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식당에 부는 향기트렌드, 일본 '아로마냄비'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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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09 등록일등록일: 2025-09-30본문
음식에서 맛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향기다. 빵집에 버터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고객을 유혹할 수 있을까?
식당이 향기 마케팅은 역사가 깊지만, 2025년 가을, 일본 외식업계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계절 트렌드를 열었다. 구루나비가 매년 발표하는 ‘트렌드 냄비®’에서 올해의 키워드로 선정된 것은 다름 아닌 ‘아로마 냄비(アロマ鍋)’.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단순히 식재료를 끓여 먹는 전통적인 냄비 요리의 범주를 넘어, 허브와 향신료, 감귤류의 향기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개념의 냄비다. 맛뿐 아니라 후각과 감성까지 자극하는 다층적인 경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외식업계와 소비자들의 이목을 단숨에 끌었다.
*출처=S&B, 돼지장미와 배추의 후추냄비
ㅊ◆향기에 주목하는 일본 사회의 흐름
아로마 냄비가 탄생한 배경에는 최근 일본 사회 전반에서 관찰되는 ‘향기 트렌드’가 자리한다. 구루나비의 데이터에 따르면, 1년 사이 ‘허브’ 관련 검색 건수가 약 1.7배나 증가했다. 동시에 일본 크래프트 진 같은 향기 기반 술이 인기를 얻으며,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향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꾸준히 높아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에서의 힐링’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일본인들은 일상 속 작은 위안을 향기에서 찾기 시작했다. 구루나비 회원 대상 설문에서 “릴렉스하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아로마를 사용한다”고 답한 이들이 전체의 약 48%를 차지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결국 향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과 휴식을 제공하는 매개체로 자리잡은 것이다.
*출처=S&B, 마늘듬뿍된장냄비
◆냄비 요리, 향기를 품다
그렇다면 아로마 냄비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까?
구루나비는 이를 “풍부한 향기로 마음까지 채우는 냄비”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식재료가 가진 맛을 우려내는 차원을 넘어, 냄비를 열었을 때 퍼져 나오는 허브와 시트러스 향이 식사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경험을 강조한다.
실제 메뉴를 보면 그 감각이 더욱 분명하다.
*출처=구루나비, 약선버섯냄비, 하카타 호타루 아자부주반점 1인분 2400엔
도쿄 아자부주반에 위치한 ‘하카타 호타루’에서는 표고, 만가타케 같은 여러 버섯에 약선 허브를 조합한 ‘약선 버섯 냄비’를 선보였다. 깊고 묵직한 풍미 속에서도 은은한 허브 향이 입안을 감싸, 단순한 건강식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가격은 1인분 2400엔으로, 두 명부터 주문 가능하다.
또한 ‘규슈 숯불 술집 바텐 간다 니시구치점’은 ‘감귤 아로마 냄비’를 출시했다. 투명한 스프를 베이스로 생유자와 레몬을 그 자리에서 태워내는 방식으로, 시각과 후각,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올라오는 순간, 테이블은 마치 산뜻한 정원으로 변한다. 가격은 1인분 1680엔으로, 일상적인 외식에서도 향의 특별함을 만끽할 수 있다.
*출처=구루나비, 감귤아로마냄비 규슈 숯불 술집바텐 간다 니시구치점 1680엔
◆소비자가 원하는 아로마는?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아로마 냄비의 방향이다. 구루나비가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가장 먹고 싶다고 꼽힌 메뉴는 ▴‘스다치(일본산 시트러스) 향을 살린 담백한 일본식 아로마 냄비’였다. 전체 응답자의 26%가 선택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향의 세계에서도 ‘깔끔하고 정갈한 풍미’를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뒤를 이은 선호도는 ▴‘일본 허브를 활용한 약선 스타일’(18.3%), ▴‘호르몬과 산초의 매운 냄비’(14.8%), 그리고 ▴토마토·로즈마리·오레가노 등을 활용한 ‘지중해풍 아로마 냄비’(7.1%) 등이었다. 즉, 향의 트렌드가 단순히 서구적 허브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본 고유의 허브·감귤·향신료와도 결합하면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S&B, 중국불냄비 풍 마마냄비
◆외식업계의 새로운 실험실
이번 트렌드 발표는 단순히 개념 제안에서 그치지 않는다.
구루나비는 실험적 레스토랑과 협업해 실제 아로마 냄비 메뉴를 선보이며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할 계획이다. 특히 도쿄 내 일부 점포에서는 ‘미세미디어(Misemedia)’라는 영상 연출 시스템을 도입, 음식과 향뿐만 아니라 시각적 경험까지 동시에 제공한다. 프로젝터를 통해 계절감 있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증기와 향이 어우러지면서 공간 전체가 하나의 감각적 무대로 변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일본 외식업계가 강조하는 ‘오감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음식을 먹는 순간뿐 아니라, 공간과 분위기 전체를 체험으로 확장하는 전략은 앞으로도 레스토랑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한국 외식업계가 얻을 시사점
이 흐름은 한국에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역시 유자, 오미자, 산초 등 향기 있는 식재료에 대한 전통적 경험이 풍부하다. 여기에 최근 소비자들이 ‘힐링’, ‘감각적 경험’, ‘인스타그래머블’ 요소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더해지면, 아로마 냄비와 유사한 개념은 충분히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인 전골 형태의 소형 냄비에 레몬그라스와 유자를 띄워 향기를 강조하거나, 냄비 뚜껑을 열 때 증기와 함께 허브 향이 퍼지도록 연출하는 방식은 MZ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 카페와 이자카야 사이의 공간에서 ‘향기 전골’ 콘셉트를 결합하면, 주류·음식·분위기를 모두 경험하는 융합형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다.
◆향기를 먹는 시대
결국 아로마 냄비의 등장은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향기’라는 감각적 자원이 외식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매년 트렌드 냄비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며 외식 산업의 힌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2025년, 그 힌트는 ‘향’이었다.
이제는 음식이 맛과 영양만으로는 부족하다.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허브 향, 레몬 껍질을 태울 때의 산뜻한 아로마, 그리고 그 순간의 여유로움까지.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채우길 원한다. 아로마 냄비는 그 요구를 가장 직접적이고도 세련되게 반영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향기를 먹는 시대, 일본이 보여준 이 새로운 시도는 머지않아 한국과 전 세계 식탁에도 스며들 것이다.