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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독서] 코로나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ft.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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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3,829 등록일등록일: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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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갑자기 대박이 난 사람도 없지는 않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온라인 관련 사업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사례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고통을 겪고 있다.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오는가?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나 대형 음식점, 학교 급식에 의존해야 하는 식품제조업체,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기업난민이 되어야 한 40~50대, 코로나19로 신규 채용이 줄어들어 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청년 실직자 등. 특히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받은 여행사, 이벤트 관련 회사, 문화예술계 종사자 등은 올 한 해가 어느 때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다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다양한 유형의 고통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질병, 이혼, 취업실패, 진학 실패, 가족 상사 동료 친구간의 갈등 등 개인적인 고통의 유형도 다양하다. 이렇게 크고 작은 '고통에 대해서 고통은 헛되지 않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선교사였던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쓴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라는 책이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기도가 이뤄지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고통 속에서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 친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 볼만하다. <전능자의 그늘> <영광의 문> 등 다양한 저서를 가진 엘리자베스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문을 연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혹은 "인간이 겪는 고통을 다룬 참담한 데이터를 보고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도스토예스키가 쓴 유명한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 카라마조프가 알료사에게 던진 바로 그 질문이다.    


◆고난에 대한 명쾌한 정의 그리고 고난이 없는 세상의 모습은?
그런데 사람마다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달라서 어느 정도까지를 고통이라고 해야 할 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에 대해서 엘리자베스는 분명하게 고통을 정의해준다.

 “고난은 원치 않는 것을 갖거나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원치 않는 것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치통도 꼴보기 싫은 친척도 교통 체증도 없는 세상.

반대로 모두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완벽한 날씨나 완벽한 아내, 완벽한 남편, 완벽한 건강, 완벽한 행복만 있는 세상.

맬컴 머거리지는 이렇게 말했다.
“고난을 모두 없앤다고 해 보라. 그런 세상은 정말 무시무시한 곳일 것이다. 자만과 교만에 빠지기 쉬운 인간 성향을 바로잡을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인간은 지금도 충분히 나쁜데 고난을 겪지 않으면 도저히 못 참아 줄 정도로 나빠질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고난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싸우고 있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창업자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다보면 7억 원짜리 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집이 10억원짜리였다면 대출을 받아서 창업을 하겠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10억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은 우리 집이 13억원만 되면 마음놓고 대출받아서 창업하지요, 라고 말한다. 인간의 사고 방식은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인 엘리자베스는 선교를 갔다가 선교지에서 남편이 3개월된 아이를 두고 죽임을 당하는 경험을 한다. 선교를 하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현지 인디언들에게 식인종으로 오해를 받아서 그렇게 됐다.

이후 그녀는 재혼을 했는데 재혼하고 3년이 지난 후 남편이  암선고를 받은 후 또 다시 사망하는 상황을 맞는다.  그리고 세 번째 남편을 만나서 재혼을 했다.
  
◆고통은 늘 선물과 함께 찾아온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 가장 큰 고통과 함께 찾아왔다고 말한다. 가장 큰 선물은 결혼과 엄마가 된 것인데 그것들은 가장 큰 고통과 함께 온 것이다.

그녀는 고통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사랑의 선물은 고통의 선물이었다.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코로나19로 자영업을 하다가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사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서 기대를 안고 사업을 했을 것이고 어쩌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돈을 잘 벌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사랑했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승진하지 못해서 고통받는 사람은 취업을 했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욕망과 고통은 늘 붙어서 다닌다. 그래서 고통은 욕망과 그것의 충족을 위한 노력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 욕망이 클수록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고통도 커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이 가지고도 일등이 되지 못해서, 원하는 수준까지 가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다.

남편이 아파서 병석에 있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 실직한 사람도 있는데 남편의 월급이 적어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도 있다. 상당히 많은 고통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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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주는 고통에 대한 해법은?
그렇다면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런 고통에 대해서 엘리자베스는 어떤 해법을 주고 있을까?     

선교지에서 남편이 죽임을 당했을 때 그녀는 왜 하나님이 계신 데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이 확인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믿고 있는 주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했던 기도는 ‘고통이 자신을 침몰시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임재가 자신의 가혹한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그 고통이 진정한 피난처’로 자신을 떠밀었다고 말한다.
  
