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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창업뉴스 [성공사례]

올해초 인터넷에서 난리난 유명 족발의 성공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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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20,601 등록일등록일: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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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초 엄청난 인터넷 밈이 된 식당 브랜드가 있다. 유튜브의 온갖 계정에서 이 브랜드의 CM송이 울려퍼졌다. 근육질 청년이 웃통을 벗고 나와 우렁차게 부른 CM송은 바로 ‘장충동왕족발.보쌈’이다. 40년 역사를 가진 장충동왕족발.보쌈은 이 인터넷 밈 덕분에 전 가맹점의 매출이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족발브랜드인 장충동왕족발.보쌈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가맹점주였다가 가맹본사를 인수한 여장부

장충동왕족발.보쌈 신신자 대표는 올해 71세다. 그녀는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기업가다. 2만 여평의 공장부지에서 식품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맹점 수도 100여개다. 그런데 사실 신신자 대표는 장충동왕족발.보쌈의  최초 창업자가 아니다.


그는 장충동왕족발.보쌈의 가맹점주였다가 가맹본사를 인수했다. 남편의 사업 부도로 생활터전인 대전을 떠나 도망가다시피 부산에 가서 차린 음식점이 장충동왕족발.보쌈 동래점이었고 그 매장이 전국 매출 1등을 찍더니 결국 가맹본사까지 인수한 것이다.


신 대표가 회사를 인수할 때 매출액은 38억원대였는데 지금은 연 400억원의 매출에 직원 수도 250명에 달한다. 신대표는 어떻게 40년 역사의 브랜드를 25년이상 지속가능하게 경영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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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사업부도로 부산으로 떠나다 

97년 IMF가 터지기 전부터 우리 경제에 위기의 징조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신신자 대표의 남편도 그 피해자였다. 건설업을 하고 있었는데 95년에 부도가 났다. 그 당시 서울의 명동처럼 대전의 핵심 요지에 지역에서는 가장 유명한 건물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남편의 사업 부도로 도망치다시피 부산으로 내려갔다. 해당 건물은 월임대료만 3천만원이 나오는 건물이었는데 신 대표의 명의로 돼 있었지만 압류를 당해 손을 댈 수 없는 처지였다.


당시만 해도 체면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기였으므로 이웃들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부산으로 내려간 신 대표는 아이들 돌반지까지 팔아서 장충동왕족발 부산 동래점을 오픈하게 된다. 지하와 1층을 합해서 총 150평대 매장이었다.


대전에서도 레스토랑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사업이 처음은 아니었다.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식당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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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가맹점 중 매출 1위를 하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결과 얼마 안돼 신대표는 당시 장충동왕족발.보쌈 5,60여개 가맹점 중에서 전국 매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전국 매출 1위의 비결은 고객만족이었다.

음식의 맛은 기본이다. 품질이 나쁜 음식은 아예 팔아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신 대표는 이 세상에 싸고 좋은 제품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은 있다. 고객은 가성비에 민감하다. 성공하고 싶다면 합리적인 가격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고객만족과 서비스가 성패를 좌우한다.


신 대표는 도톰하고 깨끗한 물수건을 여름에는 차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제공했다. 사업하는 사람이 불편하고 힘들어도 무조건 고객 위주로 생각했다.


고객들의 신발도 일일이 닦아줬다. 어떤 때는 너무 깨끗하게 닦여 있는 신발을 보고 고객이 자기 신발이 아니라고 우긴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음식이 나가기 전에는 새끼감자나 고구마, 제철콩 등을 동치미와 함께 식전 입가심 음식으로 제공했다. 그렇게 하면 식사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고객 서비스가 성공의 비결

처음에는 테이블마다 고객의 소리를 듣는 통을 놓았지만 아무도 불만쪽지를 넣지 않았다. 그래서 고객의 소리함을 다 치우고 직접 테이블을 오가며 고객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손님이 족발을 거의 다먹었는데 소주가 애매하게 남아서 망설일 때는 족발 몇 점을 무료로 제공해 소주를 추가로 시킬 수 있도록 했다.


신 대표는 고객이 떠날 때 항상 문밖까지 나가서 인사를 했지만 절대로 다시 방문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다시 오라고 하는 것은 사업자의 이익을 챙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는 것’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다.


신 대표는 사람이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하물며 나의 생계를 유지해주고 우리 사업을 존재하게 해주는 고객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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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투자해 가맹본사를 인수하다

가맹점을 창업한 지 5년쯤 지났을 때 새로운 도전 기회가 다가왔다. 오너 리스크로 가맹본사가 문을 닫을 처지가 된 것이다. 당시 가맹본사의 매출액은 연간 38억 원 정도였고 가맹점 수는 50여개였다. 식품제조 공장도 보유하고 있었다. 


