔페를 하던 80평 매장은 임차였는데 장사가 워낙 잘돼 인근에 땅을 사서 주차장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2013년 장사를 하던 가게가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그렇게 장사 잘되던 매장에서 권리금 한 푼 못받고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부랴부랴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땅에 건물을 짓게 됐다. 원래는 6개월로 예정했는데 8개월이나 걸렸다.
김기상 안은영 부부가 특별한 것은 건물을 짓던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일하던 직원을 대기시킨 것이다. 일은 하지 않았지만 급여의 50%를 지급하면서 쉬는 시간을 갖게 했다.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과 제주도, 주왕산, 단양 등 버스를 대절해서 국내 관광지를 놀러다녔다. 4대 보험도 그대로 유지했다. 덕분에 8개월이나 걸린 건축기간 동안 한 명의 직원도 퇴사하지 않고 재개장때 그대로 함께 일하게 됐다.
2013년 11월 9일 서면의 3층짜리 자가건물에서 오래 함께하던 직원도 이탈없이 신장개업에 참여하게 된다. 김기상 안은영 부부의 그런 선한 마음 덕분인지 새로 매장이 문을 열자마자 오픈런이 이어졌다.
◆군 제대 후 식당에 긴급 투입...한식의 가능성에 눈 뜨게 된 계기
20년된 맛집에는 요즘 새로운 에너지가 투입되고 있다. 아들 김대홍씨 덕분이다.
김대홍씨가 매장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다. 식당이 성공하다보니 김대홍씨의 부모님은 쉬는 날도 없이 항상 바쁘게 일했다. 늦둥이로 태어난 김대홍 씨는 밥도 식당에서 먹고, 가게에서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식당이 삶의 보금자리였다. 김씨의 삶속에는 항상 식당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래희망도 식당 사장이 됐고 대학에서도 한식 조리학을 전공했다.
원래는 대학졸업하고 일반 식당에서 경험을 더 쌓을 생각이었다. 나만의 매장을 창업할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김대홍씨가 빨리 매장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김대홍씨가 군에 갔다가 제대할 무렵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것이다. 코로나에 구인난까지 겹치면서 아들인 김대홍씨가 긴급투입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언젠가는 식당을 물려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식당 일을 하게 되니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내가 식당을 경영하면 어떻게 운영할까 생각해보게 됐다.
처음에는 식당을 트렌드에 맞게 힙하게 바꿔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서울 성수동에 다녀온 뒤 생각이 바뀌었다. 변화도 많고 요즘 가장 핫하고 감각적이라는 성수동에서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이 바로 낡은 간판의 감자탕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식의 가능성에 눈을 떴고 <정동진해물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특명! 코로나로 떨어진 매출을 끌어올리기
<정동진해물찜>의 가능성을 확고히 한 김대홍 씨에게는 숙제가 주어졌다. 코로나에 떨어진 매출을 올리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당시에 월 1억7천~8천하던 매출은 1억 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어떻게 매출을 올려야 하나 궁리하던 김대홍 씨는 당시 트렌드인 배달을 준비한다. 처음에는 서빙을 하면서 배달, 포장 등을 했다. 식당 근처의 아파트나 원룸에서 배달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이전에는 배달을 하지 않았는데 정동진해물찜이 배달을 시작하자 기대보다 훨씬 주문이 많았다. 배달이 늘어나면서 보조 역할이던 김대홍 씨의 역할은 더욱 늘어나 현재는 풀타임 근무를 하며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
◆오래된 한식당에 현대적인 경영을
김대호 씨가 식당 경영에 참여하며 변화를 준 또 한 가지는 메뉴 레시피의 표준화다.
<정동진해물탕.해물찜>에는 김대홍 씨를 포함해서 총 15명의 정직원과 파트타임 직원 5명이 일을 한다. 조리학을 전공한 김대홍씨는 손맛에 따라 맛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부 시스템을 바꿨다. 계량을 해서 레시피를 만들고 누가해도 동일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조리를 표준화 했다. 과거에도 어느 정도 기준이 있었지만 완전히 정교하지는 않았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졌다. 지금은 조리 시간이 일정해지고 맛의 표준화가 정착됐다.
해물찜은 주문이 밀리지 않을 때는 10분 정도 걸린다. 해물탕은 담아서 5분이면 나간다. 손님상에서 바로 끓인다. 해물찜을 다 먹고 밥을 볶아먹을 수도 있는데, 볶음밥은 주문이 들어오면 테이블에서 하는 게 아니라 홀에 작업대를 마련하고 양념을 덜어 와서 볶아서 나간다. 볶음밥 조리는 주로 김대홍 씨가 한다. 김대홍 씨가 식당의 모든 매뉴얼을 표준화하는 데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많이 도움이 됐다.
◆특색있는 맛보다 보편적인 맛을 선택
<정동진해물찜>의 음식 맛은 독창적이지는 않은 보편적인 맛이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다는 평가다. 대표 메뉴는 해물찜으로 소자가 5만 원이다. 매출 비중은 해물찜이 70~80%, 탕이 20%를 차지한다.
