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슈퍼 창업에 도전한 20년 경력 슈퍼마켓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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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6,183 등록일등록일: 2023-12-04본문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나들가게 독산구판장>을 운영하는 최병기 사장(53)은 작년에 무인 슈퍼 2개를 오픈했다. 하나는 8평이고 다른 하나는 40평이다.
20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최사장은 급속히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 속에서 슈퍼마켓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싶었다. 미래를 위한 도전의 열매가 무인슈퍼와 유.무인 하이브리드 슈퍼다.
무인슈퍼는 이미 대중화된 무인아이스크림점이나 무인과자점과는 사뭇 다르다. 사례도 많지 않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고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올해는 2023년 중소벤처기업부 스마트상점 기술보급 사업에 참여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부터 주류자판기 도입 비용을 지원받기도 했다.
유인 슈퍼마켓인 <나들가게 독산구판장>과 무인슈퍼인 <대단한민국이 가게>와 <대단한민국이 슈퍼>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병기 사장이 보는 무인슈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대학 졸업 후 식품 유통사업에 발을 들여놓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최병기 사장은 졸업 후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를 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던 그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식품 소매기업에 재취업해 식품 유통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식품유통업은 흥미가 있었다. 그 분야를 깊숙이 알기 위해 소매상과 도매상을 번갈아 근무하며 사업 구조를 배웠다. 회사마다 업무가 틀려서 배울 게 많았지만 유통 사업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됐다. 개인 슈퍼에 들어가서도 일을 배웠다.
◆나만의 슈퍼마켓 창업...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빚더미
경험을 쌓기 위해 한동안 개인 슈퍼에서 일하던 최 사장은 자신감이 생기자 2000년 8월에 부인과 함께 슈퍼마켓 <독산구판장>을 차렸다. 매장 20평, 앞마당 8평 규모의 가게였다.
최 사장이 슈퍼마켓을 차릴 때만해도 슈퍼마켓의 전성기는 끝물이었다. 그 전까지는 슈퍼마켓을 차리면 사장들이 1년에 집 한 채씩 살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슈퍼마켓의 막차를 탄 상태였지만 최 사장도 한 10년간은 돈을 많이 벌었다.
최 사장은 그렇게 번 돈을 재테크로 불려서 좀 더 큰 마트를 차리고 싶어 주식 투자를 했다. 그런데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투자해 놓은 주식이 폭락해 엄청난 빚을 지게 됐다. 더 큰 슈퍼마켓을 차리기는커녕 그동안 모은 저축금도 모두 날아갔다. 어떻게 하나 머릿속이 멍해졌다.
최 사장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빚을 다 갚았다. 빚을 갚기 위해 <독산구판장>에서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다. <독산구판장>은 2017년도에 정부지원사업으로 시설을 개선해 현재 <나들가게 독산구판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간 3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1년 장사하면 집 한 채값 벌던 사업인데 ....
빚을 다 갚고 정신을 차려보니 유통 시장 환경은 완전히 변해있었다. 오프라인이 죽고 온라인이 시장을 장악했고 무인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시장 변화를 지켜보던 최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21년경부터 무인가게를 벤치마킹했다. 무인아이스크림 가게, 무인편의점 등을 많이 다녔는데 경쟁력이 없어보였다.
편의점은 간편식 위주로 판매하고 슈퍼는 일상생필품을 파는 곳이다. 내가 잘 아는 슈퍼마켓에 무인을 결합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사실 식품과 공산품을 모두 판매하는 무인슈퍼는 흔치 않았다. 나들가게 협동조합 연합회 서울 금천구 지부장을 맡고 있다보니 평생 슈퍼마켓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주변 상인들이 고령화되어 가게 운영을 힘들어하는 모습도 자극이 됐다. 무인가게가 성공하면 그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을 것같았다.
◆8평짜리 무인슈퍼로 실험창업하다
최 사장은 무인사업을 준비해 서울 관악구 미성동에 8평짜리 무인슈퍼 <대단한민국이가게>를 창업했다. 처음부터 대형매장은 위험할 것 같아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오픈 했다. 정부 지원사업을 활용해 창업했기 때문에 창업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다. 임대료와 시설비만 약간 들었다.