가맹본사를 인수하려면 40억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때마침 신 대표는 대전에 본인 이름으로 보유했던 건물의 압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돼. 해당 건물을 활용해 인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신 대표는 과감하게 40억을 투자에 가맹본사를 인수했다. 그때가 2001년 1월 17일이었다. 신신자 대표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증이 나온 것은 2월 15일이고 그날은 장충동왕족발.보쌈의 새로운 창립 기념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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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1년만에 회사를 두배로 키웠으나...

2001년 가맹본사 인수 후 신신자 대표는 1년 만에 회사를 두 배로 키웠다. 38억원이던 매출은 100억원대로 뛰었고 가맹점 수도 100개로 늘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를 계기로 엄청나게 주문이 폭주하면서 사업이 급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가파른 성장이 화근이 됐다. 주문 양이 폭주하자 기존 공장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2002년 진천에 공장을 추가로 마련했다. 그런데 너무 급속하게 생산 시설을 늘리면서 품질을 놓치는 일이 생겼다. 또 같은 처지의 가맹점주였던 신신자 대표가 가맹본부 사장이 되어 기업이 급성장하는 것을 보자 그 것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지사장들이 모여서 가맹점의 1/3을 데리고 나가서 똑같은 상호로 짝퉁 브랜드를 만들어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장충동 왕족발은 지명에 기반을 둔 상호이기 때문에 상표권을 보호받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이탈했던 가맹점 중에 절반이 6개월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비슷한 일은 이후에도 몇 번이나 되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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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브랜드와 20년간 전쟁

신신자 대표는 지금도 20년의 세월을 허송세월했다고 곧잘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짝퉁 브랜드와의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짝퉁브랜드는 상호가 같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원래 매장이 아니었고 맛도 달라졌다.


짝퉁 때문에 진짜 가맹점들이 피해를 입었다. 짝퉁 매장들은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싸움을 끝내는 데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짝퉁 브랜드가 거의 다 문을 닫았다. 맛관리 품질관리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2022년부터는 다시 가맹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짝퉁 브랜드들이 대부분 문을 닫고 사라지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장충동왕족발.보쌈 브랜드 사업을 추진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장충동왕족발.보쌈 가맹점 수는 100여 개이다. 그런 가운데 올해 1월 장충동왕족발.보쌈 CM송이 인터넷 밈으로 대히트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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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소음예술

◆인생을 바꾼 책 한권, 식품제조.유통업에 승부를 걸다

짝퉁브랜드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신 대표는 남아 있는 가맹점에 최선을 다하되 가맹점 확장을 중단하고 식품 제조.유통업에 힘을 쏟았다.

 

2003년 지사와 가맹점주의 쿠데타로 회사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 지인중 한 사람이 신신자 대표에게 ‘음식혁명’이라는 책을 선물했다. 책의 저자 존 로빈스는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왕국인 배스킨 라빈스의 유일한 상속자였지만 막대한 재산을 포기하고 환경운동가로 나서서 건강한 식단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다.  신대표는 이 책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바른 먹거리는 그녀의 사업 철학이 되었다.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바른 먹거리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사업을 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이후부터 신 대표는 '바른 먹거리'를 추구하는 한 길을 걸어왔다.  


장충동왕족발.보쌈의 대표적인 상품은 돼지족발과 순대, 머릿고기 편육이다. 장충동왕족발.보쌈의 모든 제품은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석유에서 추출하는 화학 제품인 빙초산을 사용하지 않고 맛을 내는 데만 4년이 걸렸다. 또 장충동 왕족발은 고기색을 붉게 만드는 아질산 나트륨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붉은 고추로 색을 내고 있다. 커피와 카라멜 소스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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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길을 뚫다

장충동왕족발.보쌈 제품에서는 벤조필렌 아크릴아미드 트랜스지방 같은 것이 일절 나오지 않는다. 바로 그렇게 바른 먹거리로 제조하는 것이 장충동왕족발.보쌈의 노하우다.


이처럼 성장하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일반 식품에서는 평범하게 사용하는 화학첨가물들을 하나씩 빼면서 바른 먹거리를 만들었더니 신기하게도 사업은 점점 더 번창했다.


현재 장충동왕족발.보쌈의 제품은 편의점이나 마트에도 들어가고 홍콩 두바이 등 해외로도 수출되고 있다. 우리나라 군대 전체에도 장충동왕족발.보쌈 제품이 납품된다. 가맹점에도 이렇게 바른먹거기로 완제품으로 납품하므로 장충동왕족발.보쌈은 다른 족발 프랜차이즈에 비해서 주방 운영이 훨씬 더 단순하다

2008년경에 장충동 왕족발은 신탄진과 진천에 있는 공장을 정리하고 청주에 2만평대 부지에 공장을 마련했다.