<고통의 문제>라는 책을 쓴 C. S.루이스는 늦게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실의에 빠져서 이 책을 썼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게 혐오스러운 존재요, 우주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의지를 남용함으로써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피조물이 완벽하게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이 전능자라면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조물은 행복하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선하시미나 능력 중 하나가 없거나 둘 다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루이스의 이 말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기독교인이라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나를 믿으렴, 나와 함께 걷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리스도는 스스로 지나신 곳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는 나를 인도하지 하시지 않는다‘는 리처드 백스터의 찬송가를 인용한다.

또다른 측면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선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지만 현대인들은 선을 즐거움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경우는 많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영상만 보다가 시험 공부를 덜한다. 건강한 몸을 원하지만 설탕 덩어리 케잌이나 탄산음료를 습관적으로 먹는다. 예고에 가서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하지만 정작 제대로 연습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게임하는 걸 더 즐긴다.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은 별로 즐겁지 않은 게 더 많다. 고통은 당장은 견디기 힘들 수 있지만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고통을 대하는 4가지 자세
엘리자베스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고통의 해결방법은 이렇다. 고통이 우리를 찾아오면 첫째, 그 고통을 인지하라, 둘째, 고통을 받아들이라. 셋째, 그것을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 넷쩨 그 제사와 함께 너 자신을 드리라.
  
엘리자베스는 고난의 문제에서 수용이 평강의 열쇠이며 수용과 감사가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끔찍한 일을 겪고도 오히려 정금이 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시련을 정련의 불로 삼아 철강이나 금처럼 강해지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똑같은 일 심지어 훨씬 덜 나쁜 일을 겪고도 분노나 원망, 불평,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알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처럼 살아간다. 우리는 너무 시시한 일에 분노, 원망, 불평, 불만을 가득 안고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탤런트 신애라는 자신의 신앙 간증에서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3가지 감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 거저 받은 모든 것에 감사하라. 둘째, 나쁜 일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셋째, 앞으로 다가 올 것에 대해서 미리 감사하라. 
  
엘리자베스도 이렇게 쓰고 있다.
“미리 하나님께 감사하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은 혼란의 바다를 표류하지 않는다.”    

비단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인생 살이에서 감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엘리자베스는 선교지에서 본 인디언 여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들은 20kg 짜리 바구니를 짊어지고 거의 4시간 동안 험난한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젠장’이라며 바구니를 내려놓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불평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고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고통을 수용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암이나 살인자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온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감사해야 한다. ”

“감사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감사는 우리에게 구원을 보이시기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희생과 결합해서 나타난다. 부모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아기를 가지면 힘든 시간을 겪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들의 진짜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부모는 밤낮으로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 희생을 두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는다.이 것은 아주 명백한 희생이다. ”

“고난은 신비다. 신비는 설명할 수 없지만 고백할 수 있다.”    

“우리는 혼돈 속을 떠도는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 삶은 영원하신 분의 팔에 안겨 있다.”
 
고통을 수용하는 행위는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행위이다. 여기서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 무조건 상황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고통의 원인이나 고통 자체를 무조건 인정하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 상황을 감사로 살아내는 것이다. 능동적 순종이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왔지만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변종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황은 언제나 우리의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
  
얼마 전 상담했던 한 여성은 직장에서 본인이 가장 유능했고 실적이 좋았지만 여성이라서 승진에서 번번이 탈락하자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 여성은 연 매출 100억 원대의 제조업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 여성은 승진 탈락이 매우 힘들었지만 새벽기도를 나가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고 기도를 하며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주님을 신뢰하면서 용기를 내서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다. 고통을 수용하는 것은 그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고통이 일어난 상황, 즉 울고 불고 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오지도 않고, 이미 벌어진 손실이 당장 채워지지도 않는다. 떨어진 대학 시험에 다시 붙을 수도 없다.

누군가가 죽은 상황, 낙방한 상황, 엄청난 실패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탤런트 신애라의 간증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르는 섭리를 인정하면서, 신앙인이라면 의지할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우리가 믿는 미래에 대해서 미리 감사를 해야 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편 56:3
when I am afraid, I will thrust in you.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시편 50:23
He who sacrifices thank offerings honors me, and he prepares the way so that I may show him the salvaton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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