<대단한민국이가게>는 월평균 800~900만 원 정도의 매출에 수익률은 25% 정도 됐다. 매출이 나쁘지 않자 최 사장은 좀 더 사업을 확장해보기로 한다. 점포를 총 40평으로 넓혀 2022년 12월에 같은 미성동에 <대단한민국이슈퍼>를 차린다. 40평중 25평은 매장이고, 15평은 창고다. 이번에는 진짜 유인 슈퍼마켓처럼 무인매장을 차렸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새벽에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무엇인가 잘못됐다
<대단한민국이슈퍼>는 유인 슈퍼마켓의 무인버전이었다. 물건도 식품과 공산품 합쳐서 1000가지가 넘는다. 진열 방식도 유인 슈퍼마켓처럼 똑같이 했다. 단지 무인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손님들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새벽에도 왔다.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는 전화였다. 최병기 사장은 부인과 단 둘이 <독산구판장>과 <대단한민국이가게>와 <대단한민국이슈퍼>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힘든데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니 무엇인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하나씩 문제점을 짚어보니 가장 큰 문제는 진열에 있었다. 무인매장은 유인매장처럼 물건을 진열하면 안 됐다. 처음 와보는 손님이 매장만 25평인 가게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단박에 찾기란 쉽지 않았다. 좀 더 디테일한 진열법이 필요했다. 또 무조건 많은 물건을 갖다놓은 것도 문제였다. 무인 매장에 적합한 물건을 선택해 최대한 잘 보이게 진열해놓는 방법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머천다이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무인슈퍼에 야채가 없는 이유
야채는 시행착오를 거친 대표적인 품목이다. 처음에는 야채를 팔았다. 구색용으로 몇 가지를 갖춘 것. 그런데 구색은 의미가 없었다. 10개 중에 3~4개는 팔리고 나머지는 팔리지 않아서 집에 가져가서 먹어야 했다. 매장이 많으면 가능하겠지만, 매장 1~2개 가지고는 가격 경쟁력도, 구색 맞추기도 쉽지 않아서 포기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신선식품은 포기하고 냉동식품, 밀키트, 공산품만 판매한다.
무인슈퍼지만 창업 초기에는 매장을 유.무인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빨리 매장을 안정화시키려는 시도였다. 지금은 100% 무인으로 운영하지만 손님이 많이 찾는 시간을 겨냥해 유.무인 하이브리드 운영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이렇게 하나 하나씩 변화를 주면서 무인 슈퍼를 발전시켰다.
최병기 사장은 대단한민국이가게와 슈퍼가 우리나라 최초 무인슈퍼라고 자부한다.
다른 가게들은 무인아이스크림이나 과자가게를 조금 업그레이드한 수준이다. 슈퍼마켓을 잘 아는 사람이 차린 매장은 아직 보지 못했다.
◆무인슈퍼와 무인편의점의 다른 점은?
초반의 시행착오를 하나씩 고쳐가자 손님들의 전화 횟수도 줄어들고, <대단한민국이슈퍼>의 매출도 꾸준히 월 800~900만 원씩 나오기 시작했다. 매출이 높지는 않지만, 점점 상승세인데다 인건비가 절약돼 손익이 나쁘지는 않다. 단, 초기에 상권 분석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 상권 입지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다.
<대단한민국이 가게>와 <대단한민국이 슈퍼>의 가장 큰 장점은 주류와 담배 자판기가 있다는 점이다. 최병기 사장이 무인슈퍼를 창업하며 다른 무인아이스크림가게나 무인편의점과 차별화를 가져가기 위해 생각한 것이 주류와 담배 자판기였다. 대부분의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사는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품목 중 많은 부분이 술과 담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류와 담배 자판기를 들여놓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자판기 도입을 위해 판매 루트를 알아봤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업체를 소개받아 찾아갔는데 개인사업자에게는 안 알려준다고 했다.
사실 주류 및 담배 자판기는 대기업 편의점에서 의뢰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개인 사업자에게는 팔아봤자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판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최 사장은 대한상의까지 찾아가는 등 부탁을 거듭해서 그 업체를 통해 자판기를 들여놓았다. 비용은 한 대당 1천만~1천5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 탈락후 추가 선정
그러던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상점 기술보급 사업 정보를 알게 됐다. 올해 공급되는 기술 중에 관련 무인자판기 품목이 있다는 정보도 얻게 됐다.
혼자만 알고 싶을 만큼 귀한 정보였지만 주변에 고생하는 슈퍼 사장들이 같이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정보를 공유했다. 최 사장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스마트상점기술보급사업에 신청을 했다.
그런데 최 사장이 정보를 줬던 다른 사업장은 선정이 되고 최사장 매장은 탈락을 하고 만다.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주변 상인들이 선정돼 다행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접을 때쯤 기쁜 소식이 왔다. 추가 합격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단한민국이슈퍼>에 주류 자판기 한 대를 들여놓게 됐다.
총 비용 850만 원 중에 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도입 비용과 지원금액은 업체 기기마다 차이가 있다.