 

현재 장충동 왕족발에 직원 수는 250여 명이다. 장충동왕족발.보쌈 사업부에 150 여 명이 근무하고 이마트에 60여 명 바른음료라는 음료 제조 공장에 30명이 근무하고 있다.

 

◆자연음식으로 건강관리

신신자 대표는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여성 사업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활동도 사회적 책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대신 바쁘다 보니 건강 관리에는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골프도 잘 치지 않고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신 대표는 늘 식품관련 책을 즐겨 읽는다. 그리고 건강한 자연 음식을 통해서 건강을 관리한다. 비싸고 좋은 음식 대신 싸고 흔하지만 제철 식재료로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신 기능성 식품이나 영양제는 일절 먹지 않는다. 


신 대표가 왕성하게 대외 활동을 하는 데는 그녀의 딸이자 장충동왕족발.보쌈의 상무인 권현주씨의 도움이 크다. 권 상무는 신 대표가 가맹점을 운영하던 시절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로 유학을 갔다.

 

◆후계자를 준비하다

신 대표에게는 딸과 아들이 각각  한 명씩 있는데 두 사람 다 어머니의 사업을 이어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사내에서 후계자를 키우려고 했으나 조직 내에 여러 가지 반발로 후계자로 지명한 직원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는 수 없이 한국에 잠시 들어온 딸을 주저앉혀서 회사 일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게 신의 한수였다.


권현주 상무는 여성이기 때문에 허튼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일중독자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모녀 관계지만 세대 차이가 있다 보니 처음에는 의견이 대립될 때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딸을 키워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신대표는 권상무가 딸이라고 해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2세 경영자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면에서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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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가 반드시 챙기는 3가지는?

경영자들이 사업을 운영하면서 반드시 챙기는 게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직 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납품업체 관리, 또 하나는 자금 관리이다.현재 신 대표는 조직 관리와 납품업체 관리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


인사에 관한 모든 문제는 전부 부서별 책임자에게 위임하고 있다. 납품업체 역시 신 대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자금 관리는 지금도 신 대표가 직접 하고 있다. 

 

◆이익금의 30%를 조직원에게 주다

자금관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투명경영이다. 젊은 시절 신 대표는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때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를 만났는데 그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신 대표는 도저히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을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그에게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있다. 유일한 박사를 통해서 배웠던 것은 기업의 이익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다. 이익금이 100이라면 그중에 40%는 회사에 재투자를 하고, 30%는 주주에게 배당하고, 나머지 30%는 직원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신 대표는 그 것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결산을 하면 이익금의 30%를 무조건 조직원들에게 특별 상여금으로 각자 월급에 맞춰서 평등하게 돌려준다. 어떨 때는 전직원이 급여의 380%까지 특별상여금을 받은 적도 있다. 이렇게 직원에게 많이 줄 수 있을 때 신 대표는 가장 행복하다.

 

◆사업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대표적인 여성 사업가로서 신신자 대표가 다른 사업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첫째 문제 앞에서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걱정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결한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왔다.


두 번째는 철저하게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부정하면 회사의 조직원이나 사회에서 절대로 경영자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 대표는 불법을 하지 않고 투명한 경영을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경영자가 약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멈추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식품산업에 헌신해온 신 대표는 몇 년전 식품명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2년 만에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식품기능사와 식품기사를 자격을 취득했다. 내년에 명장 신청 접수를 할 계획이다.

 

신 대표는 식품 산업 발전에도 큰 공로를 쌓았다. 제주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제주무를 직접 개발했으며. 값비싼 식품 포장기를 국산화해서 외화 절약에 앞장 서기도 했다. 족발로 일본 시장을 개척해 현재 일본에 족발을 수출할 수 있는 라이센스도 보유하고 있다. 홍콩 두바이 등에도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속가능 경영의 비결이다.
 

◆이경희의 원포인트

사업을 경영하는 데는 변수가 많이 있다. 변화 무쌍할수록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그 무엇이 필요하다. 모든 변화를 이겨내는 힘 그것은 경영자의 사업에 대한 철학이다.


사업에 대한 철학, 사람에 대한 철학, 사회에 대한 철학, 파트너들에 대한 철학 등 다양한 철학이 필요하지만 사업과 상품에 대한 철학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장충동 왕족발 보쌈의 경우, 파트너들의 쿠테타로 인해 쑥대밭이 된 회사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의 가능성을 만든 힘은 우연히 읽게된 책을 통해 가지게 된 바른 먹거리에 대한 신념이었다.


소설 모모에는 급하게 가려고 하면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현상이 설명되어 있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꼭 필요한 것을 실천함으로써 단단하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장충동 왕족발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이경희. 부자비즈 대표 컨설턴트. 저서 <내사업을 한다는 것><CEO의탄생><이경희 소장의 2020창업트렌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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