정동진해물찜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최상의 식재료다 .
새우는 8미 새우를 사용하고, 꽃게도 가장 큰 사이즈를 사용한다. 문어도 2킬로 정도 무게의 대왕문어를 쓴다. 겉 모양은 비슷해도 해산물의 맛은 다 다르다. 같은 사이즈라도 살이 야문 꽃게가 있고 살이 무른 게 있다. 가장 좋은 해산물로 요리하기 위해 최대한 샘플을 받아보고 비싸도 좋은 해산물을 사용한다. 부산시내에서 꽃게를 가장 많이 판다는 자부심도 있다.
워낙 구매량이 많다보니 거래처에서도 <정동진 해물찜>에 가장 좋은 물건을 넣어준다. 덕분에 음식이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다. 반찬도 매장에서 직접 다 만든다. 미역무침, 장아찌, 각종 김치가 나간다. 정동진해물찜은 국물이 없이 비벼낸다. 해물찜을 먹다보면 콩나물 등에서 수분이 나오기 때문에 간이 옅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올해 연매출 25억...순수익은 얼마일까?
<정동진해물찜>을 오픈하고 초창기 매출은 월 8천만~9천만 원대였다. 이후 매출이 1억8천만대까지 올랐다가 코로나 초기에 1억원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배달을 강화하면서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해 팬데믹이 끝난 2023년에는 연간 2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22년 20억 보다 더 높다.
테이블 단가는 6~10만 원 정도고, 주중에는 하루 700만 원, 주말에는 1200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 저녁 매출이 70%를 차지한다. 순수익은 20%내외로 월평균 4천만 원 정도다. 김대홍 씨는 월 50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하루종일 식당에 있기 때문에 돈 쓸 일이 없어서 월급의 대부분은 저축을 한다.
<정동진해물찜>에는 단체손님이 많다. 50~60명 씩 온다. 1, 2층이 각각 120평 규모이기 때문에 단체모임이 가능하다. 단체고객은 주로 인근 회사나 은행, 관공서, 학교 동문회에서 많이 온다. 주고객층은 가족단위 손님들이다. 50~60대 이상이 많다.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다. 젊은 고객은 많지 않다.
최근에는 일본과 대만 손님들이 많이 온다. 부산을 찾는 외지 고객들도 많다. 부산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명소로 여겨지고 있다. 개인이 예약해서 오기도 하고, 여행사에서 단체로 오기도 한다.
◆부모님 신뢰를 얻기 위한 묘책
김대홍 씨가 경영수업을 받으며 가장 힘든 점은 부모님의 잔소리다. 부모님은 장사 경력 30년의 베테랑들이기 때문에 김씨가 일하는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김씨의 부모님은 시계 바늘 같은 생활을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을 하고 있다. 사장이 있는 가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부모님의 장사철학이기 때문이다.
김대홍 씨는 부모님의 잔소리 듣는 게 버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내가 식당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온라인마케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모님보다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마케팅은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와 블로그, 인스타그램도 배우고 올해부터는 요즘 유행하는 숏폼에도 힘을 주고 있다. 마케팅 대행사를 통해서 월 30만~100만 원 정도의 마케팅비를 투자하고 있다.
◆이제 부자 소리 듣게 됐는데...
식당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식당 사장으로 꿈을 키워왔기에 김대홍 씨에게 식당은 낯선 공간은 아니다. 식당 일이 제밌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온전히 경영을 책임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실 김대홍 씨의 아버지 김기상씨는 현재 투병 중이다. 그래서 가게 운영은 김씨의 어머니와 김씨가 맡고 있다. 안은영씨는 지난 20년간 장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요즘이라고 말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시계추같은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사업을 키웠다. 딸이 두돌 지날 때부터 장사를 시작해 쉬는 날 없이 새벽에 나가서 영업시간이 지나도 손님이 나가는 밤 11시, 12시까지 기다리며 가라는 말 한 마디 안하고 장사를 했다. 그렇게 고생하고 열심히 사업을 키웠는데 이제 부자 소리 들을만하니 남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직원 20명이 월요일마다 쉰다.
남편 건강이 나빠진 후 안은영씨는 남몰래 혼자 많이 울었다. 덩달아 아들인 김대홍씨의 어깨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아버지의 빈 자리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김대홍씨에게 가장 큰 위로는 주변 식당의 자녀들과 가지는 교류다. 만나면 요즘 외식트렌드나 온라인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며 정보를 교환한다. 비슷한 처지라 서로 공감대가 넓다.
◆100년 식당으로 만들어 오래오래 하고 싶어
현재 식당 확장 계획은 없다. 경제가 안 좋기 때문이다. 당분간 현상 유지를 하며 숨고르기를 하는 게 목표다. 성공한 맛집의 2세 경영자들이 트렌드에 맞는 힙한 식당을 새롭게 많이 창업하지만 김대홍씨는 지금 식당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한식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부모님의 철학에 Z세대 다운 감각을 더하며 100년, 200년 가는 노포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