무인슈퍼에서 주류와 담배 자판기는 매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류를 사가면서 안주도 사가고 담배를 사면서 다른 생필품을 사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류를 사러왔다가 안주를 사가는 고객이 많아 객단가를 방문 주기나 객단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성인인증을 해야 하고, 업체 기기마다 인증 방법이 달라 복잡한 면도 있다. 그래서 고령자들에게는 아직 문턱이 높다. 최 사장 생각에는 인증 방식이 좀 더 간단해지면 좋을 것 같다. 최 사장 가게의 자판기는 카카오와 신분증, 패스로 인증이 가능하다.
◆무인 창업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현재 국내 유통업계는 온라인 시장이 다 지배를 해버렸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들은 다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웬만한 것은 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니까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건 주류와 담배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의점들도 대형마트들도 다 위기다. 최 사장이 생각하는 대안 중 하나가 무인 창업이다.
언론과 사람들은 무인매장의 도난사고를 많이 거론한다. 최 사장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출입 장치를 설치했다. 최 사장이 운영하는 무인슈퍼는 신용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한다. 그 덕분인지 로스율은 거의 없다. 아이스크림을 살 경우 열 개 샀는데 아홉 개만 찍고 한 개는 못 찍거나 안 찍는 정도다. 사실 유인매장도 로스율은 있다. 주머니에 숨기는 것은 못 잡는다.
출입 장치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최 사장은 얼마 전에 CCTV로 한 노인이 가게에 들어오지 못해 애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노인이 며칠 후 다시 와서 출입문에 인증을 하고 박카스를 사먹고 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인슈퍼 사업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무인슈퍼마켓은 지금도 실험 중, 대세는 확실
무인슈퍼 준비 과정이 녹록치 않았던 이유는 전국에 무인슈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무인슈퍼 운영 1년차. 최사장은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소형 매장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규모가 큰 무인 슈퍼는 아직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계속 실험중이다. 매장 모양도 바꿔보고, 기계도 넣다 뺐다 해보며 고객 반응을 보고 있다. 매장은 매일 방문하고 물건 진열은 2일에 한 번씩 체크한다.
가끔 무인슈퍼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니가라는 반성도 하지만 데이터가 쌓일수록 방향이 맞다는 확신은 커지고 있다. 점점 고령화되고 있는 슈퍼마켓들이 구인난과 온라인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이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무인으로 운영해야 하는 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최사장이 운영하는 무인 매장 2개는 모두 상권이 좋지 않다. 그래서 상권 분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진열과 머천다이징의 중요성도 절감했다. 이전의 슈퍼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사꾼이 아닌 진짜 사업가가 되는 게 목표
최병기 사장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한참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아들들을 보면 내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최 사장의 어릴 적 희망은 사업가였다. 현재 사업을 하고 있으므로 꿈을 이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최 사장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최 사장이 원하는 사업가는 장사꾼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진짜 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힘든 가운데서 무인슈퍼에 도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무인자판기 도입비용의 70%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원받았는데 힘든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됐다. 정부 지원을 받고나니 온라인 유통과 편의점에 치이는 전국 슈퍼마켓 사업자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라도 무인슈퍼의 좋은 모델을 만들어야 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최사장은 무인슈퍼와 유무인 하이브리드 운영 모델을 만들어서 전국 각지에 있는 작은 슈퍼들이 80, 90년대처럼 다시 동네 참새방앗간이 되는 것을 꿈꾼다.
최 사장은 무인슈퍼 두 곳을 충분히 검증하고 모델을 잘 만들어 안정화시킨 후에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고령화되는 슈퍼마켓 사업자들을 도울 계획이다. 오랜 유통 경험을 살려 물건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구입해 많은 사람들과 상생하는 것이 목표다.
◆이경희의 원포인트
최병기 사장은 한국나들가게 협동조합 금천구 지부장을 하면서 동업종 사업자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자신과 동종업계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무인사업에 도전했다. 매장 3개를 운영하면서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다보니 올해 매장에 화재가 나기도 하고 교통사고도 3번이나 당했다. 힘든 현실 속에서 정부의 지원 제도는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40평대 매장의 경우 100% 무인보다는 고객이 많은 시간대에 하루 5~6시간이라도 사람이 상주하는 하프무인 운영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또 온라인시장과 가격경쟁을 하기보다는 공동브랜드를 통한 협업과 경험과 체험, 편의를 고려하면서 기존 슈퍼마켓 제품 구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일상 생필품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를 지향하면 더 큰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희. 부자비즈 대표 컨설턴트. 저서 <CEO의 탄생><내사업을한다는 것> <이경희 소장의 2020창업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